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욱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법무법인 여는)

대상 판결/ 서울중앙지법 2013가합81458 임금

1. 기륭분회 노동자들의 투쟁과 소제기


2014년 10월30일 서울중앙지법 41부(재판장 정창근)는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2013년 5월1일자로 기륭전자(현 렉스엘이앤지)의 근로자가 됐으므로 회사는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2005년 7월 노조를 결성한 지 9년 만에 법원으로부터 기륭전자의 근로자로 인정받고 임금채권도 인정받은 것입니다. 기륭분회 투쟁에 대해서는 다들 아실 것으로 보이지만 법률적 측면에서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불법파견의 경우에도 고용의제 조항이 적용된다는 대법원 판결(소위 예스코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기 이전의 시기인 2005년께 기륭전자분회 노동자들은 기륭전자 주식회사에서 파견근로 혹은 계약직으로 근무했습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계약직 및 파견근로자)의 고용은 매우 불안했고, 근로조건은 매우 열악하여 터무니없는 사유로 해고를 당하고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었으며 모욕도 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참다못한 비정규 노동자들은 2005년 7월 노동조합을 설립했는데, 회사는 탄압으로 대응했고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에 따라 불법을 시정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생산직 정규 근로자들까지 전부 비정규직화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2005년 8월 초 기륭전자 비정규 노동자 200여명 이상이 집단적으로 해고(계약해지 내지 갱신거부)됐고, 이에 비정규 노동자들이 설립한 기륭분회에서는 회사의 몰상식한 조치를 규탄하고 복직과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며 2005년 8월24일부터 장기간의 농성 투쟁에 돌입하게 됐습니다. 장기간의 농성 끝에 2010년 11월1일 분회원들이 소속된 금속노조와 회사는 조합원들을 고용한다는 합의를 했는데, 위 합의를 성실히 이행할 것처럼 말하던 회사는 합의 이후 이행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이행 기한 연장만을 수차 요청하다가 결국 노동자들을 피해 야반도주하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이에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회사에 법률적 책임을 묻기 위해 소를 제기한 것입니다.

2. 기륭분회 사회적 합의의 내용

기륭 분회의 2010년 11월1일 합의서의 내용 중 기륭분회 조합원들의 고용에 관한 부분은 매우 간단합니다. “회사는 조합의 산하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10명을 고용한다. 단 고용대상자 명단과 고용보장 조건 등은 부속 합의서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위 합의는 기륭분회 조합원 당사자뿐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많은 사람들이 기륭분회 투쟁에 함께한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위 합의는 “사회적 합의”라 불렸습니다.

3. 기륭분회 사회적 합의의 법률적 의미

가. 회사의 주장

앞서 기륭분회의 2010년 11월1일자 합의를 사회적 합의라고 했지만 이는 엄연히 법률적 의미를 가지는 합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①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합의의 당사가 아니라 금속노조가 당사자라는 이유로 혹은 ② 기륭분회 조합원들을 당사자로 보더라도 합의서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의무를 발생시킬 뿐 근로계약 그 자체가 아니므로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③ 설사 근로자라고 보더라도 구체적인 근로조건에 대한 합의가 없었고, 조합원들이 회사에 근로제공을 한 것도 아니므로 임금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나. 근로계약의 성립 여부

그러나 법원은 위 합의서는 금속노조뿐 아니라 기륭분회 조합원들의 개별적인 기명·날인이 돼 있으므로 조합원들이 직접 당사자가 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사실관계 측면에서 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법원은 설사 금속노조가 합의의 당사자인 것으로 보더라도 금속노조가 제3자인 조합원들을 위한 근로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쟁점, 즉 노동조합이 그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이 아니라 고용관계 자체에 대해 합의를 한 경우 그 성질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공사(대한조선공사)의 기업분할 방침에 따라 신설된 계열회사로 전적하게 되는 근로자들을 위해 노동조합이 공사와의 사이에 장래 신설회사가 조업이 불가능해 고용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공사가 근로자들을 모두 재취업시키기로 하는 약정을 한 경우 그 약정의 성질이 제3자를 위한 근로계약인지 아니면 단지 근로계약을 체결할 체약의무를 정한 것에 불과한지에 대해 대법원(1994. 9. 30 선고 94다9092 판결)은 해당 재취업약정은 노동조합이 공사측과의 사이에 전적근로자들을 위해 재고용계약을 미리 체결한 것으로서 이른바 제3자를 위한 새로운 근로계약이라고 볼 것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번 판결도 이러한 법리에 따른 것입니다.

다. 근로조건 및 임금청구권의 발생 여부

회사는 조합원들과의 사이에 근로계약이 체결됐다고 보더라도 구체적인 근로조건을 정한 바 없고 또한 조합원들이 근로를 제공한 바 없으므로 임금청구권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근로계약의 성립과 달리 근로조건은 취업규칙 등을 통해 집단적으로 규율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는 취업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근로관계가 성립한다고 봤습니다(대법원 97다53496판결). 또 근로자의 근로제공의무는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자가 처분 가능한 상태로 두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봐서 회사의 주장을 모두 배척했습니다. 법리상 당연한 판단입니다.

라. 구체적인 임금 액수

2013~2014년 기륭전자에는 생산직 근로자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생산직 근로자가 존재했던 마지막 시점인 2005년 8월(2006년의 호봉표와 동일)의 정규직 생산직 임금과 그 임금을 기준으로 한 상여금(700%)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기업규모와 업종·지역(서울)에 따른 평균임금 인상률이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회사의 규모 등이 계속 변해 왔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상률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최저임금 위반인 점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대상 판결이 인정한 임금액수는 문제가 있습니다.

4. 결어

대상 판결은 2005년 7월 이후 1천895일 만에 이뤄진 2010년의 사회적 합의가 법률적으로도 효력이 있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법원이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회사의 근로자인 점, 임금채권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확인해 준 의의가 있습니다.


<각주>
1) 불법파견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글에서 사용하는 불법파견은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인한 결원 혹은 간헐적 인력 확보의 필요가 없음에도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륭전자의 경우 불법파견에 고용의제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2년 미만이라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현재는 입법과 판례에 의해 해결이 된 상황입니다.

2) 부속합의서에는 고용대상자 명단은 기재돼 있었지만, 구체적인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었습니다. 합의 시점인 2010년 11월에는 국내에 생산시설이 없었고, 위 합의에는 회사가 국내에서 생산을 재개하기로 하는 합의도 실질적으로 포함됐으나 회사는 그러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3)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에 대해 합의한 것은 단체협약이지만, 단체협약에서 특정 조합원들의 고용관계 자체를 다루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4) 근로계약 자체의 성립을 부정하는 회사의 주장에 맞춰 예비적으로 고용의무 불이행(혹은 근로조건 협의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도 했으나 주위적 청구인 임금청구가 인용되면서 예비적 청구인 손해배상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5) 2013년 최저임금(주 40시간 기준, 월 단위) 101만5천740원보다 적은 액수인 2006년 기본급(86만2천590원)으로 상여금을 계산한 위법이 있습니다. 이는 항소심에서 시정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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