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현대중공업은 우리나라 중화학공업 성장을 견인한 조선해양산업 부문 선두주자다. 현대중공업노조는 19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축이었다. 그러나 전투적 민주적 노조 15년, 노사 타협적 노조 12년을 거치면서 산업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노조운동은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인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조선해양산업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게다가 현대중공업은 재벌구조가 갖는 무소불위의 소유자 권한과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전문경영인 체제하에서 전근대적인 관리방식을 답습하는 관리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노조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필자들이 현대중공업의 사업구조·경영관리구조·고용구조·임금구조·노사관계의 현재를 진단하고 향후를 전망하는 글을 보내왔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를 6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글 싣는 순서]
① 조선산업 흐름과 현대중공업 쟁점 개관
② 현대중공업 경영구조와 관리구조 난맥상
③ 고용부문 쟁점과 과제
④ 임금부문 쟁점과 과제
⑤ 노사관계 쟁점과 과제
⑥ 현대중공업 노사가 나아갈 길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선택

2013년 11월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집행부 선거는 결과가 나오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회사와 협조적이었던 세력의 당선이 유력시됐는데 결과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사측과의 ‘호혜적 협력관계’를 비판하고 민주노조 계승을 표방한 후보가 당선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조합원들은 왜 지난 10여년간 이어진 협조주의가 아니라 강성으로 분류되는 집행부를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추려 볼 수 있다. 우선 조합원보다 회사와의 협조에 더 치중했던 협조주의 집행부에 대한 실망이다. 특히 무분규·무쟁의를 했지만 실제 조합원들이 손에 쥔 것은 낮은 임금인상과 복리후생, 마구잡이식 인사관리, 신규채용 없는 노동강도 강화 등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선산업의 불안정성이 높아진 가운데 현대중공업 내·외부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졌다. 사내하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조선산업의 주된 특성이지만 이런 가운데 심화되는 정규직의 고령화와 내부 노동시장의 분절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을 고조시켰다. 이런 가운데 회사의 일방적인 현장관리로 인한 불만도 높았다. 노조위원장 선거뿐 아니라 대의원선거에도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사측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면서, 조합원들은 새로운 변화를 갈망했다. 그것이 비협조주의 집행부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2014년 임단협과 관행의 탈피

새롭게 당선된 집행부는 ‘노사관계의 새로운 정립’을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그동안 조합원보다 회사와의 관계를 우선했던 과거 노조 집행부의 관행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회사와 물밑으로 접촉했던 관행도 개선하고자 했다. 시작은 2014년 교섭이었다. 노조는 협조주의 집행부와 회사 사이에서 관행처럼 이뤄진 ‘물밑협상을 통한 사측 일괄제시’ 방식을 거부하고, 공개적인 교섭에서 항목별 협상을 요구했다. 짜고 치는 교섭은 더 이상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사측은 기존 방식을 고수했다. 팽팽한 기싸움 속에서 일단 노조는 회사의 기를 꺾었다. 사측은 상견례(5월14일) 이후 4개월여 만에, 35차 교섭에서 공식적인 안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노조의 승리를 예단할 수는 없다. 사측의 현장 통제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새로운 집행부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무기한 연기하는 선택을 통해 ‘노사관계의 새로운 정립’ 의지를 다시 한 번 보여 주고 있다.

당초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9월23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노조는 사측의 투표방해 행위를 주장하며 투표기간을 무기한 연장했다. 집행간부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찬반투표의 무기한 연장은 기본급 인상 등 노조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며 “정당한 노동쟁의 행위까지도 방해하는 사측에 맞서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확립하기 위한 것으로 사측의 태도가 바뀔 때까지 투표연장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노사관계에 대한 사측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선택임을 알 수 있다.

회사측의 대응, 낡은 위기론

노조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포함해 총회가 끝난 뒤 교섭재개를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노조의 기조가 유지된다면 올해 현대중공업 교섭과 투쟁은 장기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현대중공업 사측은 ‘위기론’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우선 올해 상반기 1조3천억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낸 현대중공업은 전체 임원의 30% 안팎을 줄이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실제로 10월12일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 주재로 긴급본부장회의를 열어 260명의 조선 3사 임원 전원이 일괄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 밖에도 사측은 관리직 등 지원부서 직원을 대폭 줄이는 대신 생산·영업을 강화하고, 수익창출이 어려운 사업과 해외법인 운영은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전사 차원의 비용절감에 나서기로 했다. 노조는 새로운 노사관계를 원하고 있는데, 사측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위기 공세로 대응하고 있는 현실이다.

조합원과 함께 대등한 노사관계를

사측이 들고나온 위기론을 노사관계 측면에서 본다면, 회사는 노조를 자본의 이익과 기업의 이윤을 위한 하위 파트너로 보려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위기 타령’으로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양보와 침묵을 강요하면서 자본의 이익만을 챙기려 한다. 만약 노동조합이 사측의 위기론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다시 호혜적 협조주의라는 치장 속에서 실제 노동자들이 겪었던 실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되풀이될 수 있다.

이러한 퇴행적 상황을 이겨 내려면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사측의 위기론에 당당히 대응해야 한다. 올해 설문조사 결과 조합원들은 일방적으로 사측 우위인 노사관계가 적어도 균형을 갖춘 대등한 관계로 변화하기를 원하고 있다.

대등한 노사관계를 만드는 기반은 조합원들에게 있다. 집행부의 의지와 함께 조합원들의 마음과 결의를 일구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집행부는 조합원들이 사용자에 맞서는 당당함을 가지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파업을 하느냐, 마느냐보다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하느냐가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름할 것이다. 집행부는 이를 바탕으로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그래서 사측과 대등한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현재 집행부는 그 일을 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