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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16] 살 만하다 싶으면 어느새 벼랑 끝에…

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1960년 4·19 전 남편이 도동에서 미싱(재봉틀) 한 대를 사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옷이 잘 팔려 금세 미싱을 20여대나 들여놓았다. 남대문시장 대도백화점 2층에 직매점을 내어 사업을 활발히 꾸려 나갔다. 단체복을 주문받아서 상당한 돈을 벌기도 했다. 단체복 사업은 규모를 크게 해야 했다. 이소선이 보기에는 너무 무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이제 단체복은 너무 규모가 큰 것 같으니 이쯤에서 손을 떼는 게 어떨까요?”

이소선은 남편에게 그동안 생각했던 바를 얘기했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돈이 벌릴 때 한꺼번에 왕창 벌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소선은 남편의 생각을 바꿀 수가 없었다.

4·19가 일어나기 직전 남편은 단체복 생산을 엄청나게 확장시켰다. 그동안 닦아 놓은 사업기반을 이용해 원단을 많이 쌓아 두고 있었다. 남편은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들였다.

황망하게 망한 단체복 사업, 다시 빈털터리로

이때 남편은 사업상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마셔야 했다. 사업을 하다 보니 시장에 있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됐는데 그 가운데 좋지 못한 사람을 사귀고 있었던 모양이다. 남편은 친구와 어울려 엉망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취해서 인사불성인데 그 친구는 남편의 주머니를 뒤져서 돈 받을 증서와 도장을 훔쳐가 버렸다.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증서와 도장을 찾아보니 없어졌다. 그 친구가 돈을 다 받아 챙겨서 줄행랑을 놓아 버린 것이다. 순간의 실수로 많은 돈을 날려 버린 것이다.

마침 그 무렵 4·19가 터져서 세상이 혼란스러웠다. 세상이 술렁거리니 도망간 친구를 찾을 수도 없고 장사도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남편은 계속 단체복을 만들어서 납품을 했지만 대금을 받아 낼 수가 없었다. 따라서 수금을 할 수가 없으니 원단 값이며 공임 등 지불해야 할 돈을 줄 수가 없었다. 반면 갚아야 할 돈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었으니 사업이 망할 수밖에 없었다. 가지고 있던 재산을 빚잔치로 날리고 집 한 칸 없는 빈털터리가 돼 버렸다.

전상수와 이소선은 너무나 격심한 충격에 삶에 대한 의욕을 완전히 상실했다. 하루아침에 무기력한 인간이 돼 버렸고 건강은 말할 수 없이 나빠졌다.

이들은 이태원에 있는 남편의 친구 집에 임시거처를 얻어 더부살이를 해야만 했다. 이소선은 밤만 되면 어질어질하고 사람조차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심각한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도대체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이 생명을 이어 가기가 이다지도 힘든 일이란 말인가. 살 만하다 싶으면 어느새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신세로 돌변했다. 이소선이 이처럼 정신을 못 차리니 아이들인들 오죽하겠는가. 외할머니가 가끔가다 오셔서 아이들을 돌봐 줬다.

태일이와 태삼이는 어느덧 커서 학교에 다닐 때가 됐다. 근처 남대문국민학교를 다녔다.

이소선 남편의 친구 집에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한 분이 살고 있었다. 남편 친구의 아버지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밥도 제때 해 주지 않고 숫제 굶어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소선과 전태일은 이 꼴을 그냥 보고 넘길 수가 없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남의 집에 더부살이하는 처지에 주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나무랄 수도 없고 안타까운 마음은 굴뚝같은데 손을 쓸 만한 처지가 못 되니 답답하기만 했다.

이소선은 보다 못해 태일이를 시켜 할아버지에게 먹을 것을 갖다 드렸다. 태일이는 할아버지에게 정성을 다했다. 어찌나 불쌍하게 봤던지, 어린것이 자기 먹을 것을 할아버지에게 드리곤 했다. 주인 내외가 고운 눈으로 볼 리가 없었다. 하루는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이소선은 수제비를 끓여 아이들과 먹다가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갖다 드렸다.

“자기들 먹을 것도 없는 주제에 남 동정하는 거야 뭐야. 꼴 보기 싫으니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 줘요. 알았어요?”

집주인과 삿대질하며 싸우는 소년 전태일

주인집 여자가 지켜보고 있었는지 방문을 닫고 나오는 이소선에게 삿대질을 했다. 이 집에서 나갈 형편도 안 됐지만, 갈 데가 있다 해도 주인 여자에게는 대꾸할 마음이 안 생겼다. 이소선은 못 들은 척하면서 지나쳐 버렸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 편이었다. 그런데 아들이고 며느리고 담배를 사 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는 남산이며 시장이며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꽁초를 주워 피웠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벽지가 너덜너덜하니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마치 폐가 같았다. 꽁초를 말아 피울 종이마저 없으니 노인 양반이 벽지까지 찢어서 담배를 말아 피운 것이었다.

하지만 태일이가 할아버지하고 가깝게 지낸 뒤부터는 담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태일이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피우고 남은 꽁초를 봉지에 담아 왔다. 길에서도 꽁초를 주워 와서 종이까지 잘 싸서 할아버지에게 드렸다.

할아버지에게 꽁초를 주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며느리가 있는 날이면 태일이도 당황해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할아버지도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하니 거북하기만 했다. 주인 여자는 시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면 어디서 구했느냐고 들들 볶아 댔다. 담배를 사 드리지 못한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노인을 몰아붙여서 못살게 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담배를 갖다 주는 사람에게는 쌍욕을 퍼부었다. 태일이는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하며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어느 날 주인집 방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고 욕설이 난무했다.

“뭐? 이놈. 어린놈의 자식이 미쳤나. 네 이놈 지금 뭐라 그랬어!”

집주인 아저씨가 태일이를 나무라면서 욕설을 했다. 이소선이 듣자 하니 태일이가 할아버지 문제 때문에 집주인 아저씨한테 뭐라고 따지고 대들었나 보다. 집주인은 노발대발하면서 태일이를 끌어내라고 고함을 치고, 발로 방바닥을 치며 쿵쾅거렸다.

이소선은 무슨 큰일이 났나 싶어 기겁해서 달려갔다. 이게 웬일인가. 어린 태일이가 주인집 남자에게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해 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태일이는 평소에 며느리보다 남자가 더 나쁜 사람이라고 엄마에게 말해 왔다.

‘기어이 일이 터졌구나.’

이소선은 태일이를 데리고 오려고 팔을 붙든 채 끌어당겼다. 태일이는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태일이는 끌려 나오면서도 집주인 아저씨가 잘못한 일들을 하나하나 들춰내면서 따졌다.

주인 남자는 어린것한테 당하고 있었지만, 주먹질을 할 수는 없었는지 그저 당장 끌고 가라며 펄펄 뛰었다. 주인 남자가 날뛰는 것을 보니 태일이를 그 자리에 머물게 할 수가 없었다. 이소선은 태일이를 끌어내는 척했다. 속으로는 뒷일이 걱정됐지만 속은 후련했다. 그날 저녁 주인 남자는 당장 방을 비우라고 했다. 한두 번 들은 말이 아니었다. 겁날 게 없다. 이소선은 알았다는 말만 하고 내처 눌러 있었다.

며칠 뒤 편지가 한 통 왔다. 태일이가 편지를 집어 들더니 할아비지가 그토록 기다리던 부산에 있는 작은아들한테서 온 것이라고 했다. 태일이는 편지를 엄마에게 보여 주더니 뜯어보자고 했다.

“남의 편지를 뜯어보면 어떻게 해?”

태일이를 말리고 있었지만 사실 이소선도 편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편지를 뜯어봤다. 작은아들은 직장을 아직 구하지 못해 일정한 거처를 정하지도 못하고 떠돌고 있는 신세였다. 이런 형편이니 고생이 되더라도 조금만 참고 계시면 직장을 얻어서 모시러 오겠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읽어 보니 딱한 형편이었다. 할아버지는 작은아들한테서 소식이 오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모시러 올 수 없다니, 할아버지는 얼마나 실망을 하실까. 태일이는 편지를 다시 봉해서 주인집에 갖다 놨다.

그날 밤이었다. 할아버지가 태일이를 불렀다. 이소선도 태일이와 함께 할아버지 방에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이소선과 태일이가 자신을 만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했다. 밖으로 불이 새어 나갈까 봐 담요로 가렸다. 할아버지는 태일이에게 작은아들이 보낸 편지를 읽어 보라고 했다.

태일이의 손목을 잡고 우는 노인

태일이가 편지를 읽었다.

“좋은 직장을 구해서 생활의 안정을 얻고 있으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속히 부산으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교활한 며느리가 그 사이에 시아버지를 내쫓기 위해 편지 내용을 바꿔 놓은 것이다.

“아이고, 우리 아들 장하다. 내일이라도 당장 내려가야겠다."

앞뒤 상황을 모르는 할아버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태일이는 할아버지한테 내려가면 안 된다고 간곡히 말했다.

"할아버지, 객지에 나간 아들이니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잘 지낸다고 써 보낸 편지입니다. 할아버지, 좀 더 기다려 보세요. 설사 형편이 좀 나아졌다 하더라도 금방 내려가시는 것보다는 형편이 좀 더 나아진 다음에 내려가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때쯤이면 작은아들이 모시러 올라오겠지요."

태일이는 할아버지가 실망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했다. 할아버지도 태일이의 말에 수긍하는지 고개를 끄덕이신다.

“아니야, 내려가야겠네. 여기 있다간 명대로 살지도 못할 거야. 내가 죽더라도 작은놈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죽어야 할 게 아닌가."

할아버지는 며느리의 박대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아무리 말려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기어코 내려가시겠다는 말씀만 하신다. 태일이는 할아버지가 속고 있는 것을 차마 계속 볼 수 없어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마음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근데요, 이 편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건 아줌마가 할아버지를 부산으로 내려보내려고, 편지를 거짓말로 쓴 거라니까요. 오늘 낮에 제가 그 편지를 읽었는데 아직 부산 가신 아저씨는 직장을 못 구했대요. 직장을 구하고 집이 마련되면 모시러 온다고 했어요. 어렵더라도 할아버지가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라고 했어요.”

할아버지는 탄식을 터트리더니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 일을 어쩌나 죽지도 못하고 이놈의 생활을 해야 하니….”

작은아들이 일정한 거처가 없다는데 할아버지는 어디로 가신단 말인가. 도리 없이 그냥 지낼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날이 밝자 며느리는 할아버지에게 작은아들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아버님, 부산으로 내려가시는 게 좋겠어요. 도련님이 돈을 많이 벌었나 봐요. 그토록 아버님을 보고 싶어 하는데 여기서 계실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는 며느리의 속셈을 다 알고 있었지만 뭐라고 속 시원히 맡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며느리의 속임수에도 작은아들 집으로 가지 않았다. 며느리는 할아버지가 방안에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자 매일 성화였다. 입만 열었다 하면 작은아들 타령을 하면서 구시렁거렸다. 며느리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어느 날 기어코 집을 팔았다.

그날 당장 할아버지를 억지로 부산행 열차에 태워 보냈다. 이소선과 태일이를 쫓아내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집이 팔렸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집을 떠나시면서 태일이를 불렀다. 노인 양반이 어린 태일이의 손목을 잡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태일아, 넌 참 착한 놈이다. 말하기 뭣하다만 그래도 네 녀석 때문에 목숨이라도 붙이고 살았어. 앞으로 넌 틀림없이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 가난해서 그렇지 네 엄마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두 눈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어머니 말씀 잘 듣고, 부디 튼튼하게 잘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하느니라.”

그동안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나 보다. 노인이 어린 태일이 손등을 쓸면서 서럽게 눈물을 쏟았다. 할아버지는 주머니를 뒤지시더니 태일이에게 1원짜리 동전 다섯 개를 줬다.

“이 늙은것이 어디 가면 너처럼 고마운 녀석을 만날 수 있겠냐.”

“할아버지, 그냥 두세요. 제가 무슨 돈이 필요해요. 할아버지가 먼 길 떠나시는 데 쓰시지요.”

태일이는 손을 빼면서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태일이가 귀여운지 눈물 속에서도 엷은 웃음을 지으셨다. 옆에서 보는 이소선의 마음도 착잡했다. 새로 나온 1원짜리 동전이 태일이의 손바닥에서 반짝거렸다.

할아버지가 부산으로 내려간 직후 이소선네는 용두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남편은 여전히 집을 돌보지 않았다. 이소선의 몸이 성하지 않으니 어디 가서 방을 구할 수 있겠는가. 또다시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살 수밖에….

결국 이사 때문에 태일이와 태삼이·순옥이는 남대문국민학교를 다니다 도중에 그만뒀다.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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