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울산노동법률원)

몇 개월 전, 늦은 저녁에 아는 노무사의 전화를 받았다. 매번 사측 대리인으로 만나는 사이라서 무슨 일일까 의아했다. 본인이 산재소송 문제로 상담을 한 아주머니가 있는데, 사정이 너무 안타까우니 좀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아주머니는 상담 내내 눈물을 흘렸다. 아주머니의 남편은 지금도 양산(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의 남편은 스물셋 나이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20년을 근무했고, 그 뒤 10년 동안은 대부분의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10년 전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이었다. 현대중공업에서 철판 절단작업을 했다. 험한 일이다 보니 어깨며 무릎이며 여기저기 다치는 일이 많았다. 산재 신청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쉽게 낫지 않았다. 점차 회사에 가는 것을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다고 울며 호소했다. 출근한다고 나가서는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잦아졌다. 돌이켜 보면 아마도 이때부터 그의 우울증은 시작됐을 것이다. 그러다가 1999년 다른 직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관리자에게 “일을 제대로 못한다”며 삿대질을 당하고 멱살을 잡혔다. 다른 동료들도 노골적으로 따돌렸다. 그는 결국 출근을 포기했고, 무단결근으로 퇴사처리됐다.

뒤늦게 아주머니가 백방으로 뛰어다녀서 과거에 다친 어깨와 무릎, 그리고 우울증으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우울증의 경우 행정소송까지 벌였다. 그 후로 10년 가까이 우울증으로 투병했다.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면서 병은 더욱 깊어졌다. 집 안에서도 가족조차 피해 다니며 방에 틀어박혀 잠만 잤다. 그래도 가족은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20년 넘게 일만 하다가 정신병을 얻은 그가 너무 애처로웠다. 산재로 나오는 치료비와 휴업급여가 세 모녀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런데 2012년 6월30일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요양을 종결한다고 통보했다. 요양 종결 전에 6주 동안 양산부산대병원에 입원해서 특진을 받았는데, 당시 의사는 “병증이 심해 통원치료는 어렵다”는 견해를 냈다. 그럼에도 공단은 “충분히 요양했고, 치료해도 더 나아지지 않는다”며 강제 종결했다. 장해급여 지급마저 거부했다. 그의 상태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불과하기 때문에 14급만 인정되는데, 그 전에 우측 무릎으로 12급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추가로 지급할 장해급여가 없다는 것이다.

공단은 치료도 필요 없고, 장해도 심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하루 종일 침대에 웅크리고 누운 채로 말도 하지 않고, 씻지도 않으며, 먹지도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줄곧 그를 치료해 온 주치의에 따르면 극도의 우울증으로 인해 생명유지와 일상생활을 위해서는 수시로 다른 사람의 간병이 필요한 상태라고 한다.

공단은 왜 그에게 최하의 장해등급 처분을 내린 것일까.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신경계통의 기능 또는 정신기능에 뚜렷한 장해가 남아 수시로 간병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 대해 장해2급을 인정하지만 이는 뇌의 기질적 변화, 즉 뇌실질 부분의 손상이나 뇌 위축·뇌파 이상 등이 있는 경우를 전제로 한다. 극도의 우울증으로 인해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상생활은 물론 생명유지조차 되지 않는 중증 환자의 경우에도 뇌 자체에 이상이 없는 한 장해2급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판단이다. 장해급여 부지급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을 하면서 주치의에게 사실조회를 해 보니, 중증우울증이 계속되는 경우 명백한 신경손상 등이 없더라도 환자의 감정과 의지 결여로 생명유지나 일상생활을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신의학적으로 충분히 인정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의학적 견해와 법 규정 간의 이해하기 어려운 불일치는 환자의 실질적인 장해상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행정처분을 낳았다. 중증우울증으로 입원해 있는 환자인데도 장해급여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산재환자의 치료와 생계를 그 가족에게 떠넘겨 버린 것이다. 처음 상담하던 날 아주머니의 하소연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그 사람을 근로복지공단으로 데려가서 죽이든지 살리든지 당신들 마음대로 하라고 버려 두고 오고 싶다. 아니 그냥, 차라리 같이 죽고 싶다.” 아무도 나누지 않는 고통을 떠안고, 아주머니의 가족은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 내고 있다. 아니, 막다른 길을 향해 억지로 떠밀려 가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