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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38] 노동교실 되찾기 투쟁의 승리

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유신의 폭압적인 상황에서도 노동자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비록 조직적이지는 않았지만 노동자의 크고 작은 집단적 투쟁이 억압적인 분위기에서도 전개된 것이다.

1974년 9월19일 울산의 현대조선소 노동자 2천500여명은 △도급제 철폐 △사원과의 차별대우 철폐 △해고 금지 △임금인상 △노조결성 보장 등 13개 요구조건을 내걸고 경비실과 승용차에 불을 지르며 16시간 동안 싸웠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경남도내 16개 경찰서 경찰들과 대치했다.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의 폭력적인 행위만 들춰내면서 왜 노동자들이 이렇게 극한적인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됐는지, 자본가가 어떻게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현대조선소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투쟁도 조직적이고 지속적이지 못해 결국은 경찰의 대대적인 진압에 의해 663명이 연행되고 21명이 구속된 채 끝을 맺었다.

한편 한국모방(원풍모방)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노조민주화 투쟁에 이어 반도상사노동조합이 결성됐다. 이후 유신정권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YH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권리투쟁 시작되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은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집중적이고 교묘한 탄압을 당하면서 위축됐다. 당국은 노사협조주의·새마을정신 등의 지배논리로 노동자를 길들이는 한편 노동조합을 노동통제 기구로 활용하려고 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도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권리투쟁은 75년부터 새롭게 시작됐다.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채 오직 먼지 구덩이 다락방 속에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했다. 노동조합에서는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했거나 아예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한 대다수 노동자들의 배움에 대한 갈망을 약간이라도 채워 주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노동교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당국은 노동조합의 이런 목적과는 달리 노동교실을 새마을운동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 했다. 사용주들을 앞세워 노동교실 운영권을 노동조합이 갖지 못하게 하고 사용주들이 독점하게끔 했다.

경찰은 노동교실 개관식 때 함석헌 선생을 초청했다고 해서 트집을 잡고 이를 탄압의 빌미로 삼았다. 사용주들은 노조와 함께 설립한 노동교실의 운영에 노조가 개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온갖 방해를 일삼았다. 사용주 대표인 동화상가 주식회사의 유인규 사장은 노동교실을 지부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선언하고 관리실장 등을 일방적으로 임명해 관리했다.

노동조합은 노동교실 운영주체가 노동자이며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에 운영권을 인도하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청에까지 노동교실 문제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노동청과 사용주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묵살한 채 기만적인 술책을 썼다. 그들의 태도를 지켜보던 조합원들이 서서히 분노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려 지쳤을 텐데도 조합원들은 막차를 타고 이소선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이대로 우리들이 애써 만든 노동교실을 빼앗길 수는 없다. 노동교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모금을 했나. 장시간 노동도 감수하면서 작업시간을 연장해 그 이익금으로 노동교실을 만드는 데 밑거름으로 쓰지 않았나.”

“그래 맞아. 사용주들은 자기네들이 돈을 내서 노동교실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보다. 우리들이 한 달 동안 작업시간을 연장해서 뼈 빠지게 일한 것은 생각지 않는 모양이지.”

“우리들이 골병들도록 일해 주지 않으면 자기네들이 어떻게 돈을 벌겠어. 사장들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틀어쥐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족속들인가 봐. 이대로 있어서는 안 돼. 참는 것도 한도가 있지. 이번엔 우리들이 모여서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구!”

자정을 넘겨서야 저녁밥을 먹으며 조합원들은 노동교실을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저마다 사용주측의 부당한 처사에 분개했다. 그리고 노동교실은 싸움을 통해 찾아야지, 교섭을 통하거나 행정적인 절차를 밟아서는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노동교실은 싸움을 통해서 찾아야지”

75년 2월7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동화시장 옥상에 있는 노동교실에 기습적으로 집결해 노동조합이 노동교실을 인수할 때까지 농성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점심식사가 끝날 무렵인 오후 1시20분쯤 동화상가를 비롯한 각 상가 공장을 방문해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끔 선전·선동을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각자 역할을 나눴다.

2월7일 오후 1시20분. 조합원 동원조가 일제히 흩어져 상가복도를 누비며 외쳤다.

“여러분, 못 배운 우리들이 지친 몸을 무릅쓰고서라도 배우고자 노동교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동교실을 사용주들이 일방적으로 운영하면서 노동교실의 주인인 우리들을 쫓아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소박한 희망마저 가로채 간 저 간악한 사용주들을 응징하고 우리의 노동교실을 우리 힘으로 찾읍시다. 모두들 동화시장 옥상에 있는 노동교실로 모입시다!”

기계를 멈추고, 하던 일손을 털고 250여명의 조합원들이 노동교실로 모여들었다. 교실이 꽉 들어찼다. 조합원들은 사용주측에서 채용한 관리실장을 내몰고 서둘러 문 앞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조합원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 그날에/ 오, 참맘으로 나는 믿네/ 우리 승리하리라."

노래는 모두를 하나로 묶어 줬다. 어떤 조합원들은 즉석에서 연설을 했다.

별다른 순서도 없이 노래를 부르고 연설도 하면서 한참을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빛이 번쩍였다. 기자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사실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투쟁을 해도 신문에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소선은 익히 알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기자가 왔다는 것을 알고 더욱더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들이 왔다간 뒤에야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코빼기를 내비쳤다.

지부장과 농성조합원 대표 5명은 노동청 중부지방소장과 유인규를 비롯한 사용주측과 회의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노동조합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사용주측은 궁색하기 짝이 없는 이유를 내세워 자신들이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용주 대표 유인규 사장은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노동교실 운영권 다툼이나 하는 노조는 필요 없다. 그런 노조는 해산시켜 버리겠다.”

유인규의 망발은 교섭대표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회의장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최종인 지부장은 탁자를 뒤집어엎으며 유인규 사장에게 망발을 취소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7시간여 동안의 농성과 협의를 한 결과 사흘 이내에 합리적인 처리방안을 사용주측에서 내놓기로 하고 회의는 일단락됐다. 수차례 협의를 거쳐 마침내 3월19일 노조 요구가 관철돼 노동교실을 사용주로부터 인수하게 됐다.

노동교실을 인도할 때 사용주들은 사용주들의 찬조금으로 마련된 건물 임대료 200만원과 개관 당시 외부로부터 기증받은 비품을 노조에 넘겨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청도 이에 동조했다.

노조는 을지로 6가에 소재한 협성(유림)빌딩에 노동교실을 새롭게 마련하고 비품 일체를 인수받았다. 이로써 노조의 투쟁은 승리했다.

노동교실 인수투쟁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의 투쟁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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