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홍
공인노무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얼마 전 상담을 하러 사무실에 찾아오신 버스노동자의 얼굴을 봤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다. 몸의 오른편 전체가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는데, 말씀하시는 내용도 함께 온 다른 분의 해석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 정도였다.

뇌경색이었다. 수원에서 춘천까지 승객을 태우고 시외버스를 운행했던 해당 노동자는 운행 중 우측 전신마비 증세가 와서 가까스로 차를 세우고 구급차에 실려가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진단이 있은 후 곧바로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는데, 공단은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나 급성 및 만성과로와 스트레스가 없었고 고지혈증 등의 기존 질환으로 인한 뇌경색 발병에 해당하므로 업무와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불승인 처분을 했다.

해당 노동자는 공단의 재심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소송으로 진행하고 싶다고 해서 방문한 것이었는데, 불편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뇌경색의 경우 인정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시내버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2.1%가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시내버스 노동자 고용실태 조사 및 고용안정을 위한 정책방안, 2006년 12월)

주로 겪는 질환은 위장병(59.3%)·허리통증(55.1%)·목통증(36.8%)·신경성질환(35.5%)·시력장애(35.2%)·호흡기질환(31.0%)·두통(24.1%)·치질(21.9%)·방광질환(19.2%) 등으로 나타났다. 불규칙하게 식사를 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자세로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는 버스노동자의 업무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특히 근골격계질환 문제가 심각했다. 어깨통증(58.6%)·허리통증(43.8%)·목통증(43.6%)·무릎통증(41.4%) 등 절반 이상이 근골격계 증상으로 드러났다. 제조업 노동자의 근골격계질환 증상 유병률이 23.9%인 것과 비교해 봐도 매우 높은 수치다.

한편 광주근로자건강센터가 지난해 광주 시내버스 운전자 470여명을 대상으로 평가와 상담을 진행한 결과 전체 운전자의 28%가 뇌심혈관계질환 발병 관련 고위험군으로 조사됐다. 같은해 철강회사 남성 노동자들의 뇌심혈관계질환 발병 위험도 조사에서 15%가 고위험군으로 파악된 바 있다. 버스노동자들의 경우 이의 두 배에 이르는 셈이다.

버스노동자들이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연령이 높고, 장시간 근무와 높은 업무 긴장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높으며,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비만율이 높은 점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실제 버스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3시간, 올해 1월 기준으로 월 273시간에 이른다.

상기 사례만 보더라도 버스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지극히 열악함을 확인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상시적인 안전보건상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 또한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은 획일적인 판단기준만을 고수하면서 버스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개선의지를 전혀 보여 주고 있지 않다. 노동부는 고시에서 뇌심혈관계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급성·단기·만성적 과로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기준들의 적정성 여부는 차치하고, 실제로 근로복지공단은 그중 주로 급성과로와 단기적 과로를 기준으로 업무상질병 발생 여부를 판단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점이 그러하다. 버스노동자의 척추재해(목·허리통증)의 경우에도 중량물 취급 정도와 추락·전도 등 발생원인이 뚜렷한 경우에 한해 인정을 하고 있는데 이 또한 버스노동자의 노동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버스노동자 건강권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지금껏 사각지대에 방치돼 온 사실 자체가 의아할 따름이다. 나와 내 가족 또는 내가 아는 누군가는 지금도 마을버스·시내버스·시외버스·고속버스 등을 타고 있을 것이다. 모든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버스노동자가 아프다면 그대로 두는 게 과연 온당한가. 질문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정확한 실태 파악과 개선이 시급하다.

최근 근로복지공단 광주지역본부 광산지사는 출근 도중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한 달 후에 숨진 버스노동자에 대해 그러한 사망이 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 고인이 버스운전 업무를 12년 동안 해 왔고, 일일 12∼13시간, 월 175시간 이상 근무하며 적은 수면시간과 매일 출퇴근으로 인해 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였으며 식사 역시 불규칙하거나 차량 운행으로 인해 끼니를 거르는 경우도 많았던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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