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에 관한 한 독일·프랑스·영국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이들 국가에서는 파업에 따른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용납하지 않는 곳도 있다.

한국노동법학회와 서울시립대 법학연구소가 지난 2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독일·프랑스·영국·일본 4개국 노동법 전문가를 초청해 개최한 2014년 국제학술대회에서 나온 분석이다. 이날 국제학술대회는 ‘쟁의행위와 책임’을 주제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파업 천국? 노동권 보장!=독일에는 우리나라의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하는 개념이 없다. 볼프강 다우블러 브레멘 대학 교수는 "별도의 법으로 정해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경우라면 모든 파업이 가능하다"며 "독일에서 파업을 했다고 형사상 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에서는 필수공익사업장으로 파업을 제한하고 있는 공항에서의 쟁의행위다. 실제로 2012년 프랑크푸르트공항 항법사들이 '평화의무' 법규를 어기고 파업을 했을 때 법원은 항공사들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400만유로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불법파업이긴 하지만 항법사들의 사용자가 항공사들이 아닌 정부 소유의 '독일안전항공'이라는 근거였다. 다우블러 교수는 "국민이 제때 비행기를 타는 것은 법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니지만 공항 노동자들의 파업은 법정 권리"라며 "이런 추세라면 50년 이상 지나면 독일 형법에서 쟁의행위 관련 내용이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랑스는 파업을 개인의 권리로 보고 넓게 허용한다. 제한되는 파업도 네거티브 방식으로 열거하고 있다. 작업도구 소지나 직장 점거만 불허하는 식이다. 파업을 제한하려는 의도라기보다 다른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려는 취지다. 불법파업 가능성은 그만큼 낮다.

영국의 경우 쟁의행위에 대한 형사법상 책임은 1875년에 폐지됐다. 노조에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조합원수 5천명 이하는 1만파운드(1천700만원)로 한도가 정해져 있다.

한국과 법제가 상대적으로 유사한 일본 역시 비조합원 해고에 항의해 정규직이 벌이는 파업을 합법으로 보는 등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범위가 우리보다 넓은 것으로 평가됐다.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리해고 반대파업이나 교사들의 파업은 불법으로 간주되기 일쑤여서 형사책임을 지고 사업주들은 손해배상을 청구해 민사 책임을 묻는다. 올해 4월 현재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제기한 손배 청구액은 1천700억원에 달한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과)는 "쟁의행위 제한·금지 법규, 노동권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인식, 이에 기반한 법원의 판례, 기업별노조 체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불법파업이 문제가 아니라 파업의 총체적인 불법화가 문제"라며 "지금까지의 노동법 질서는 단결활동을 차단하는 치안경찰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령상 각종 형벌조항을 삭제하고,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파업에는 적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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