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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벽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2014년 11월13일 목요일 대법원은 쌍용차 해고자의 희망을 짓밟았다. 2천배를 하면서 기다렸던 대법원 판결이 그들을 짓밟았다. 판결 주문은 간단했다. 파기환송.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파기하고는 다시 판결하라고 되돌려 보냈다(대법원 2014. 11. 13 선고 2014다20875·20882 판결). 쌍용차 해고자의 희망만이겠는가. 이 나라 노동자의 희망도 짓밟았다. 노동자를 상시적인 정리해고·구조조정의 위협에 몰아넣었다. 대한민국의 노동법이 객관적인 경영상 필요도 없이 주관적으로 필요하다며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하는 정리해고로부터 보호해 줄 거라는 노동자의 희망을 꺾어 버렸다. 고등법원에서 부당한 정리해고라는 판결을 받고서 힘겹게 버텨 왔던 당사자, 쌍용차 해고자들의 심경을 어찌 감히 안다 하겠는가. 노동자 사건만 대리해 온 변호사로서 수많은 해고사건을 맡아 온 나는 해고자를 볼 때마다 해고자가 아닌 것에 안도해 왔다. 이번엔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아닌 것에 안도했다. 정리해고가 부당한 이유를 찾아내서 준비서면에 쓰고 법정에서 변론했을 그들이 아닌 것에 염치없게도 나는 안도했다. 그랬다면 목요일, 대법원의 법정에서 나는 대법관의 판결 선고를 들었을 것이다. 분노로 판결 선고를 듣고 있던 내 귀는 더는 듣지 못하고, 절망으로 판결문을 읽고 있던 내 눈은 더는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 검은 목요일, 밤새 사무실에 있었다. 분노 때문은 아니었다. 법원 판결에 분노해서 법과 세상을 어제와는 다르게 봐야겠다고 새삼스럽게 다짐하느라고 그런 게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임금청구사건 재판 준비, 일 때문이었다. 해고자에게는 ‘살고 싶은 내일’, 다른 세상인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일 때문이었다. 그 일이 내 일이니 나는 한다. 절망의 목요일, 밤새 사무실에서 일해야 했다.

2. 5일이 지났다. 누가 감히 시간이 약이라고 말하는가. 그 말은 병주고 약주는 말이다. 아니다. 불치의 병을 주고서 죽으라는 말일 뿐이다. 그래서 판결문을 읽는다. 대법원이 쌍용차 해고자들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판결문을 읽는다. 어째서 죽어야 한다는 것인지 그 이유를 찾아 읽었다.

“경영위기는 상당 기간 신규 설비 및 기술 개발에 투자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계속적·구조적인 것으로서, 외부적 경영여건의 변화로 잠시 재무상태 또는 영업실적이 악화됐다거나 단기간 내에 쉽게 개선될 수 있는 부분적·일시적 위기가 아니었다”며 사용자로서는 “인원감축 등을 통해 위와 같은 경영위기를 극복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여기서 대법원은 원심이 판단한 유동성 위기와 재무건전성 위기에 관해서 살폈다. 유동성 위기에 관해서는, 주채권은행인 한국산업은행은 상하이자동차의 유동성 지원이 선행되지 않으면 대출을 할 수 없다 하고 상하이자동차는 금융권 대출 재개와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 협력을 유동성 지원 조건으로 내걸어 대출이 이뤄지지 않은 사실 등으로 “그 소유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고 금융권으로부터 신규자금을 대출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회사를 인수해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던 상하이자동차가 약속한 투자를 하지 않고 유동성 확보를 위한 급박한 자금 지원도 않았던 것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인정하는 근거가 됐다. 그러나 이것은, 회사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자가 약속했던 투자도 하지 않고 인원 감축 등 구조조정에 대해 노조가 동의해 주지 않는다고 급박한 유동성 지원도 않음으로써 금융권 대출을 할 수 없도록 하고서 단행했던 것이 쌍용차 정리해고였다고 대법원은 판결문에 쓰고 있는 것이다. 경영권 행사자가 약속한 투자를 하고 급한 자금지원을 했더라면 유동성 위기는 막을 수 있었다고 판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유 부동산의 담보 대출로 금융권 신규자금 대출이 불가능했다는 것은, 금융권의 부동산 담보 대출 외의 회사채 등 그밖에 다양한 자금 조달의 방법이 있었다면 유동성 위기는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회사 경영권을 행사하는 상하이자동차의 구조조정 의지가 그대로 유동성 위기로 파악돼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고 대법원은 판결하고 말았다.

재무건전성 위기에 관하여, 먼저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점을 고려할 때 피고의 예상 매출수량 추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가정을 기초로 한 것이라면 그 추정이 다소 보수적으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그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여기서 대법원이 하고 싶었던 말은 사용자의 추정이 보수적이라도 합리성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예상 매출수량 추정에 관해 대법원은 “자금 동원 능력도 없어 사용가치 산정의 대상 기간 안에 계획대로 신차를 출시할 수 있는지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판단했다. 또 “신차의 미래 매출을 예상 매출수량에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단종이 계획됐던 기존 차종의 경우 모델의 노후화 등으로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단종 없이 계속해서 생산한다고 해서 수익이 보장된다고 보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단종계획을 반영해 예상 매출수량을 추정한 것으로 보”이는 등으로 “피고의 예상 매출수량 추정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어 대법원은 1994년 이후 당기순손실 및 당기순이익 추이를 살피면서 위와 같이 유형자산손상차손을 인식하기 전부터 재무상황이 이미 악화돼 있었다고 판결했다. 자동차 생산 및 판매 사업을 폐업하지 않고 계속하려는 회사에서 과거 당기순손실 및 당기순이익의 변화 추이는 장래 경영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인원감축의 필요에서 했다는 쌍용차 정리해고에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주되게 고려할 사항은 아니었다. 결국 재무건전성 위기와 관련해서는 예상 매출수량 추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한 것인지가 중요했다.

이에 대해서 원심 재판 과정에서 사용자 회사가 회계조작을 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자금 동원능력도 없어 사용가치 산정의 대상 기간 안에 계획대로 신차를 출시할 수 있는지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판단하고 신차의 미래 매출을 예상 매출수량에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대법원은 사용자 회사가 이미 계획해서 개발해 왔던 신차의 미래 매출을 예상 매출수량에 전혀 반영치 않았던 것이 “자금 동원능력도 없어 사용가치 산정의 대상 기간 안에 계획대로 신차를 출시할 수 있는지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판단하고”서 한 것이라고 그러한 회사의 회계처리는 이해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회계처리하는 회사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신차의 미래 매출이 없을 수 있다고 해서 유형자산손상차손을 보다 많은 것으로 평가해야 했을 거다. 그래야 회사 경영상태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되는 상태가 될 수 있을 테니 일체 자금 동원할 수 없다며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는 있다. “단종이 계획됐던 기존 차종의 경우”, “단종 없이 계속해서 생산한다고 해서 수익이 보장된다고 보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단종계획을 반영해 예상 매출수량을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법원은 단종을 전제로 예상 매출수량을 추정해서 한 회사의 회계처리도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역시 그럴 수 있다. 회계처리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단종 계획대로 단종으로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고 예상 매출수량을 추정할 수 있다면 그렇게 회계처리를 하는 것이 인정된다면 회사가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경영상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회사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렇게 대법원이 정리해고하고자 하는 회사의 의지를 이해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한 그 예상 매출수량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추정한 것일 수 없다. 회사의 정리해고 필요에 따라 비합리적이고, 회사의 입장에 서서 주관적으로 한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적이라도 합리성이 인정될 수 없는 추정이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2009년 쌍용차는 정리해고가 아니라 폐업했어야 했다. 계획한 신규 차종도, 단종 계획된 기존 차종도 모조리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쌍용차는 고철 수집상에게 매각돼야 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와 관련해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판결 이유는 이 부분일 것이다.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잉여인력은 몇 명인지 등은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대법원은 판결문에 쓰고 있다. 삼정KPMG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사용자 회사가 인원감축안을 확정해서 한 정리해고인 것이므로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노동자·노조는 사용자의 판단을 존중하고서 정리해고 등으로 쫓겨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대법원의 말이다. 그런 말을 대법원은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잉여인력은 몇 명인지 등은 경영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돼야 한다고 덧붙여 대법원은 스스로 내세운 판결이유에 상당한 합리성을 부여하고자 애를 썼다.

3. 쌍용차 해고자에게 대법원은 절망의 벽이었다. 고층의 건물에 커다랗게 ‘자유·평등·정의’을 새겨 놓았지만 대법원은 쌍용차 해고자에게는 노동자의 자유도, 평등도, 정의도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자유·평등·정의’라고 새겨진 절망의 벽이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단순히 쌍용차 해고자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쌍용차사건에서 대한민국 대법원이 근로기준법 제24조의 정리해고 요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와 해고회피노력이 무엇인지 판단했다. 이 나라에서 정리해고에 있어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쌍용차 정도의 경영상태면 인정되고, 해고회피노력은 쌍용차에서 한 정도라면 다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결로 선언했다. 쌍용차처럼 하면 된다고 대법원이 사용자들에게 판결로 공인해 준 것이다. 이제 사용자들은 쌍용차 사용자가 한 것처럼만 하면 노동자를 정리해고할 수 있는 것이다. 쌍용차사건 판결문을 보여 주며 정리해고로 위협하면 약간의 퇴직위로금을 주고서 희망퇴직·명예퇴직 등으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법원은 이 나라 노동자 모두에 대해 선고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정리해고가 무엇이라는 판결함으로써 이 나라 노동자에게 대법원은 말했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사용자의 정리해고 위협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쌍용차사건에서 쌓아놓은 벽을 넘어서야 한다. 노동법이 노동자에게 절망의 법이어서는 안 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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