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랗고 붉은 가을, 비닐하우스에선 온갖 것이 말라 간다. 빨간 고추 고루 말린 자리 빌 새도 없이 벼·수수·참깨·들깨·나물이며 버섯이 두루 바짝 마른다. 가을걷이 언제나처럼 신통치 않았지만 겨울 앞자리 비닐하우스는 발 디딜 곳 없어 그래도 풍성하다. 저기 늦도록 수확 못 한 도시 농부들이 세종로 돌 바닥에 남아 사투를 벌인다. 비닐하우스 고쳐 짓고 겨울 채비에 분주하다. 노숙농성 100일도 훌쩍 넘어 이 가을 거지꼴을 면치 못한다. 농성자가 많았고 바닥은 좁아 발 디딜 틈 없다. 가을볕 아래 하루 또 말라 간다. 피 말리는 시간이다. 끈질긴 모기 다섯 마리 그 틈을 비집고 들어 포동포동 살이 오른다. 겨울이 바짝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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