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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권력관계다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양대 노총의 공공부문노조 공동투쟁이 용두사미가 됐다고 뉴스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두고 박근혜 정부와 맞서 왔던 공공부문 노동계가 완패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38개 중점관리 공공기관 중 부산대병원·한전기술·철도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공공기관들이 정상화 관련 노사합의를 마무리해 합의율이 92%에 이른다고, 중점 외 점검기관까지 포함하면 합의기관은 더욱 많다고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의 말을 인용해서 보도하고 있다. 경영평가 성과급에다 임금동결 협박에 총파업은 고사하고 개별적인 합의로 나가떨어졌다. 벌써 오래다. 공공기관을 개혁하겠다고 선진화니 정상화니 새로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공공기관 대책이 발표됐고 그 대책의 이행을 감시했다. 고용이 철밥통이라고, 임금과 복리후생이 방만하다고 개혁하겠다는 것이 공공기관 노동자에겐 선진화고 정상화라고 했다. 그러니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조합원의 권리를 위해서 맞서야 했다. 그랬는데 완패다. 공공부문 노동자도 민간부문과 다름없이 고용은 불안해야 하고 임금과 복리후생은 삭감돼야 한다는 권력의 기치에 노조마저 개별적으로 나가떨어졌다. 어디 이번 공공투쟁만이겠는가.


2. 지난 18일 학술토론회가 있었다. 심란한 주제였다. 공공부문 노사관계와 노동법에 관한 공개학술토론회였다. 최근 이 나라에서 공공부문의 노사관계가 크게 문제가 되다 보니 서울대 노동법연구회가 주최했던 것이다. 토론회는 일방적인 성토에 가까웠다. 법과 법집행에 대한 비판이 발제고 토론이었다. 철도노조·전교조·공공기관노조·공무원노조까지 근래 이 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노조활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공공부문이다. 해고자문제로 노조설립신고조차 되지 않거나(공무원노조), 설립신고돼 오랜 기간 교섭한 뒤 단체협약을 체결해서 활동해 왔어도 졸지에 법외노조 통보를 받는다(전교조). 공무원이든 교원이든 설사 노동조합이 있어도 파업 등 쟁의행위는 일체 금지된다. 공공기관노조에 대해서는 선진화다 정상화다 해서 단체협약을 개악하도록 국가 권력이 온갖 수단으로 압박한다. 그리고 단체교섭해서 단체협약을 체결해 봐야 예산 및 단체협약에 따른 인사·보수 규정의 재·개정을 주무기관장이 승인해 주지 않아 의미 없게 돼 버리기도 한다(공공기관). 법은 주무기관장에 승인권을 줬고, 대법원도 공공기관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이라도 예산 또는 내부규정이 부결 또는 불승인된 경우에 해당 단체협약의 효력이 부인된다고 하고 있다(대법원 2002.11.13 선고 2002다24935 판결 등). 헌법재판소도 해당 법률규정이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2004.8.26 선고 2003헌바58·65 결정 참조). 공공부문 노동자는 도대체가 노동조합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지경이다. 차라리 노동조합을 할 수 없다는 법이 있었다면 노동조합을 하겠다고 힘을 쏟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노동기본권 보장하라고 외쳐대느라 목만 아프면 그만이었다. 법률이든 대통령령이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든 대법원의 판결이든 오늘 이 나라에서는 도대체가 공공부문 노동자가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금지하는 데만 관심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는 국가의 법과 법을 집행하는 권력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으로 단체교섭하고 단체행동하는 것이 금지됐거나 법으로 허용되고 있다 해도 실제로는 어렵다. 공공부문 노동자에게는 국가는 자신의 사용자이거나 자신의 사업장의 주인이다. 그런 국가 권력이 법을 제정해서 공공부문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고 노동기본권을 행사해서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부정한다. 모두 실질적으로 사용자라고 할 수 있는 권력이 하고 있는 짓이다. 그러니 공공부문노조의 공동투쟁이 있기 전에도 공공부문 노동자는 권력 앞에서 언제나 완패했던 것이다.


3. 공공부문, 공공이 무엇인가. 자본의 세상이 시작된 이후 노동운동이 오매불망 꿈꿔 온 세상이 아닌가. 국가부문을 포함해서 공공부문은 국가의 영토다. 사유지가 아닌 공유지다. 소유로 보자면 공공부문은 자본의 영토가 아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사유지를 몰수하고서 공유지·국유지로 전환시켜 내는 운동이 세워 낼 세상일 게다. 노동운동이 아니라도 사적소유가 만악의 근원이라고 비판하는 사회운동이 있다면 그 운동이 실현하고자 하는 세상일 게다. 그런 세상에서 노동자는 모두가 공공부문 노동자다. 소유관계로 세상을 재편하자면, 현재의 사적 소유를 공적 소유로 전환하는 것이니 모든 노동자를 공공부문 노동자 내지 공무원으로 그 신분을 바꿔 내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노동조합이든 뭐든 노동자의 단체가 노동자권리를 위해 요구해서 관철할 교섭과 쟁의의 권한이 없다면 무엇인가. 공공이라고 공공부문은 모두의 것이라며 거기서 노동자는 공공의 권력자·국가권력으로 바뀐 사용자에 복종하는 자다. 그저 소유로 세상을 구분 짓게 되면 공공의, 국가의 소유면 인간의 역사가 그 목적지에 다다른 것이라고 착각한다. 문제는 소유가 아니라 주인과 노예의 질서다. 그 세상이 어디라도, 무엇이라도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지배와 복종의 권력관계가 존재한다면 노동자는 여전히 사용자에 맞서 제 권리를 확보해야 하는 자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단결해서 교섭하고 행동할 수 없다면 여기든 거기든 어디든지 세상은 노동자를 배신하고 서 있다.


4. 자본의 영토, 시장은 계약이 지배한다. 계약은 자유다. 자본의 재생산이 이뤄지는 사업장에서 자본이 체결한 노동과의 계약은 노동자의 자유를 박탈한다. 자본이 노동을 복종시키는 걸 계약한다. 권력, 사람을 복종시키는 힘이다. 바로 그 권력관계를 형성하는 계약이다. 근로계약이야말로 자본이 노동을 복종시키는 권력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지시·명령하는 관계, 자본의 질서는 바로 이 노동에 대한 권력관계로 재생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이 이 세상에서 다른 계약과는 현저히 다르다. 지시·명령, 예속, 복종. 자본에 복종하는 자유의 박탈이란 점에서 다르다. 근로계약은 자본의 노동에 대한 권력관계를 만들고 그것으로 자본의 지배, 자본의 재생산이 실현될 수 있다. 그러니 문제는 권력관계다. 노동에 대한 권력관계가 폐지되고서야 노동의 자유, 노동의 세상을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그런 세상을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자, 자본과 노동은 소유로 구분되는 것이라며 소유관계로 문제를 바라봤다. 자본의 질서, 계약의 자유가 작동하는 세상에선 소유권 없이 노동을 복종시키는 자본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자본의 질서, 계약의 자유가 아닌 세상에선 소유권 없이 노동을 복종시키는 다른 힘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노동자를 복종시켜 사용하는 자가 있다면 국가 권력이든 뭐든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자신이 주인이 되기 위해 맞설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의 자유를 꿈꾼다면 그 힘·권력의 문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물건을 소유했다고 사람을 소유한 것은 아니다. 민법상 물권관계와 채권관계가 다른 것처럼. 물건에 대한 지배가 곧 사람에 대한 지배로 되는 것은 아니다. 물적 지배를 인적 지배로 전환시키는 계약이 근로계약이다. 그 계약이 만들어내는 사람을 복종시켜 사용하는 관계, 권력관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5. 내일은 오늘을 통해서 온다. 공공부문 노동문제는 노동을 복종시켜 사용하는 권력과의 문제, 권력관계의 문제다. 민간부문이든 어디서든 노동문제는 결국 권력관계다. 그 권력관계를 비판해 해체함으로써 노동의 자유가 세상에 올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권력관계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러니 어디서든 복종이 노동자의 운명이었다. 소유가 권력, 복종의 힘이라고 사적소유를 공적소유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노동자에게 내일을 약속해 왔다. 노동자를 복종시켜 사용하는 데서 사용자인 공공부문이든 자본이 사용자인 민간부문이든 노동자에겐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 노동자에겐 모두가 자신을 부리는 주인일 뿐이다. 어디서든 노동자가 복종해야 하는 것, 권력관계가 문제였다. 자신을 복종시켜 부리는 그 힘을 비판해서 극복해야 한다. 오늘은 완패일지라도 끝까지 자신을 복종시키는 힘이 문제라고 권력관계를 비판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 공공부문 노동자의 문제는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의 일반문제다. 복종이 노동자의 운명일 수는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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