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대기업 정규직→중소기업 정규직→대기업 계약직→중소기업 계약직→용역·파견직이란다. 노동자도 계급이 있다는 뉴스를 읽었다. 출근길에서 스마트폰으로 읽었다. 집중해 기사를 읽겠다고 햇빛 가리려고 커튼을 쳤더니 버스가 방향을 틀었다. '노동자 사이에도 계급은 있다'는 선정적인 기사 제목에 걸려든 나는, 도대체 노동자 사이의 계급은 무엇으로 갈린다는 것인지, 제목 아래 기사로 들어가 봤다. 고용형태와 임금수준을 말하고 있었다. 고용형태야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두고 하는 말이고, 그것이 다시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갈라 임금 차이를 제시하며 노동자의 계급을 말하고 있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289만원인데 용역·파견 노동자는 각 137만원·160만원이고, 주당 노동시간은 정규직 42.9시간과 비교해 용역 노동자 44.9시간으로 오히려 길었지만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 자료를 근거로 뉴스는 '노동사 사이에도 계급은 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고용형태의 차이가 임금차별로 나타나고 있다며, 노동자 사이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아니라며 노동자들을 계급으로 가르고 있었다.



2. 사내하청, 기간제 계약직, 파견과 도급 용역, 시간제 파트타임…. 비정규직은 다양한 형태로 일반 기업뿐만 아니라 공기업·공단 등 공공부문, 심지어 국가부문까지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노동자의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정규직을 사용하지 못해 비정규직을 사용한다기보다 오히려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못해 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지경이다. 사용자가 재벌 대기업·중소기업·자영업자와 다름없는 영세사업장까지 그 층위의 차이가 워낙 커서 도저히 자본으로 하나로 추상해서 말한다는 것이 어불성설 또는 과잉된 일반화로 들리듯이 노동자도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임금 등 처우의 차이가 워낙 커서 도저히 노동으로 하나로 말한다는 것이 어색한 세상이다. 도대체가 노동자는 하나라고 말할 수가 없는 세상이다. 오늘은 분명히 '노동자 사이에도 계급은 있다'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다.



3. '노동자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는 그 계급은 노동자와 자본가, 농노와 영주, 노예와 주인 등과는 다른 의미의 계급이다. 지배와 복종, 생산수단의 소유로 가르는 계급은 아니다. 아무리 노동자 사이에 차이가 현저해서 계급이 다르다고 해도 그것은 이런 계급은 아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사용해서 지배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복종하는 계급은 아니다. 정규직이 사업장을 소유하고서 무소유의 비정규직을 지배하는 계급은 아니다. 그러니 노동자 사이에 있다는 계급은 권력의 크기로 가르는 계급장에 가깝다. 커튼을 제쳤다가 커튼을 다시 치고 말았다. 노동자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고 심란한 기사를 읽는데 산만해서 버스창에 커튼을 다시 쳤다. 서울행 좌석버스는 도착지를 알리는 모니터로 광고를 쏟아내고 성량 높인 라디오로 노래를 울려대고 있었다. 노동자 사이의 계급, 나쁜가. 차별하는 것이니,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아니라서. 뭐라도 계급은 나쁘다. 그러면 노동자 사이에 있다는 계급장도 없애야 한다. 차별은 싫다. 그렇다면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동일노동에 차별임금은 안 된다.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그걸 하는가.



4. 사용자·자본가에 사정할까. 뉴스는 전문가의 말을 들어 기업의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간접고용 문제는 열악한 영세 중소기업의 문제가 아닌 대기업이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라며 “간접고용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300인 이상, 특히 재벌그룹사의 간접고용 축소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타당한 지적이다. 당연히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재벌,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그들이 간접고용·비정규직을 사용하지 말도록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지적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사정한다고 노동자 사이에 계급은 없어질까. 바로 그들이 인건비를 절감하고 노동유연화니 뭐니 인사노무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노조활동 규제 등 노동통제를 위해서 노동자의 계급장을 만들었다. 그것은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그들의 일이다. 그런데 그저 사정한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호소한다고 들어줄 까닭이 없다.

권력에 국가권력에 법으로 규제해 달라 할까. 기간제법·파견법 등 비정규직법을 강화하라 하고, 계급장 떼고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임금을 적용하라는 법을 만들라 할까. 뉴스는 역시 관계자·전문가의 말을 인용해서 말하고 있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는 기간제 근로자라는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하지만 ‘동일노동’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 현실에서는 유명무실한 규정”이라고 말했다. 류하경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는 “도급과 파견을 구별할 수 있는 법제화가 필요하다”며 “비정규직 차별 금지 및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할 수 있는 법 보완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모두 타당한 말이다. 당연히 그와 같이 비정규직법을 개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말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자체를 금지하는 법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렇게 법이 개정되더라도 여전히 기간제·단시간 노동자, 도급 용역업체와 파견 노동자는 법이 허용하는 비정규직이고 아무리 임금 등의 차별을 규제하더라도 정규직과 고용상 차별은 존재하게 된다. 노동자 사이에 계급장의 폐지는 고용형태상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한 실현될 수 없다. 그러니 그것조차도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야 하는데, 계약으로 노동조건이 정해지는 이 세상에서는 어렵다. 그저 최저수준을 정해 최저수준만큼은 동일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국가 권력질서를 존속시키는 것이 권력, 그들의 일이다.



5. 그러니 뭔가. 노동자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노동자 혼자는 할 수 없는 것이니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분 없이 노동자로 하나라고 요구해서 교섭과 투쟁으로 협약 등으로 쟁취해내는 것 말고는 없다. 멀다. 비정규직의 처우를 정규직 수준으로 요구해서 차별을 없애고,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해서 정규직으로 전환·사용토록 교섭해서 쟁취해낼 권한을 가진 노동자의 단체는 노동조합이다. 그런데 그 노조조직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려 있으니 하나라고 요구하는 것이 오늘 노조의 일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산별노조·일반노조·지역노조 등 기업을 넘어선 노조라고 내세워도 그 노조조직의 실질은 본부·지부·지회·분회 등으로 불리는 기업단위의 조직에 있다. 이 나라에서 노조운동이 시작된 지 수십 년, 우리는 멀다. 민주노조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지도 20여년, 우리는 갈 길이 멀다. 노동자는 하나다. 분명히 이 나라 노조운동이 내건 기치였건만, 그 기치는 점점 더 노동이 가야 할 길을 말해 주고 있건만 하나의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지 못하다. 우리에게 노조운동은 본래 기업 사업장을 벗어나서 출발했던 노동자운동이 아니다. 오늘은 기업을 벗어나서 전개돼 왔던 나라의 노조운동조차도 노동자는 하나라는 기치로 운동을 전개하기 쉽지 않은 지경인데, 이 나라에서 노조운동은 기업으로 갈라져서 제각기 임금 등 노동조건을 정해 왔으니 노동자에게 계급이 없다고 스스로 외쳐 요구해서 쟁취하는 데까지는 아직은 너무도 멀다. 노동자는 하나다. 이렇게 외치고 있어도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다. 하나로 외칠 요구가 아니니 교섭도 투쟁도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다. 그저 실제로 교섭과 투쟁을 주도하지 못하는 변두리에서 하는 불평의 소리로만 들린다. 그러나 교섭과 투쟁의 중심에서 외치는 함성의 소리로 들려야 한다. ’노동자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는 현실에 대한 이 나라 노조운동의 대답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는 현실 비판은 사용자 자본과 국가 권력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노조운동에 대한 것이라고 들어야 한다. 노동자 사이에 계급장을 달고서는 자본과 권력에 맞서 하나의 계급·노동을 내세우면서 전진해 나갈 수 없다. 노동자 사이에 있다는 계급은 노동자들에게 사용자 자본에 맞선 노동을 보지 못하도록 가린 검은 커튼이다. ’노동자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는 말은 노조운동에 그 커튼을 걷어 내라는 비판의 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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