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내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서도 비정규 노동자 규모가 607만7천명을 기록했다. 보수적으로 비정규직을 분류·집계하는 정부 통계에서 그 규모가 600만명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경환 경제팀도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함을 종종 얘기한다. 지난달 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내 임기 중에 노동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다”며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들리는 말을 보면 종합대책에 포함될 내용은 차별 해소에만 국한되지 않을 듯하다. 파견 허용업무 확대는 물론 기간제 노동자의 기간제한 연장 얘기도 나온다. 벌써부터 찬반 논란이 뜨겁다. 당사자들이 생각하는 종합대책의 모습을 들어 봤다.


노조 만들고 교섭할 권한 보장이 가장 중요 

이상원
한국노총비정규직연대회의 의장

최근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다는 설이 있는데, 이미 끝난 얘기다. 고용노동부는 이전에도 ‘100만 해고설’을 제기하면서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위해 고용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모두가 허구였다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 더 이상 쓸데없는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다.

정부가 내놓을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고용을 안정화하고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는 여러 대책이 담겼으면 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비정규직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고 근로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노조를 결성하고 사용자와 협상을 벌일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직에게는 이 문제 해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들 노동자는 노조를 만들기도 힘들지만 만들었다 해도 교섭 상대가 없거나 있더라도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사실상의 사용자인 원청이 뒷짐을 지고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할 수 있도록 제도만 바꿔도 근로조건을 많이 개선할 수 있다.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이것이 열악한 위치에 있는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대책이다. 이런 조치가 꼭 대책에 담겼으면 한다.

비정규직 보호, 노동유연성 함께 고려해야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고용노동부가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진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 지에 대해 많은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정규 근로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고용안정성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기본적인 인식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처우개선 방향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저해하고 일자리를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즉 비정규 근로자들의 처우 보장과 동시에 노동시장의 유연성 보장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종합대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기업이 비정규 근로자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게 돼 버린 국·내외의 고용환경과 기업이 직면한 글로벌 경쟁체제를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향후 글로벌 경제·산업 전망, 노동시장 예측을 바탕으로 기업이 실천할 수 있는 안들을 제시해야 한다. 비정규직 보호를 이유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득주도 성장하려면 비정규직 줄이고 소득 높여야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논란의 중심에 선 ‘초이노믹스’의 골자가 소득주도의 경제성장이라고 한다. 소득을 높여 소비를 늘리고,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얘기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대책 역시 초이노믹스의 취지에 걸맞게 나와야 한다. 방법은 세 가지다. 비정규직·정규직 할 것 없이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를 해소하면 600만명 넘는 비정규 노동자의 임금소득이 올라간다. 두 번째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점차 줄여 가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노동시장 사다리를 만들면 된다고 한다. 현실을 모르는 말이다. 비정규 노동자가 사용기간 2년을 꽉 채워서 해고되는 현실에서 사용자의 선의로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도록 해서 정규직 비중을 높여 전체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방법이다. 서울시가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하는 비정규 노동자를 공무직으로 전환한 사례는 공공부문과 민간기업이 벤치마킹해야 할 사례다. 마지막으로 생활임금 수준에도 못미치는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을 웃돌 정도로 인상해야 한다. 국민소득이 2만6천달러에 달하는 나라에서 대부분의 노동자가 연 2천만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같은 꼼수를 쓰지 말고 사용자가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한번 비정규 노동자는 평생 비정규 노동자인 현실에서 의미 있는 분기점을 만들기를 바란다.

간접고용 해법 단초라도 보여야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

대통령 시정연설에서 언급된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역시 공허했다. 정규직 전환은 여전히 기업의 재량에 맡겨 놓아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 시정연설만 보더라도 종합대책에 대한 기대는 접는 게 현명하다.

기간제한 연장이 고용안정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심각한 고용불안과 차별에 고통 받는 비정규직 중환자를 하루빨리 치료하지는 않고 호흡기를 다는 기간을 연장해 돈을 벌어보자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대책의 핵심 원칙은 엄격한 사유로 비정규직 고용을 제한하는 동시에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을 탐하는 기업들의 태도로 볼 때, 법으로 엄격히 규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럴 의지가 없다.

최소한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기도 한 만큼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고용시장의 흐름을 조성해야 한다. 더불어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는 분야나 상시업무의 비정규직 고용은 반드시 금지하자. 기간제 대책만으로는 종합대책으로 부족하다. 불법파견 등 간접고용의 폐해가 심각한 상태다. 이에 대한 문제인식이나 해법의 단초만이라도 보여 줘야 정부의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도 이제는 해결할 때가 됐다. 고용안정이나 권리보장 외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는 차별해소다. 차별이 잔존하는 무기계약직은 '무기한 비정규직'일 뿐이다. 제대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고용기간만 늘리는 것은 반쪽 대책에 불과하다. 기업의 엄살이나 재정부족 핑계를 대지 않기를 바란다. 제도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정책 실천 의지다.

상시지속업무에 대한 정규직화 대책 필요 

박재범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비정규 노동자는 607만7천명으로 지난해 같은달에 비해 13만1천명 증가했다. 이 중 203만명이 시간제다.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고용률 70%’의 실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16개 나라 중 비정규 노동자가 1년 뒤에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우리나라가 11%로 꼴찌라고 한다. 정부가 조만간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한다는데 이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해고된 뒤 자살한 기간제 여성노동자만 봐도, 사측은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고자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했다. 이런 편법과 외주화·민간위탁의 무분별한 확산이 전 산업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 방식은 이미 실패한 정책이다. 이제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 원칙임을 명시하고,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기간제 근로계약 체결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한 삼성전자서비스·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씨앤앰·티브로드 케이블방송 등 전 산업에 걸쳐 드러나고 있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간접고용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상시·지속업무에 대한 원청의 정규직화 방침이 대책에 동반되지 않는 정부의 종합대책은 실효성이 없다. 정부의 대책 없는 종합대책이 오히려 비정규직 확산과 노동시장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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