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천국이다. 일터에서, 입시전쟁에서 밀려난 이들의 죽음의 행렬이 늘어만 간다. 올해 9월 통계청이 '2013년 사망원인통계'를 발표하자 지방자치단체들은 "우리 지역 자살률이 가장 낮다"는 식의 보도자료를 쏟아 냈다. 전 세계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의 민낯이다.

이달 7일 부산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모녀가 방안에서 착화탄을 피운 채 자살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전날인 12일 오후 경기도 양주에서 한 수험생이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수험생 부모는 경찰 조사에서 "아들이 평소 성적을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같은날 오후 전북 군산에서는 생활고로 투신자살을 기도하던 건설노동자가 경찰의 설득으로 20층 건물 난간에서 내려왔다. 그는 수개월간 임금체불에 시달렸다. 면접전형을 남겨 둔 아들에게 변변한 양복하나 사 주지 못하는 상황이 한스러워 자살을 마음에 품었다.

지난달 21일에는 LG유플러스 부산고객센터 상당원인 이아무개씨가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달 6일에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사내하청 노동자가 "정규직 돼라"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동료들에 의해 다행히, 다행히도 죽지 않았다.

자살사건이 많다는 착시효과를 겨냥해 사례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 지난해 대한민국에서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1만4천427명이다. 하루에 40명, 37분마다 1명이 세상을 등졌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996년 1만2천653명에서 지난해 5천92명으로 감소했다. 96년 자살 사망자는 5천959명이었다.

기왕 숫자가 나왔으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28.5명이 자살한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2.1명이다. 미국(12.5명)·독일(10.5명)·영국(6.7명) 세 나라를 합쳐야 우리나라와 견줄 만하다.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기일이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는 마지막 외침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바랐다. 아마도 사회가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44년이 지났지만 현실을 보면 도저히 희망이 안 보인다.

대법원은 이날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정리해고 후 25명의 동료와 가족을 자살 등으로 떠나보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은 판결 후 눈물범벅이 됐다. 비정한 사회에 비정한 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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