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1위 대형마트인 더(the)마트에 어느 날 계약해지 바람이 분다. 매각이 진행 중이라는 소문과 함께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계약직들에게 해고가 통보된다.

입사 후 5년 동안 벌점 한 번 없이 회사에 헌신한 비정규직 계산원 선희(염정아), 어린이집에 맡겨진 어린 아들을 찾기 위해 회사의 연장근무 요청도 매번 거부했던 싱글맘 혜미(문정희), 20년간 빗자루를 잡은 청소노동자 순례(김영애), 대학졸업 후 마트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50번도 넘게 취업에 실패한 미진(천우희) 등은 노조를 결성한다. 마트 입사 전 다른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 출산 후 회사에서 쫓겨난 혜미가 앞장섰다.

이랜드일반노조 512일 파업 계기로 제작

영화 <카트>는 2007년 이랜드일반노조 파업 사태를 배경으로 한다. 이랜드그룹이 근무기간 2년이 안 된 홈에버(이랜드리테일) 비정규직 계산원들을 해고하자, 노조는 그해 6월3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홈에버월드컵점을 점거했다. 사태는 무려 512일이 지난 2008년 11월13일까지 이어진다. 해고자 28명 중 16명 복직, 노조 간부 등 12명 퇴사로 사태는 마무리된다. 반쪽의 승리, 혹은 반쪽의 패배로 기억되는 사건이다.

<카트>는 제작 단계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화제를 모았다. 비정규직을 소재로 한 국내 최초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두 차례에 걸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 일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다. 인기 아이돌그룹 엑소 멤버 도경수군이 출연한다는 이유로 10대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영화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비정규직의 모습을 선희·혜미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해고통보를 받은 뒤 그들 가족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비참하리만큼 생생하게 표현된다. 선희의 고등학생 아들 태영(도경수)은 학교급식비를 내지 못해 급식실 배식구 앞에서 돌아선다. 수학여행도 못 갈 처지가 된다. 파업을 하다 유치장에 갇힌 엄마 선희에게 실망하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 월급을 떼일 처지가 되자 그제야 엄마를 이해한다.

<카트>는 부지영(43·사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2009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부산국제영화제·도쿄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됐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이주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니마>를, 같은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연하를 짝사랑하는 마트노동자 강순임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산정호수의 맛>을 선보였다.

부 감독은 인터뷰 초기에 "저에 대해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며 "이번 기회에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말했다. <카트>는 생계 문제로 투쟁에 나섰지만 결국에는 자아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청년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기름을 끼얹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쳤다. 영화 마지막 선희는 자신을 내쫓은 마트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 사람대접을 해 달라"고 부르짖는다.

<카트>는 11월13일 개봉한다. 이날은 전태일 열사 기일이다. 이랜드사태가 끝난 지 6년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부 감독과의 인터뷰는 지난 2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이뤄졌다.

“생계로 시작했지만, 자신을 찾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

- 영화 <니마>에서 이주 여성노동자를, <산정호수의 맛>에서 여성성을 찾아가는 여성을 이야기했다. 두 작품이 <카트> 제작에 영향을 줬나.

"<니마>나 <산정호수의 맛>은 제 기획이라기보다는 의뢰받은 작품들이다. 일부에서는 두 영화를 근거로 제가 여성과 노동자에 대해 굉장히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것처럼 말한다. 물론 여자에 대한 관심은 많다. 사회 일원인 노동자에게 기본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저 역시 노동자이지 않나. 그러나 영화에 이 두 가지를 담아야겠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했던 것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오해를 풀어야겠다. 저에 대해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두 영화에서는 정치·사회적 목소리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자아를 찾아가는 사람의 목소리를 담는 것에 주력했다."

- 그러면 <카트> 역시 여성노동자들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인가.

"<카트>는 생계 문제로 시작된 여성노동자의 싸움 이야기다. 부당한 해고를 당하고 당장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나를 드러내야 돼'가 아니라 '지금 당장 생활비가 없는데 어떡하나'라는 게 일반적인 고민이지 않나. <카트>는 본인의 의지로 싸움을 계속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주인공이다. 생계 문제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자기 안의 목소리와 억울함을 세상이 외치는 것으로 이어진다."

- 영화의 주제를 대중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 절제하는 편은 아니다. 터트려야 할 때는 터트려야 하는데,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카트>에서는 직원들이 일하다 해고를 당하고, 파업에 참여하는 초·중반까지의 과정을 조금은 담담하게 보여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이 화가 나 있고, 격렬하게 반발할 수 있겠지만 그런 마음을 너무 강요하듯이 전달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파업을 거치고 투쟁이 길어지면서 개인은 싸움뿐 아니라 가족과 결부돼 여러 갈등을 겪게 된다. 개인이 갈등에 봉착했을 시점에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이입됐으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영화 속 이야기는 쉬워야 한다. 게다가 <카트>는 소재가 워낙 낯설다. 우리가 편하게 볼 수 있는 가족·성장·우정·동료애 등의 요소를 영화에 담으려고 했다."

- 장편영화 제작에 목말라 있던 시점에 <카트>를 맡게 됐다고 들었다. 혹시 책임감은 없었나. 예컨대 '이 영화는 내가 꼭 해야겠다'거나 '이런 주제로 영화를 만들 기회가 드디어 왔구나' 같은.

"꼭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내용이 좋았고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해야겠다는 의무감은 갖지 않았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계몽영화나 교육영화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심 대표도 동의했다. 관객들이 많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저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지인들, 좋은 영화 만들었다고 칭찬해 줄 것 같다”

-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는데. <카트>를 본 지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나.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당시는 학생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하고,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던 시절이었다. 지인들은 아마도 좋은 영화 만들었다고 칭찬해 줄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카트>와 같은 관심사를 다뤘으니까."

- 처음 파업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일손을 놓는데 머뭇거리는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이 나온다. 실제 마트에서 파업을 하신 분들도 그 첫 과정이 두렵다고 한다.

"영화를 촬영하기 전에 자료조사를 위해 노동자 몇 분을 만나 그런 얘기를 들었다. 서적도 읽고, 뉴스도 참고했다. 실제 경험했던 분들을 만났던 게 도움이 됐다."

- <카트> 캐릭터 중 누구에게 가장 감정이입이 됐나.

"모든 캐릭터가 다 고르게 영화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딱히 누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주인공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마트에서의 일상 노동과 해고 상황, 투쟁 진행에 따라 선희의 감정이 조금씩 드러나기를 바랐다. 관객들도 거기에 맞춰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스스로 만든 <카트>를 볼 때마다 감정절제가 안 되는 장면이 있다고 했는데.

"보면서 항상 우는 장면이 있다. 태영이가 선희에게 자신의 알바비를 줄 때, 투쟁 중인 선희가 회사에 복귀한 혜미에게 공중전화를 하는 장면, 노동자들이 물대포를 맞으며 함께 카트를 밀고 저항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쌍용차 해고자·유성기업 노동자도 참여

- 영화에 촛불집회 장면이 나온다. 실제 촬영에 송경동 시인과 쌍용자동차 해고자·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제 아이디어는 아니고 회사의 생각이었다. 현장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촛불집회 상황에 대해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연출이 될 것 같아 반가웠다. 참가자분들을 너무 고생시킨 것 같아 죄송스럽다. 한겨울에 저녁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촬영이 이어졌다. 방한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오신 분들이 많았다. 촬영에 들어가면 환호하면서 박수를 치다가도 쉬는 시간이 되면 벌벌 떠셨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영화를 보면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하기까지 외부의 도움이 없다. 철저하게 마트 노동자들만의 싸움으로 그려진다. 고립된 상황을 표현한 것인가.

"싸움의 시작을 이들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봤다. 마트 노동자들 중에 혜미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바깥 분들이 등장하기 가장 좋은 장면이 어디일지 생각했는데, 고민하다 작은 승리를 거뒀을 때로 정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더마트의 해고를 부당해고라고 판정했을 때 말이다. 바깥에도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시점은 역설적이게도 싸움이 길어지는 때라고 판단했다."

- 영화에는 기자도 잠깐 등장한다. 파업하다 경찰에 끌려 나가는 순간에 나온다. 유치장에 갇힌 노동자들은 철장 밖 TV에 나오는 자신들에 대한 뉴스보도를 보고 분노한다.

"투쟁을 다루는 언론의 방식이 아직까지는 만족스럽지 않다. 물론 시청자로서의 생각이다.(웃음) 언론은 사건에 대해 노동자와 사측의 목소리를 동시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중립적 보도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중립이라는 게 과연 진짜 중립인 것인가. 양측의 주장이 나오면 일반인은 권력자, 힘 있는 자의 목소리를 신뢰하게 된다. 그런 것은 중립이 아니다."

“생계를 책임진 비정규직과 가족의 모습, 과장하지 않았다”

- <카트>는 부모의 오늘이 자녀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그린다. 부자 아이들은 급식비를 안 내도 당당하지만, 선혜의 아들 태영이는 부끄러워한다. 수학여행을 갈지 말지 고민한다. 싱글맘 혜미는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퇴근을 서두르는데. 현실적인 묘사가 인상적이다.

"의도한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다. 오히려 영화에서 보여 준 모습은 실제 우리 삶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극적 완성을 위해 부정적인 것들만 전시한 것처럼 느끼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삶은 실제 그렇다. 마트 노동자에 비해 훨씬 좋은 조건인 저 역시 비정규직이다. 맞벌이를 하는데도 생활이 너무 힘들다. 어린이집 행사가 있거나 아이 찾는 시간이 다가오면 허겁지겁 찾으러 가기도 했다. 생활이 엉망이었다. 나조차 이 정도다. 영화 속 모습은 과장이 아니다."

- 카트는 마트 여성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카트는 이중적이다. 카트는 마트 여성노동자들의 도구가 아니다. 마트 청소를 하고 계산대에서 일하는 그들이 고객들처럼 카트를 끌고 장보는 일이 현실에서 얼마나 있겠나. 카트는 이들의 소외를 상징한다.
그런데 파업을 거치면서 카트는 도구가 된다. 투쟁의 공간에서 카트는 이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밥차가 되기도 하고, 현수막을 걸기도 하고, 투쟁 물건을 나르기도 하고, 나중에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소외돼 살아가던 이들이 삶의 주체로 나서게 되는 순간 그들의 옆에는 카트가 있었다."

- 영화제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에 5천여명이 참여해 2억원가량을 모금했다. 크라우드 펀딩은 저예산·독립영화 제작을 위해 십시일반 모금한다는 성격이 강한데. <카트>를 계기로 상업영화 홍보도구의 일환이 돼 간다는 느낌이 든다.

"제대로 된 상업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지만 영화의 배급 상황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대기업 투자도 끝내 받지 못했다. 열심히 만들어도 상영관이 영화를 개봉해 주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개봉 전에 개봉관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잘 만들어지는 게 1차, 많은 사람들이 알아 주는 것이 2차다.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한 것은 영화 제작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제작사의 의도로 보인다. 특히 아이돌그룹 엑소 팬들이 펀딩에 많이 참여했다. 이들이 펀딩하면서 '비정규직 영화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경수 파이팅'이라고 했다.(웃음) 그들이 이런 소재에 공감을 한다는 것은 영화제작을 하는 우리에게 굉장한 힘이었다."

- 여자가 많이 나오는 영화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는데. <카트>로 꿈을 이룬 것인가.

"<카트>를 보면 너무 행복하다. 여배우들을 개인적으로도, 스크린으로도 많이 만나고 싶었다. 이렇게 능력 있고 아까운 배우들이 좋은 이야기,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만나지 못해 부수적인 존재로 영화에서 표현되는 게 안타까웠다. 많은 배우들과 만나고 함께 작업한 것은 너무 좋은 기회였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깊숙하고 친밀하게 한분 한분을 다 살피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배우들이 그동안 쌓아온 유대감과 대기실에서 함께 지내면서 생긴 정을 촬영 과정에서 펼쳐 줬다."

- 영화 개봉일이 11월13일이다. 전태일 열사 기일이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인데.

"회사랑 개봉일을 얘기하다 11월13일이 다른 영화 개봉이 그다지 없는 날인 것을 파악했다. 마침 그날이 전태일 열사 기일이었다. 대단한 우연이고 필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봉일을 쉽게 결정했다. 수능이 끝나는 날이라서 희망을 걸고 있기도 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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