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항만노동자들이 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엔저현상에 따른 수출둔화는 항만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위협한다. 항만업계는 경기침체의 영향을 즉각적으로 받는다.

항만에서 하역업무를 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항만노동자들은 경기변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2만2천여명의 항만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는 항운노련(위원장 지용수)은 전선의 맨 앞에 있다. 연맹은 노임단가 인상과 비리 척결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위치한 연맹 사무실에서 지용수(62·사진) 위원장을 만났다. 1983년 부산항에서 항만노동과 노조활동을 시작한 지 위원장은 뼛속까지 부산사람이다. 거친 손이나 다부진 풍채, 경상도 사투리는 "부산의 바닷바람에 맞서며 살아왔다"는 그의 이력을 증명했다.

지 위원장은 2005년 연맹이 내부비리로 홍역을 앓던 시기에 부산항운노조 정상화추진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그는 조합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부산항운노조 위원장과 지역지부장 직선제를 도입했다. 2010년에는 부산항운노조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2년 9월 연맹 위원장에 당선돼 연임한 그는 노동계에서 결단력과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8월28일 조합원이 노조간부를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 위원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앞으로 금품 10만원만 받아도 제명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비리를 척결하지 않는다면 위원장의 직무유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맹은 개혁 중 … 노조의 힘은 뭉치는 데서 나와”

- 지난 8월 조합원이 노조간부를 폭행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는데. 상심이 클 것 같다.

“심하게 얘기하면 조합원이 아니라 폭력배다. 대낮에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때린 것은 단순폭행이 아니라 살인미수다.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연맹은 (비리 없이 투명하게) 바르게 가려고 하는 과정에 있다. 아직도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

연맹은 2005년 이후 꾸준히 개혁을 추진했다. (이번 폭행사건은) 현장까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다. 개정된 연맹 규약에는 금품을 수수하면 제명하는 조항이 있다. 내부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노조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아직 변하지 않은 현장도 있지만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집행부의 강력한 의지다. 곧 바뀔 것이다. 잘 굴러가고 있는데 개혁하자고 하면 뒤통수를 맞는다. 지금이 개혁을 할 수 있는 적기다.”
 

▲ 정기훈 기자


- 2005년 정상화추진위원장을 맡을 당시에는 어땠나.

“노조간부들이 비리로 잇따라 구속됐다. 그때만 해도 내부 비리 문제가 있었다. 권력을 사고파는 노조를 어떻게 노조라고 할 수 있겠냐는 생각으로 정상화추진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규약에 외부 회계감사를 두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 위원장·지부장 직선제를 도입한다고 하니 조합원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반장까지 직선제로 뽑으라'는 말이 돌았다. 조직을 와해시키는 것이지, 개혁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럼에도 부산항운노조에서 위원장·지부장 직선제를 결국 시행했다. 위원장 선거는 조직분열 탓에 다시 간선제로 바뀌었지만 현재 지부장은 조합원 직선으로 뽑고 있다. 위원장을 맡으면서 변화는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시대가 이만큼 바뀌었는데 노조도 잘못된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 세월호 참사 때 연맹이 1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이티와 일본 대지진 때 미약하지만 성금을 보냈다. 지부별로 불우이웃·장애인 돕기도 꾸준히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적인 참사였다. 연맹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참사가 일어나고 보름이 지났을 때 중앙운영위원회를 소집해 성금을 내자고 결의했다. 전 조합원이 십시일반 모은 돈이 1억원이 됐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노조도 국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항만노동자들에게 복수노조는 ‘치킨게임’

- 복수노조 시행 이후 영일만항운노조와 갈등이 불거졌는데.


“연맹 조합원들은 터미널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를 제외하고 모두 도급형태로 일하고 있다. 복수노조가 만들어지면 노조끼리 경쟁이 생겨 노임단가가 떨어진다. 신생노조가 일감을 받기 위해 노임을 낮추게 되고, 그러면 단가경쟁이 붙는 것이다.

항만노동자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했다면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폐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법을 만들었어야 했다. 영일만에 복수노조가 만들어졌다. 영일만항운노조는 지역주민이라는 이유를 들어 하역작업을 하겠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동대문시장에서 화물을 운반하는 노동자들이 단체를 만들어 작업권을 확보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미 시스템이 정착돼 있는데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며 복수노조를 만들어 자기들이 하겠다고 나서니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구조 탓에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연맹은 노무공급권을 갖고 있는 유일한 노조다. 노조에 가입해야 일을 할 수 있는 이른바 클로즈드숍제로 운영된다. 일감은 성수기와 비성수기에 크게 차이가 난다. 이럴 때 노조는 자율적으로 하역회사에 인력을 공급한다. 하역회사는 필요할 때 노조로부터 인력을 공급받아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노무공급권 노사정이 함께 운영하는 방안 추진"

- 조합원들의 노동조건 문제도 이슈로 부각됐는데.

“항만하역요금 인상률은 항상 물가상승률보다 낮게 책정된다. 하역요금이 올라야 항만노동자들의 노임도 올라간다. 예전에는 신고제로 운영돼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해양수산부가 한시적으로 인가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하역요금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런데 엔저현상으로 인해 수출입이 영향을 받을까 우려된다. 항만노동자들은 도급형태로 일하기 때문에 일한 만큼 번다. 물량이 떨어지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항만노동자들은 노임을 동결했다.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하고 수출이 살아나야 일감이 생기기 때문에 노사가 고통분담을 한 것이다. 지금은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으로 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 위원장 임기 동안 목표가 있다면.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항만인력수급관리협의회를 추진하고 있다. 항만 하역작업의 노무공급을 노사정이 함께 운영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하역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복지기금도 만들 예정이다.

평생 항만에서 일하다 퇴직하면 연금만으로 생활하기 어렵다. 노후에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복지기금은 반드시 만들 생각이다. 연구용역을 맡겼으니 곧 윤곽이 잡힐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