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현대중공업은 우리나라 중화학공업 성장을 견인한 조선해양산업 부문 선두주자다. 현대중공업노조는 19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축이었다. 그러나 전투적 민주적 노조 15년, 노사 타협적 노조 12년을 거치면서 산업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노조운동은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인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조선해양산업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게다가 현대중공업은 재벌구조가 갖는 무소불위의 소유자 권한과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전문경영인 체제하에서 전근대적인 관리방식을 답습하는 관리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노조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필자들이 현대중공업의 사업구조·경영관리구조·고용구조·임금구조·노사관계의 현재를 진단하고 향후를 전망하는 글을 보내왔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를 6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글 싣는 순서]
① 조선산업 흐름과 현대중공업 쟁점 개관
② 현대중공업 경영구조와 관리구조 난맥상
③ 고용부문 쟁점과 과제
④ 임금부문 쟁점과 과제
⑤ 노사관계 쟁점과 과제
⑥ 현대중공업 노사가 나아갈 길
 

 

 

1993과 94년에 직제개편 연구조사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가 주관하는 노사관계 진단을 위해 현대중공업을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다. 이번 현장방문은 20년 만이다. 예전 군대 위병소를 방불하게 하던 정문 풍경이 경비들의 복장과 건물 외관이 바뀌어서 많이 변했나 했는데, ‘을’의 처지가 분명한 방문객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고압적이었다.

노조 방문객에 대해 시비를 거는 듯한 태도도 예전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게 없었다. 90년대 중반 민주노조의 성장과 정체에 뒤이은 자본의 반격인 신경영전략의 일환으로 한마음운동을 벌여 나갔을 때보다 공장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예전에 가능했던 공장 관찰은 이제 불가능하단다.

20년 전 풍경의 현대중공업

반면 13년 만에 복귀한 자주적 민주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성원은 뜨거웠다. 조합원들의 참여와 지지도 80·90년대 ‘뜨거웠던 불만의 계절(the Hot Summer of Discontent)’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노조활동이 재활성화되고 있는 배경에는 회사의 경영방식과 관리방식을 향한 조합원들의 뿌리 깊은 불신과 불만이 깔려 있다. 자리보전에 급급하며 성과급만 챙기고 미래설계는커녕 전근대적 운영방식을 고집하는 경영진, 현장을 감시하느라 정작 자신이 할 일을 못하는 관리자들, 그리고 수렴청정형 경영행태로 이런 방만하고 시대착오적 경영관리방식을 조장하는 최대 주주의 행태에서 비롯된 결과다. 시장상황 때문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무너져 가던 현대중공업을 그저 지켜봐서는 안 되겠다는 조합원들의 기대와 열의가 새로운 가능성의 원천인 민주노조를 향해 쏠려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요즘 현대중공업의 실적이 나쁘다고 야단인데, 현장 노동자들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 이제 온 것일 뿐이라는 반응이다. 침몰하는 현대중공업호에는 선주도 선장도 조타수도 자기 안위를 돌볼 뿐 참신한 발상과 혁신적 사고 같은 건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중공업 작업장체제 연구조사의 중간 과정을 정리한 이번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드는 한 가지 생각은 시대를 한참이나 뒤쳐져 가는 현대중공업의 작업장체제가 많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 주주 이해 중심 경영구조

현대중공업의 퇴행적 행보의 원인은 최대 주주의 이해를 중심으로 짜인 경영구조 탓이다. 10.15%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 정몽준씨는 현대미포조선 등 관계사 지분을 합해 21.3%의 지분으로 현대중공업을 실효 지배하고 있다. 대주주로서 높은 배당을 받지만 경영 책임은 지지 않는다. 당기순이익은 2011년 1조9천536억원에서 2012년 1조1천113억원으로 43% 줄었고, 지난해 4천516억원으로 59.4% 감소했는데, 현금 배당성향은 반대로 12.5%·13.8%·27.1%로 치솟았다.

그렇다고 경영자들이 전문경영인으로서 자율적 권한과 그에 따른 책임을 공유하는 구조도 아니다. 여기에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소유지배구조의 허점이 존재한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회사의 역할을 하며 순환출자 방식으로 최대 주주의 지주사·계열사 지배를 돕는 출자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 재벌에 보편적인 기업 소유지배 행태인데, 이로 인해 동종업체 대비 10% 높은 판매관리비와 대손상각비 부담을 떠안고 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평균 매출액 대비 판매관리비 비율은 현대중공업이 5.4%로 삼성중공업(4.7%)이나 대우조선해양(4.18%)보다 높다. 이는 현대중공업 종사자의 이해에 반하는 것으로 최대 주주의 이해관계를 돕기 위한 불필요한 손실액이다.

또한 현대제철을 통한 원재료 구입과 실체가 모호한 신흥 계열사 힘스를 통한 부자재 구입으로 과도한 비용부담과 불필요한 수익 누출을 초래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을 유지하기 위해 방만한 사업구조가 현재 손실을 가져오고 미래전망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이 역시 최대 주주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치르는 대가다. 가장 큰 문제는 최대 수혜자인 최대 주주가 방만한 경영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막후에서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퇴행적 작업장체제

후진적 경영구조는 퇴행적 작업장체제를 낳는다. 60%를 넘어선 하청 비율과 이를 더 확대하려는 비용절감 일변도의 고용전략은 ‘저숙련-저부가가치의 함정’으로 이끈다. 차별과 착취의 책임을 간접고용 구조로 전가한 대가는 작업장 통합성을 저해하고 고숙련 기반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낮은 고정임금과 높은 변동임금 체계를 고수하며 ‘최저임금+20~30%’에서 결정되는 시급제 임금구조는 한국의 생산직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기업종속적 관계를 재생산해 온 기반이다. 문제는 일을 그저 많이 하는 게 능사가 아닌 시대에도 노무관리의 편의상 해 온 대로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급구조를 보면 현대중공업은 과거의 생산직을 사무관리직의 하층계급으로 다뤄 온 직군차별적 이중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승진·승급체계에서 직군차별을 없앤 것이 94년인데, 아직도 생산직은 한 직급단계를 더 거쳐야 할 뿐 아니라 동일 근속에서 한 직급에서 세 직급까지 아래 단계로 승진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부서장 고과중심으로 주관적 평가 위주인 인사제도는 노무관리 중심의 작업장관리라는 구시대적 미망의 쌍생아다.

고용·임금·인사관리의 구조는 비인간적인 인간관계 관리를 축으로 이뤄진 병영적 노무관리를 지속시키는 주축이다. 억압적 관리방식과 함께 말 잘 듣는 노조 집행부를 내세워 담합구조를 형성하는 데 초점을 둠으로써 작업장에 수동적·퇴행적 행태를 부추긴다. 관리자들은 노무관리 실적이 아니라 자신의 일로 평가받아야 한다.

대안적 작업장 체제를 위해

경영구조 측면에서는 대안을 추동할 방법이 적어 최소한의 합리성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기업별 노사관계를 다루는 한계다. 후계상속 등 경영구조의 지각변동을 앞두고 있긴 하나, 일단 변화의 시작을 작업장에서 찾아본다.

현대중공업이 구태를 벗고 참신한 작업장체제로 이행하려면 현장 노동자의 등 돌린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장을 대변하는 민주노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정상 상태로의 회귀를 위한 출발점이다.

현대중공업은 '관리'를 할 게 아니라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일방적 노무관리에서 대등한 교섭관계로의 전환이다. 그래서 임금구조와 고용구조·시간제도·인사제도·노사관계 구조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한 전향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월급제 전환과 시간제 개편, 인사제도의 합리성 회복에 더해 작업장 안정성과 진취성을 달성할 고용구조까지 결합해서 새로운 작업장으로 탈바꿈할 선택지는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