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본은 무겁다. 세상의 무게라고 말한다. 노동자는 자본이라고 겁을 집어먹고, 노동운동은 자본의 세상이라고 저주한다. 모두가 자본에 가위눌린 채 자본의 힘을, 자본의 재생산과정을 설명하기에 바쁘다. 자본은 절대적이다. 온갖 불만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복종시켜낼 만큼 압도적이다. 근대 이후의 시대구분은 더는 의미가 없다. 자본 이후의 세상은 현실에서의 꿈이 아니니 근대와 현대를 구분할 이유가 없어졌다. 근대 이후는 자본의 시대, 하나의 연대기가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을 비관하는 자도, 세상을 낙관하는 자도 자본의 세상을 두고 비관을 하거나 낙관을 한다. 비난을 하든 찬양을 하든 자본의 세상을 두고 말한다. 복잡하게 세상을 규명할 것도 없다. 오늘은 자본의 세상이다. 오직 자본의 운동, 즉 재생산과정을 해명하는 것으로 세상은 규명될 일이다. 자본으로 이 세상은 단순하다.

 
2. 근대 이후 몇 백년인가. 부르조아 시민계급이 근대의 헌장, 시민헌법을 제정한 것이 벌써 몇 백년인데 우리는 아직도 세상은 자본의 깃발 아래에 놓여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삼부회 등 신분제의회에서 자신들의 대표 승인 없이 과세 없다는 기치로 왕의 자문기구 신분제의회를 폐지하고 자신들의 대표로 의회를 구성하고서 재산권을 기본권으로 선언했던 그때의 시민헌법을 아직도 말하고 있다. 사유재산권 보장이 이 세상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 보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유재산권의 박탈은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헌법재산소도 대법원도 사유재산권 보장을 기초로 하는 시장경제질서를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질서라고 판결하고 있다. 오늘은 다른 나라라고 특별히 다를 것이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더 이상 세상은 부르조아 시민계급의 것이 아니다. 부르조아 시민계급이 자본의 주인, 자본가라고 해도 세상은 그의 것이라고 오늘 헌법 어디에도 명시하고 있지 않다. 자본의 세상이라고 날마다 자본을 찬탄하는 세상이라도 오늘 이 세상의 기본원리가 자본의 재생산을 위한 것이라고 국가의 헌장에 규정하고 있지 않다. 자본의 세상에서 자본에 맞선 노동운동에 의해서든, 아니면 그 노동운동을 잠재우려는 자본의 기술이든 오늘 헌법은 재산권은 다른 인민의 기본권 목록과 나란히 열거되고 있다. 심지어는 감히 침해해서는 안되는 중핵적인 기본권 목록에서 제외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자면 제10조부터 제37조까지 나열하고 있는 기본권 중 제23조로 규정돼 있다. 무수한 자유권, 평등권, 사회권, 참정권 등 기본권목록들을 틈에서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되나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하며,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하고,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을 법률로 할 수 있도록 하고서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도록 정하고 있다(헌법 제23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제10조), 평등권(제11조), 신체의 자유(제12조), 거주이전의 자유(제14조), 직업의 자유(제15조), 주거의 자유(제16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제17조), 통신의 자유(제18조), 양심의 자유(제19조), 종교의 자유(제20조), 언론‧출판 및 집회‧결사의 자유(제21조), 학문‧예술의 자유(제22조), 선거권(제24조), 공무담임권(제25조), 청원권(제26조), 재판받을 권리(제27조), 형사보상권(제28조), 범죄행위로 인한 피해구조권(제30조), 교육권(제31조), 근로의 권리(제32조),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제33조), 사회보장(제34조), 환경권(제35조), 혼인과 가족생활 및 모성보호, 국민건강(제36조), 기타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까지(제37조 제1항) 대한민국 헌법에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는 국민의 기본권이 아닌 것이 없다. 그 수많은 기본권 목록에 재산권이 법률로 그 내용과 한계를 정하여 국가 대한민국은 보장하도록 했고 그에 따른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대한민국의 최고 규범인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법률로 그 내용과 한계를 정해서 비로소 국가가 보장하도록 한 기본권이고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행사되도록 한 기본권이며 법률에 의해서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기본권이니 재산권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들 중 매우 약하게 국가가 보장한 기본권이다. 헌법규정만으로는 노동자들에게 보장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보다 월등히 우위에 있는 기본권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헌법으로만 본다면 오늘 사유재산권은 이 세상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 보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헌법을 법을 비난하고 폐지해야 한다고, 폐지하기 전에는 자본의 세상일 뿐이라고 낙담할 일이 아니다. 헌법이 법이 선언한 인민의 자유를, 노동자의 기본권을 붙들고 사유재산권을 앞장세우는 온갖 견해와 판결을 짓밟고 나아가야 한다. 헌법이 법이 인민의 자유,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한 그것은,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운동이 노동자권리를 위한 모든 사업장에 파고드는 것처럼, 법해석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3. 오늘을 자본의 세상이라고 부르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소유, 즉 사유재산권이 계약 자유를 통해서 노동자를 복종시키는 근로계약을 체결해 노동을 자본의 재생산과정에 편입시켜냈기 때문이다. 근로계약을 통해 인민은 헌법이 보장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그리고 수많은 자유권 등 기본권을 잃고서 사용자의 지휘명령에 복종하는 노동자가 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은 자유라고 했지만 사업장에서 노동자는 자유가 없다. 계약의 자유로 체결하는 계약에는 자유가 없다. 달리 보면 자유를 박탈하고서야 자본의 재생산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의 세상, 자본이 주인이라는 이 세상은 노동자가 자유를 찾으면 더 이상 이 세상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계약 자유로 체결한 자유 박탈의 근로계약에 의한 것이니 자유를 박탈하지 않는 계약을 체결하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노동자가 자유를 박탈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사용자에 대등하게 협상해서 체결하면 된다.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일방적인 지시에 복종하지 않고 협의하거나 자신의 의지로 일하고 일해서 벌어들인 수익의 분배를 협의하거나 자신의 기여분만큼 받는 것으로 대등하게 계약을 체결하면 된다. 근대 이후 이 세상은 이런 계약 체결을 금지하지 않았다. 아니 이런 계약 체결은 자유다. 헌법, 민법 등 법적으로는 분명히 자유다. 자유를 자유로 세워내면 된다. 헌법도 국가보안법도 노동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계약의 체결을 금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사유재산권을 비난하며 사업장을 소유한 자본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유재산권은 노동자의 자유권 보다 우월한 기본권이 아니다. 자본이 사업장을 소유했다고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일해서 얻은 생산물이 자본의 것이라고 헌법이 법이 정한 바 없다. 그러니 사유재산권을 보장한 법을 비난하며 법치주의를 비난해봐야 소용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헌법재산소가 대법원이 사유재산권 보장을 기초로 하는 시장경제질서를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질서라고 판결하고 있다고 해도 노동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헌법의 기본질서 위반이라고 판결할 수도 없다. 그래서 노동자 개인은 아니라도,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거나,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자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4. 자본의 무게가 세상의 무게는 아니다. 이 세상은 자본에 복종하는 노동에 의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자본에 대한 복종을 그만두는 순간 노동의 자유다. 사적재산권을 박탈하지 않아도 사업장의 소유만으로는 그 사업장 자체 말고는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다. 노동자가 자유라면 자본은 그저 사업장을 소유한 자에 불과해서 은행 이자수준의 임대료를 지급하면 될 일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노동자권리를 세우는 법으로 내가 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운동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노동기본권을 포함한 수많은 기본권의 목록에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자본의 무게는 오늘 헌법에서 보자면 무겁다고 겁을 집어먹을 일이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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