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7개월째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잔인한 바다에서 떠돌고, 유가족들은 거리로 나섰다. 다행히 세월호 특별법이 여야 간 협의로 진통 끝에 통과됐지만 걱정은 여전하다. 수사권·기소권 없이 과연 304명의 안타까운 죽음을 부른 원인을 제대로 밝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풀기 어려운 숙제를 남겼고, 노력해도 다 하기 어려운 과제를 안겼다. 특별법은 눈 가린 우리 사회가 빛을 찾는 첫걸음을 뗀 것일 뿐이다. <매일노동뉴스>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각계의 고민을 들었다.<편집자>



6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73일째다. 탑승자 476명 중 304명이 살아 돌아오지 못한 대참사. 지난달 30일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지만 유가족은 “특별검사 추천 과정에서 유가족 참여를 배제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세월호 진실에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한 현실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과제와 방향을 제시하며 동분서주하는 이가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올해 5월 발족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법률지원 특별위원회(세월호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영국(51·사진) 변호사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해우법률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권 변호사는 87년 대학 졸업 뒤 ㈜풍산에 입사해 노조활동을 하다 2번의 부당전보와 2번의 해고를 경험한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2002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그를 포함한 4명의 변호사가 민주노총 법률원을 설립했다. 그가 초대 원장을 맡았다.

- 6년간 최장기 민변 노동위원장을 역임했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다. 2008년 6월 민변 노동위원장 임기를 시작했는데, 당시 회원들이 반농담식으로 이명박 정권과 임기를 같이하자고 했다. 실제 그렇게 됐다. 노동문제로 거리에서 많이 싸웠던 시기다. 그러다 보니 노동현장이나 집회현장을 자주 찾게 됐다.”

진상규명과 법률지원 위해 세월호특위 출범

- 세월호특위를 발족한 이유는.

“전 국민이 충격을 받은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률 전문가로서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했다. 진상규명과 법률지원이 필요하다고 내가 건의했다. 언론이 홍수처럼 정보를 쏟아 내던 때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가닥이나 방향을 잡아야 우리가 규명해야 할 진상이 뭔지, 사건의 단면이라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민변 세월호특위는 선령제한 규제완화 같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17대 과제’를 통해 진상조사의 방향을 제시했고 화물과적에 대한 제보를 받아 폭로했다. 2권의 검토보고서를 발표했다.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모니터링해서 대통령에게 보고가 지연된 이유 등 89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권 변호사는 “많은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독립된 진상조사기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그러려면 독립된 진상조사기구 설치를 위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4·16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라는 이름의 세월호 특별법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특별법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의 의뢰로 대한변호사협회가 초안을 만들고 민변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의견을 보태 마련했다. 가족대책위는 7월 350만명(10월 현재 530만명)의 국민서명을 받아 국회에 입법청원했다.

- 특별법의 핵심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되는 것이었는데.

“초기에는 어떻게 조사권한을 실효성 있게 강제할 것이냐에 중점을 두는 안이 제시됐다. 조율 과정에서 진상조사위가 조사권한을 가지려면 수사권 형태를 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수사권을 포함시켰다. 기소권은 그간 정치검찰의 행태 때문에 반드시 필요했다. 최고 권력자에게 부담이 되는 기소가 수없이 좌절되는 과정을 봐 왔다.”

권 변호사는 "가족대책위가 입법청원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제대로 협의조차 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시 350만 국민서명을 받아 입법청원한 특별법안에 대해 여야가 자신들이 발의한 안처럼 심의해 주길 바랐지만 그러지 않았다”며 “유가족과 여야가 협의체를 구성해서 논의하자고 했던 건데 (그들은) 입법은 국회 고유권한이라며 유가족을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 지난달 30일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에 유가족이 반대하고 있다.

“가족대책위 새 집행부는 세 가지 원칙을 말했다. 독립된 조사·수사, 충분한 조사·수사기간, 조사·수사·기소의 유기적 연계성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최고권력층을 포함한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래서 유가족이 참여해서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형태로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여야는 합의 과정에서 유가족을 배제했다. 유가족보다 세월호 특별법이 절실한 사람은 없다. 그들이 여한이 없도록 (특별법을) 합의하는 것이 세월호 정국을 푸는 지름길이다. 배신감을 느낀 유가족이 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3차 합의안으로는 성역 없는 수사 불가능”

여야 3차 합의안에 따르면 특검 후보군 4명을 여야 합의로 추천하면 특검추천위원회가 이 중 2명을 최종 후보자로 결정한다. 유가족이 추천 과정에 참여하는 문제는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이대로 특별법이 발효되면 법무부 차관·법원행정처 차장·대한변협 회장이 각 1명, 여야가 합의해 추천한 4명의 후보군 중 2명을 최종 후보로 선정하고, 이 가운데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진상조사위는 1년간 조사하고 6개월을 추가로 조사할 수 있다. 특검은 3개월 활동하고, 연장이 필요하면 국회 본회의를 거쳐야 한다.

-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을 어떻게 평가하나.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상설특검법)에 따른 특검은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둔 적이 없다. 대통령에게 추천되는 특검 후보 2명 중 1명은 친여 인사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누구를 임명하겠나. 추천위원 7명 중 정부·여당 몫과 보수단체(대한변협) 몫이 5명이다. 특검은 정권에 대해 독립적이고 소신껏 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구조다. 대통령을 포함한 성역 없는 수사가 불가능하다.

또한 조사와 수사기간이 부합되지 않는다. 진상조사 뒤 수사에 착수하면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애초 진상조사위에서 조사하다 범죄행위가 발견되면 수사와 연계하려고 했던 건데 여야 합의안으로는 그게 어렵다. 수사대상도 본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돼 있는데 여당이 딴죽을 건다면 진상조사 범위와 수사대상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힘겨루기를 할 여지가 상당하다.”

- 특별법으로 규명해야 할 진실은 어떤 게 있나.

“검찰은 복원성 저하·화물과적·잘못된 결박·안전교육 미비 등을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해경은 세월호 승객을 거의 구조하지 못했다. 여기서 출발해도 된다. 왜 그랬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타고 올라가면 정부의 관리·감독 부재가 드러날 것이다. 그건 왜 그런가. 우리 사회는 민관유착과 부정부패 구조에 물들어 있다. 그 뒤에는 규제완화·민영화·외주화가 있다. 침몰의 진짜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안전장치를 풀어헤치고 있는 구조적 원인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누가 최종 지휘감독자인가. 성역 없는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

“누가 가장 피로할까 … 초심으로 돌아가야”

민변 세월호특위는 지난달 <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생각의 길)을 펴냈다. 권 변호사를 포함해 4명의 변호사가 함께 썼다. 세월호 참사의 시작부터 그 원인을 따져 들어가는 치밀함,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한 제언까지 담고 있다. 그는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을까.

“그간 여야 협상에서 진상조사 절차와 형식을 갖고만 공방을 벌이다 보니 시간은 흐르고 진실이 멀어져 가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인데 진척이 안 된다는 우려가 있었다. 참사의 진상에 접근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 사건이 갖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를 입체적으로 제시하기로 했다. 말단 공무원이나 선장·선원에게만 책임을 묻는 꼬리 자르기가 되지 않도록, 성역 없는 수사가 되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봤다. 적어도 우리가 제시한 10대 원인은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를 기본으로 조사·수사하길 바란다.”

권 변호사는 이른바 ‘거리의 변호사’로 불린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늘 현장을 지키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8월 대한문 화단 앞 집회현장에서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권 변호사는 "현장에 나오면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목격하게 된다. 공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그 현장을 감시하고 싶었는데 경찰은 공무집행 방해라며 나를 법정에 세웠다"며 "경찰은 스스로 인권침해 없이 집회를 보장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누가 가장 피로할까요"라고 반문했다.

"일부에서는 피로감을 말합니다. 그런데 누가 가장 피로할까요. 누가 가장 어려울까요. 누가 가장 고통스러울까요. 바로 유가족들입니다. 변호사는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4·16 세월호 참사 당시 다 같이 생각했습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가 무슨 소용이냐고요. 처음 생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대로 된 반성과 원인규명을 통해 우리의 아들딸을 위험사회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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