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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28] 이권에 꼬이는 사람들, 격화되는 노조 권력투쟁
▲ 70년대 초반에 사용된 전태일 영정. 전태삼

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이소선과 청계피복노조 간부들은 노동조합에 대해 잘 몰랐다. 더구나 노동법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노조운영에 관한 한 김성길 지부장한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김성길은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을 풀어 가는 방식이 주로 관계기관에 진정을 하거나 건의·호소하는 정도였다. 이런 방식이 유효할 때도 있지만 결코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김성길 지부장은 상당한 야심을 품고 지부장이 됐다. 그런데 막상 노조를 꾸려 나가다 보니 조합원 가입도 시원찮고 관계기관에 건의한 거창한 사업계획도 관철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가 세운 거창한 계획이란 청계천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만들기 위한 자금으로 5천만원 정도를 관계기관에 요청하자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건의가 묵살될 조짐이 보이자 김성길은 전태일의 친구들인 간부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노동청장실을 뒤집어엎으라고 부추겼다. 노동청장실을 뒤집어엎으면 사회여론을 불러일으키게 돼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구건회, 청계피복노조 지부장이 되다

이소선과 청계노조 간부들은 지부장의 요구를 가지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과연 그의 말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심각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지부장이 시키는 대로 했다가 일이 잘못 풀리면 도리어 책이 잡혀 노조는 결국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단순한 결론이었다(당시에는 이런 정도까지 생각하지 못했지만 대중과 유리된 싸움을 무모하게 벌여 모험적으로 일을 추진했을 때 결과는 조직 자체를 파괴시키지 않겠는가 하는 직관에 의한 판단이었던 것이다). 이소선과 간부들은 지부장의 지시를 거부했다.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나도 지부장을 못하겠다.”

김성길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지부장직을 사임했다.

김성길 지부장이 2월25일 사임하고 임현재가 잠깐 동안 지부장 직무대리를 했다. 노조는 4월6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이 자리에서 지부장에 구건회, 사무장에는 김윤근을 선출했다.

구건회와 김윤근은 김성길이 사임하자 신기효가 소개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구건회는 서울운수노조 지부장을 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신기효는 전태일의 선배였다. 전태일이 미싱을 하다가 재단사가 노동자 편에 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판단하고 재단을 배울 무렵 신기효가 재단사로 있었다. 전태일은 그 사람 밑에서 재단보조로 일했다.

“너희들이 아직 어리니까 조금 더 잘하는 사람이 일단 와서 해야지 않겠냐?”

신기효는 전태일의 친구들한테 구건회와 김윤근을 소개시켜 줬다. 이소선은 삼동회 친구 중에서 하나가 지부장이 돼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최종인이 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최종인은 자신은 법도 잘 모르니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좋다고 한사코 사양했다. 이소선은 최종인을 붙들고 비지땀을 흘리며 설득했다. 아무리 해도 안 되기에 아카데미에 있는 다른 선생님들을 동원해서 설득했다. 하지만 최종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결국 구건회가 지부장이 됐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이끌어 나가는 방식이 이상했다. 조합원을 중심으로 투쟁해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었다. 업주들을 불러다 놓고 고양이 쥐 잡듯이 공갈·협박을 가해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

물론 때로는 그와 같은 방법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새끼가 뭔데, 맨날 사장들 데려다가 저래서 우리 이미지를 버려 놓는 거야."

차츰 노조간부들한테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구건회·김윤근은 한술 더 떠서 이소선한테 보따리를 든 채 사무실에 오지 말라고 했다. 이소선은 여전히 중앙시장에서 중고옷 장사를 하고 있었다. 조합 간부 대부분이 그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어서 이소선이 장사를 해서 그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소선의 일과는 정해져 있었다. 아침에 노조간부들과 함께 사무실에 출근해서 사무실을 깨끗이 치워 놓고 중앙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려고 보따리를 푼다. 노조가 못 미더우면 점심시간에 사무실에 갔다 왔다. 그리고서 저녁이 되면 다시 사무실에 가서 조합 간부들하고 함께 퇴근해 곧바로 집으로 간다.

“보따리 들고 노조 오지 말라” 박대받는 이소선

보따리를 가지고 사무실에 오지 말라니! 이소선에게 사무실 출입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자신들이 나서 이소선 앞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애매한 조합원들을 시켰다. 그 말을 들으니 이소선은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보따리를 이고 평화시장 계단을 내려오는데 그의 입에 찝찔한 눈물이 흘러들어 왔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소선은 쓰러져 버렸다.

그날도 그는 중앙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평화시장에 있는 노조사무실에 내가 갈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소선은 그 생각만 하다가 눈이 붓도록 울기만 하고 장사를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보따리를 평화시장 사무실 옆 화장실에 놓고 들어갔다. 이소선이 보따리를 밖에다 놓고 들어온 것을 눈치챈 그들은 노골적으로 이소선을 박대했다. 지부장이 내세운 이유는 이소선이 노사관계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그래도 나는 사무실에 갈 테다. 안 그러면 나는 살 수가 없어.’

이소선은 3층 가게에서 전태일의 친구를 불러냈다. 그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없는 틈을 타서 잠깐씩 노조간부들을 보고 나왔다. 저녁때는 보따리를 이고 평화시장 밑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퇴근했다. 어느 날 저녁에 이소선은 너무나 불안했다.

“종인아, 나 거기에 못 오게 하면 나는 죽고 못 산다. 알았지?”

“걱정 마세요. 우리가 좀 배워서 잘 만들어 놓을 때까지 어머니가 좀 참고 계세요. 개새끼들, 여기가 어딘데 어머니를 못 오게 하는 거야.”

최종인은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이소선에 대한 박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를 노조사무실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더니 급기야 전태일의 사진을 노조사무실에서 떼어 버리라는 말까지 했다.

그날도 장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와 보니까 노조 결성 때부터 벽에 결려 있던 전태일의 사진이 이소선의 눈에 안 보였다. 전태일이라는 노동자 투쟁의 혼을 빼 버린 그저 그렇고 그런 노조, 무능·어용노조를 만들겠다는 심사로 보였다.

이소선은 사무실 벽에 전태일의 사진이 걸려 있을 때는 장사를 하다가 배가 고파도 희망을 가졌었다.

‘친구도 있고, 태일이가 있으니까 언젠가는 노동조합이 잘되겠지.’

이소선은 어려울 때마다 전태일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하늘도 올려다보면서 이를 악물고 살아왔다. 이소선은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태일의 사진이 없어진 것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악을 썼다.

“어떤 놈이 내 아들 사진 뗐냐?"

그러자 최종인도 흥분해서 함께 소리를 질렀다.

“○○놈 유인규, 이놈의 새끼. 내가 칼 갖고 ○○ 버린다.”

최종인은 눈이 뒤집힐 정도로 흥분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유인규 동화상가 사장을 통해 노조사무실에 있는 전태일의 사진을 떼라고 압력을 넣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논리는 이랬다. 전태일 사건이 나자 평양에서 전태일 사진을 가지고 대규모 집회를 했으니 전태일의 사진을 노조사무실에 걸어 놓는 것은 결국 빨갱이와 똑같다는 억지 논리였다.

유인규 사장은 사용주 대표로서 단체협약에 체결된 조합비 일괄공제와 전임급료 지급을 중지하겠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지부장, 전태일 사진 떼고 박정희 사진 달아

최종인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칼을 가지고 날뛰다가 동맥이 끊어져 버렸다. 솟아오르는 피를 간신히 수건으로 감고 국립의료원으로 데리고 가서 꿰맸다. 전태일의 사진을 떼어 낸 지부장은 그 자리에 박정희 사진을 달았다.

"왜 태일이 사진은 떼고 박정희 사진을 붙이는 거야?"

이소선은 지부장에게 박정희 사진을 떼라고 요구했다. 누구 하나 선뜻 나서 박정희 사진을 건드릴 생각을 못했다.

“박정희 사진을 단 사람이 직접 나와서 떼!”

이소선은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이다가 직접 박정희 사진을 박살내 버렸다. 나중에는 그 자리에 전태일 사진도, 박정희 사진도 걸리지 못했다.

이소선은 길을 가거나, 장사를 할 때 답답해서 할 말을 잃고 살았다. 노조사무실에 태일이 사진이 없다니….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졌다. 슬펐다. ‘태일이가 얼마나 섭섭해 할까.’ 이소선은 전태일이 노조사무실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죽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냥 죽을 수는 없었다.

‘살아야 태일이가 남긴 일들을 하지.’

이소선은 사진 한 장에 얇은 종이를 발라 구겨지지 않게 그의 가슴에 걸고 다녔다.

‘노조사무실에 태일이가 없으니, 이제는 늘 태일이를 내 가슴에 품고 다니자.’

이소선은 장사를 한참 하다가도 태일이 사진을 꺼냈다.

‘태일아, 어미가 너를 직접 안고 다니기로 했다. 평화시장에서 네 친구들이 노동조합을 잘하고 있고, 나는 그 애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이렇게 장사를 한다. 우리 태일이는 알지?’

이소선은 전태일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손바닥에 얹어 놓고 한참이나 얘기를 주고받는다. 사진 속에 담긴 전태일이 그 말을 알아듣는 것만 같다. 빙그레 웃는다. 말은 하지 않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그래, 우리 태일이 알아들었지?’

이소선은 손바닥으로 웃는 태일이의 뺨을 쓰다듬어 주고 다시 옷을 팔기 시작했다.

이소선과 전태일 친구들은 노조활동 경험이 없었다. 노조운영을 배우기 위해 선출된 지부장과 사무장은 엉뚱한 행동만을 이들에게 보여 줬다.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고 은연중에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했다. 얼마 지나자 노골적으로 기관의 요구에 순응하는 태도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이소선과 전태일의 친구들은 이들을 감시하고 쫓아내지 않으면 노조가 발전할 수 없다는 절박한 사정을 깨닫게 됐다.

여성조합원 성희롱한 지부장 결국 사임

이들 모두가 불만을 느끼고 있었는데 구건회 지부장이 못된 짓을 하다 발각됐다. 간부들이 사업장에 활동하러 나가고 지부장 혼자 사무실에 있을 때 여성조합원 하나가 사무실을 방문했다. 구건회 지부장은 느닷없이 그 여성조합원한테 종이에 성기를 그려 놓고서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그때 사업장 순회를 마치고 온 이승철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이승철이 들어서자 구건회는 슬며시 종이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눈치 빠른 이승철이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승철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나중에 쓰레기통을 뒤져 종이를 찾았다. 그리고 은밀하게 보관해 뒀다. 날을 잡아 철퇴를 가하기 위해서였다.

8월20일쯤이었다. 간부들이 전체 모인 자리에서 이승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지부장 이야기 좀 합시다.”

이승철은 구건회에게 말을 건네고 부녀부장 정인숙한테 고개를 돌렸다.

“부녀부장, 창동에 택시 타고 가서 책갈피에 접은 종이가 하나 있으니까 그것 좀 가져오세요.”

정인숙한테 말을 마친 이승철이 느긋하게 웃으며 구건회를 바라봤다.

“조합원들한테 요즘 뭐 잘못한 거 없습니까?”

“갑자기 무슨 말이야? 내가 조합원들한테 잘못을 하다니?”

구건회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능구렁이처럼 발뺌을 하려 들었다.

“○○놈이 어디서 거짓말을 해!”

이승철이 단번에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빈 병을 깼다.

“정말이야?”

이승철이 빈 병을 구건회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다른 간부들도 구건회의 행동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터라 구건회를 둘러싸고 매섭게 노려봤다.

“정말 그렇다니까.”

“좋아, 너 이 새끼. 정인숙이 도착하면 두고 보자.”

이승철은 이를 갈면서 구건회를 노려봤다. 잠시 후 정인숙이 도착했다. 이승철은 종이를 받아 들고 펴서 구건회한테 보여 줬다.

“이 새끼, 이래도 거짓말 할 거냐? 여기가 어떤 자린데 네놈들이 조합원을 희롱해? 너 이 새끼 오늘 죽을 줄 알아.”

구건회와 옆에 있던 김윤근의 얼굴이 단번에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조합 간부들은 둘한테서 각서까지 받아 냈다. 그들은 그날로 사임했다. 그렇게 해서 지부장은 공석이 됐다. 공석이 된 지부장 직무대리는 최종인이 맡게 됐다.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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