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 23일 울산지법은 2010년 11월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벌인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의 파업이 위법하고, 이로 인해 현대자동차가 입은 손해에 대해 7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의 사내하청 활용이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한 후, 그리고 2010년 대법원이 현대차의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확인한 후 현재까지 10년 이상 불법을 자행한 현대차나 사내하청업체 사용자 중 단 한 사람도 처벌받지 않았지만 불법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며 투쟁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현재까지 18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가 인용됐다.

그러나 오늘 말하려는 것은 이런 모순이 아니다. 8월18일 현대차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현대차 아산사내하청지회가 합의한 ‘사내하도급 관련 합의서’에는 “회사측은 근로자지위확인 및 체불임금 청구소송 취하서를 법원에 제출한 자에 대해 민·형사 소송을 즉시 취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즉 불법파견에 따른 현대차와의 직접고용관계 성립을 확인하는 소송을 취하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청구를 취하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차는 이달 17일 68명의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취하했고, 23일 울산지법은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122명의 조합원에 대해 70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가 참여하지 않은 8·18 합의의 핵심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비롯한 제반 소송을 포기하는 자에 한해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 신규채용 방식으로 사내하청 노동자 중 일부를 현대차가 직접채용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10년 이상 불법파견을 사용한 것에 대해 현대차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현대차의 정규직 지위를 법적으로 확인받을 수 있는 자신의 권리를 영구히 포기하는 비정규직에 한해 신규채용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파업 참여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가진 힘과 돈을 활용해 노동자들의 법적인 권리행사마저 막는 동시에 손해배상 청구도 ‘탕감’해 주겠다는 오만에 다름 아니다.

파업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가 실제 불법파업으로 인해 사용자가 입은 손해를 메우는 목적이 아니라 노동기본권 박탈, 노조 파괴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비단 현대차만이 아니다.

한때 조합원이 2천250명을 넘었던 금속노조 만도지부는 현재 90명의 조합원만 남아 있다. 사측은 남은 사람들에게 3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발레오만도지회는 621명의 조합원이 98일의 직장폐쇄 기간 동안 떨어져 나가 58명이 남았고 이들에 대해 회사가 26억원의 손배 청구를 무기로 협박해 결국 해고자 28명만 남았다. 상신브레이크·보쉬전장 모두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현행법에 의해 설령 불법으로 낙인찍힌다고 해도 이에 대해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또 이를 인용하는 법원의 태도도 문제지만, 손해배상 청구를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권 박탈과 노조파괴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더욱 문제다.

이러한 손해배상 청구는 그 자체가 부당노동행위로 규제돼야 마땅하고, 이러한 손해배상 청구는 사용자의 소권(訴權) 남용으로 법적으로 인정돼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현대차의 손해배상 청구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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