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는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린 극영화다. 염정아·문정희·김영애·도경수가 출연했고, 부지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1. 아줌마들, 계약해지 문자를 받다

선희(염정아)는 5년 동안 벌점이 하나도 없는 모범사원이다. 초과근무든 ‘땜빵’이든 마다 않고 일한 덕분에, 곧 정규직을 시켜 주겠다는 말도 들은 상태다. 혜미(문정희)는 어린 아들을 둔 싱글맘으로, 회사가 요구하는 초과근무를 할 수 없는 탓에 관리직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미진(천우희)은 대학 졸업 후 면접만 50번을 본 ‘88만원 세대’다. 마트에서 임시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청소노동자 순례(김영애)는 20년간 청솟밥을 먹은 사람이지만, 언제나 노동자로서 당당하다. 보일러실 옆 좁은 휴게실에서 잠깐씩 쉬고, 때로는 ‘진상’ 고객들에게 부당한 감정노동을 요구받는 처지지만, 이들은 자기 노동으로 살아가는 자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회사는 인력을 외주화하기로 결정한다. 계약직 직원들을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하기로 한 것이다. 회사는 용역업체를 선정하고, 한 달 안에 계약직 직원들의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결정한다. 마침내 계약직 직원들에게 ‘고용계약 해지’ 문자가 날아든다. 직원들은 우왕좌왕한다. 예전 직장에서 해고당한 경험이 있는 혜미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회사측과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순식간에 노조가 만들어지고, 혜미·선희·순례가 교섭대표로 나선다.

그러나 회사는 이들을 만나 주지 않고, 아예 안 보이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마침내 노조는 파업에 돌입한다. 근무복 속에 단체 티셔츠를 입고 있다가, 일시에 매장을 점거하며 파업에 돌입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회사는 아르바이트생을 투입해 파업을 무산시키려 하지만, 노동자들은 몸싸움 끝에 이를 막아 낸다.

회사는 점거를 풀면 협상에 임하겠다고 회유하는가 하면, 매장 내 전기를 끊고 급기야 경찰기동대를 투입해 노동자들을 끌어낸다. 그러나 이들의 싸움은 정규직노조의 결성을 촉발하고, 정규직노조와 함께 싸움을 결의하면서 다른 국면을 향해 나아간다.

<카트>는 2007~2008년 홈에버 사태로부터 출발한 영화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2009년 처음 비정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마침 김경찬 작가가 2011년 완성한 시나리오 초고가 심재명 대표에게 들어왔고, 그 후 2년간의 수정을 거쳐 마침내 영화로 완성됐다. <카트>의 시나리오 안에는 홈에버 투쟁은 물론이고,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 등 실제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카트>는 그동안 기사를 통해 접해 왔던 노동문제를 주류 상업영화의 소재로 삼은 영화다. 지극히 이례적인 시도임에도 결과는 만족스럽다. 주제를 전달하는 힘은 물론이고 극영화로서의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2. 노동문제가 바로 내 문제임을 설득해 내다

그동안 노동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특별한 문제로 치부됐다. 흔히 시민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조차도 개별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파업 등 노동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로 취급하기 일쑤였으며, 관심을 갖기에는 너무 특수하거나 너무 지엽적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이는 물론 노동자와 시민을 분리시키고, 심지어 대립시키는 구도를 만든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때문이지만 시민사회 내부의 각성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

이러한 심리적 장벽이 깨지기 시작한 계기가 2011년 초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에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 같은 시민들이 결합했던 사건이었다. 그해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김진숙 동지를 지지방문하는 희망버스가 출발함으로써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조우가 이뤄졌다.

<카트>가 뚜렷이 보여 주듯, 고용주가 마음대로 노동자를 부리고 자를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한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언제든지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를 당할 수 있다. 이는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대나 직종을 불문하고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고객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에 적대적이었다. 파업을 깨기 위해 대체인력이 투입된 매장에서 울부짖는 노동자들을 향해 쇼핑하던 고객들이 묻는다. “당신네들 문제에 왜 우리가 피해를 당해야 하냐”고. 선희는 답하지 못한다. 이는 대답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거울을 비추기 위해 삽입한 장면일 것이다.

<카트>는 부당해고·노동조합 설립·점거 파업·회유·손배소·공권력 투입 같은 단어가 보통 사람들의 삶과 떨어져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 아줌마들과 같은 사람들, 즉 내 이웃이자 내 가족의 문제이며 곧바로 내 미래의 문제이거나 내 현재의 문제일 수 있음을 설득시킨다.

영화는 파업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소재에 함몰되지 않고, 가족영화이자 성장영화의 틀을 활용한다. 영화는 대형마트 계산원인 엄마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아들이 파업이라는 힘든 시간을 겪으며 갈등을 통해 함께 성장해 가는 모습을 담는다. 관객들은 감정이입을 통해 파업이라는 사건을 훨씬 친근하게 느끼게 되는데, 이는 노동문제를 주류 상업영화로 만든 최초의 시도인 <카트>가 달성해야 할 제1 과제를 충분히 수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3. 극영화로서 뛰어난 만듦새

<카트>는 정교하게 구성된 시나리오가 돋보인다. 여러 명의 캐릭터가 나옴에도 캐릭터들이 모두 살아 있으며, 각자 대변하는 캐릭터들의 몫이 분명하다. 캐릭터들이 평면적이지 않으며,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극적인 변천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회사에 충성을 다하던 선희가 얼떨결에 노조 대표로 나서고, 회유에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성장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정규직 남성노동자인 강동준(김강우) 위원장의 장점과 한계를 명확히 하며, 싸움의 주체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임을 분명히 한 것도 칭찬할 만하다.

영화는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단순히 피해자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파업을 통해 성장하는 주체이자, 동지들과 우정과 연대를 나누는 주체로 그리고 있다. 영화는 점거파업을 하면서 이들이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쏟아 내고 울고 웃으며 하나가 되는 환희에 찬 순간들을 그려 낸다. 영화 속 몇몇 장면들은 파업을 겪어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빛나는 감흥을 담는다.

영화는 열린 결말을 지향한다. 이는 영화가 과거의 단일한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아직 진행 중인 무수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음을 암시한다. 즉 영화 속 사건이 하나의 결말로 봉합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사건들과 폭넓게 만나면서 다양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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