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새로운 노동형태, 학습근로자가 탄생한다. 학습근로자는 사용자와 학습근로계약을 맺고 노무를 제공함과 동시에 교육훈련을 받는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청년일자리 정책의 핵심사업인 일·학습 병행제도에 의한 것이다. 기존 현장실습제도가 교육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며 참가자들에게도 주로 교육생의 지위를 부여한 반면, 일·학습 병행제는 그들의 노동자성을 명확히 규정하고 취업자 지위를 가지도록 하고 있다.

청년들이 다양한 취업경로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보험에 들듯이 대학에 진학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직업교육·훈련을 혁신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교육과 노동시장 사이의 제도적 교량을 튼튼히 해야 한다. 당장 정규교육 수준에 적합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고학력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부 입장에서 딱히 손쓸 방안이 없으니 차라리 ‘선취업 후진학’을 유도하는 정책이 효과적일지 모른다.

문제는 ‘깔때기’다.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국정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그것으로 모든 일자리 정책이 수렴한다. 현장에서 부작용을 낳고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도 결국에는 전일제 일자리를 반으로 쪼개 두 배의 고용지표 개선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일·학습 병행제 또한 공세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올해 1천개 기업에서 7천명 채용을 목표로 하고, 현 시점에 이미 1천700개를 넘는 참여 기업이 선정됐다. 2017년까지 1만개 기업까지 확대한다고 하니 놀라운 속도다.

명목상으로 일·학습 병행제는 분명 직업훈련 혁신과제로 도입됐는데, 지금의 양상은 마치 고용률 지표 개선을 목표로 하는 직접 일자리 창출 정책처럼 실행되고 있다. 지나치게 양적 확대 중심이다. 이런 왜곡을 바로잡지 않으면, 정책이 구현되는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청년구직자와 중소기업 사이의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된 중소기업 청년인턴제가 사업의 좋은 취지에도 아르바이트 수준의 임시적 청년일자리를 늘리는 데 그치고 만 것과 마찬가지다.

취지에 맞게 학습근로자에 대한 교육을 내실 있게 하는 한편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노동과 교육의 경계에 있는 유사한 형태의 제도인 특성화고교와 대학 산학협력 현장실습의 경우 교육을 빙자한 신(新)노동착취라 할 정도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청년유니온 조사 결과 호텔관광·조리·외식 관련 학과의 현장실습은 단순노무를 대체하는 성격의 일을 하고 있음에도 월 실습비는 평균 35만원에 불과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일·학습병행제 참여기업 1천735곳 중 545곳이 최근 5년간 근로감독에서 노동관련법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다.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는 산업현장 일·학습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 제정안은 일·학습병행, 즉 학습근로에 대한 법적 규정을 시작으로 학습근로자·학습기업·학습근로계약에 대한 조항을 담고 있다. 학습근로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규정함으로써 노동관계법 모두가 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노동보호라는 측면에서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선 학습근로자에 대해 수습기간을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미 학습근로 자체가 교육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수습기간을 둬야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수습기간 중에 있는 학습근로자의 해고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어 학습근로자의 고용안정성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일과 교육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학습근로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원칙이 확인되지 않는다.

계속고용 문제에 있어서도 각종 평가를 통해 최종 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에 평가권을 가진 사용자가 정규직 전환을 빌미로 불법적 노동 강요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대로 법이 발의되면 학습근로자는 현장실습의 성격과 단기계약직 노동의 성격이 혼합된 ‘정부주도형 신(新)비정규직’에 다름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 계약직 채용을 학습근로자 채용으로 대체할 유인이 높다. 일·학습 병행제는 걸음마 단계에 있는 정책이다. 노동보호의 기본을 세우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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