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정 기자

"내부를 잘 아는 사람이 와야 한다는 걸 '노치(勞治)'라고 하면 세상이 뭔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성낙조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의 하소연이다.

KB금융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KB국민은행지부가 난데없이 '노치'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6일을 기점으로 보수·경제지들이 일제히 "노조가 회장 선임에 노골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관치가 아닌 노치"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개혁대상인 국민은행노조가 경영권에 간섭"(조선일보)이라거나 "KB금융 회장 선임에 노조권력도 끼어들지 말라"(동아일보)는 식이다. 서릿발도 이런 서릿발이 없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노조에 휘둘리고 있다"는 여론몰이가 계속되면서 회추위 인사들 사이에서는 '내부인사 지지=노조 편'이라는 굴레를 쓸까 봐 부담스러워하는 기류가 퍼져 있다고 한다.

이쯤에서 KB금융 사태를 돌아보자. 서로 다른 라인을 타고 들어온 낙하산들이 진흙탕 싸움의 막장을 보여 줬다. KB금융 사태가 금융권에 남긴 교훈은 뚜렷하다. 차기 KB금융 회장과 행장에 더 이상 낙하산 인사가 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금융권과 KB금융 사태를 취재한 언론사 모두 공감하는 바다.

역대 낙하산 CEO들의 온갖 폐해를 경험한 KB국민은행지부는 "지금이라도 내부를 추스를 수 있는 사람이 와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조가 마치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의도야 짐작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최근 노치 논란과 함께 회자되는 얘기가 있다. 노조의 과도한 개입 때문에 외부인사에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는 설이다. 한 금융권 인사는 "대놓고 낙하산을 꽂기는 부담스러우니 마치 노조 때문에 그렇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언론을 이용해 노치 주장을 하는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특히 보수언론들의 공격, 이른바 언치(言治)의 이면에는 자본가들의 논리가 깔려 있다. 노조가 무슨 요구만 했다 하면 "권력화된 노조, 귀족노조가 경영권·인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해 왔던 보수언론 입장에서는 어느 때보다 내부인사 선임에 동분서주하는 KB국민은행지부가 눈엣가시일 것이다.

경영은 경영진만의 전유물이고, 노동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자본가의 논리를 답습하는 보수언론은 언치(言治)를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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