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승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전북본부)

며칠 전 구제신청 사건을 상담했다. 구제신청 상담을 하다 보면 으레 듣는 질문이 있다. “노무사님 이번 사건 이길 확률이 얼마나 돼요?” 말문이 턱 막힌다. 초등학교 때부터 산수와 수학은 담을 쌓았던 터라 곰곰이 생각한다. ‘음 37%쯤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 근거는 뭐라고 할까. 아니면 몇 %라고 말해야 하나….’

물론 신청인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나한테 물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해는 한다. 하지만 답하기는 정말 어렵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법률지원센터에서 처음 업무를 할 때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짜증을 조금 냈다. 워낙 자신이 없던 탓도 있었지만 질 것 같은 것도 이기고, 이길 것 같은 것도 지는 것이 사건이다. 말하기 곤란하다는 거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질문에 이렇게 얘기한다.

“노무사는 사건을 이겨 주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싸워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제신청 기간 동안 외롭지는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법률지원센터에 채용돼 일하면서부터 내 직업에 대한 의심이 점점 깊어진다. 내가 하는 일이 뭔가. 조합원들이 해고를 당하면 구제받을 수 있도록 구제신청을 하는 것인가. 하지만 내 승률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그러던 중 진기승 열사 사건을 대리하게 됐다. 나는 전북버스지부의 사건과 상담을 전담하는 ‘버스노무사’다. 전주지역에서 노동법 내지 고용노동부 혹은 노동위원회 사건과 관련한 버스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전북버스지부도 이런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요즘은 ‘나는 당신들의 전담 노무사가 아니다’는 농담을 하곤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당연히 진기승 열사 사건도 내가 대리를 했다.

1차와 2차 구제신청을 포함해 중앙노동위원회까지 1년 넘게 진기승 열사 사건을 대리했다. 진기승 열사 사건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초심은 부당해고로 인정받았으나, 재심에서 쟁점에 대한 공정한 심문이 없어 정당한 해고로 뒤바뀌었다. 중노위 심문회의가 끝나고 진기승 열사와 전주로 내려오는 버스에서 나는 진기승 열사에게 따듯한 위로의 말이나 희망을 주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승패에 매우 연연했는데, 중노위에서는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혼자 너무 힘들어서 진기승 열사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진기승 열사가 자결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그 당시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간다면 진기승 열사에게 "판결과 상관없이 폭행사건에 관해 억울한 면이 있으면 다 얘기하세요", "괜찮아요. 이제 겨우 노동위 단계가 끝난 거예요. 소송에서 무조건 이길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그랬다면 분명 지금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며, 당시 버스사건을 외면하고 무기력했던 못난 노무사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진기승 열사가 자결을 시도한 다음날 신청여객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나는 국기봉을 바라보고 한없이 울었다. 국기봉은 진기승 열사가 자결한 곳이다. 그 순간 얼마나 두렵고 외로우셨을까. 왜 나는 버스노무사로서 희망을 드리지 못했을까. 그리고 스스로 다짐했다. 앞으로 언제까지 노무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하는 동안에는 절대 신청인들을 외롭게 하지 않겠다고, 다시는 다른 사람을 당신처럼 외롭고 두렵게 하지 않겠다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천성이 게을러서 그런지 신청인들을 외롭게 하지 않을 방법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지노위에서 전화가 왔다. 국선사건을 맡을 수 있냐고 묻는다. 신청자의 직업이 뭐냐고 물으니 관광버스 운전기사라고 한다. 이런, 버스는 내 운명일까. 정리되지 않은 사건들이 많지만 ‘콜’을 외치고 상담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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