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중앙노동위원회를 시작으로 고용노동부와 산하·직속·유관 기관들이 지방 혁신도시로 이전했다. 29일부로 충북 진천으로 이전하는 한국고용정보원을 마지막으로 노동 관련 기관의 지방이전이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들의 정주권 문제가 논란이 됐다.

반면에 이전 기관들을 이용하거나 기관으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노동자·기업인들이 받을 영향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매일노동뉴스>가 각 기관을 이용하는 수요자 입장에서 지방이전으로 나타난 현상을 짚어 봤다.

하루 사건 다섯 건 처리, 부실심판 우려

▲ 정부세종청사의 노동부 건물에는 중노위와 산재재심사위, 최저임금위원회 등이 함께 입주해 있다. 김학태 기자
박유순 금속노조 조직국장은 최근 4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세종시에 내려가야 했다. 중앙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회의가 있는 날은 그야말로 강행군이다.

회의 전날이나 전전날은 노동위원회 시스템인 ‘노사마루’에 접속한다. 사건에 대한 조사보고서와 일반 자료를 꼼꼼히 읽어 봐야 한다. 수백 페이지의 방대한 자료를 미처 프린트하지 못해 컴퓨터 모니터로 보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회의 당일에는 새벽 6시에 인천 집을 나서 중노위가 있는 세종시로 내려간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하루 5건 정도의 회의에 참석한 뒤 저녁 늦게야 집으로 돌아온다.

육체적 피로도 문제지만 박 국장이 걱정하는 것은 부실한 회의다. 하루에 5건에 이르는 사건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소한 회의 일주일 전에는 노사마루에 회의에 필요한 각종 자료가 올라온다. 일상이 바쁜 위원들에게 일주일여의 시간은 많은 것이 아니다.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사건을 다루는 심판회의에서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은 정확하게 분석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나 사용자의 편을 제대로 들 수 있다. 양쪽의 의견을 듣고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야 하는 공익위원은 더욱 노력을 쏟아야 한다.

박 국장은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조사보고서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자료까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며 “회의시간에 질문하는 것만 봐도 준비정도를 알 수 있는데, 위원들이 조사보고서라도 제대로 읽어 보고 오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중노위 위원들이 하루 5건씩 ‘벼락치기 회의’를 하는 현상은 중노위가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에서 세종시로 이전하면서부터 나타났다. 서울에 있을 때에는 오후에만 회의를 하면서 많으면 3건을 다뤘다. 그런데 수도권에 사는 위원들이 세종시에 내려가는 것을 힘들어하면서 지금처럼 전일제 회의와 벼락치기 회의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전일제 회의는 사건 당사자들에게도 부담이 된다. 창원을 포함해 경남 일부지역의 경우 오전 10시부터 중노위 회의가 시작되면 그 전날 세종시 인근에 와서 숙박해야 한다. 회의 당일에는 가장 빠른 KTX 열차를 타도 오전 10시까지 도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창원 중앙역에서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장 가까운 오송역으로 가는 열차는 오전 9시39분이 첫 차다. 오송역까지는 2시간10분이 걸린다.

중노위는 하루 5건 회의에 대한 비효율성이나 부담감을 호소하는 위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만간 회의 방식을 변경할 계획이다. 중노위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새 공익위원 위촉이 끝나면 위원들이 한 번 회의하러 올 때마다 3건 이상은 다루지 않도록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보건공단이 모텔 소개한 까닭

“교육원 생활관 수용인원 한계로 입실하지 못한 교육생분들을 위해 인근지역의 편리한 숙박시설을 붙임과 같이 안내해 드립니다. 생활관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올해 3월7일 울산혁신도시로 이전한 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교육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재미있는 공지를 볼 수 있다. 이전하고 얼마 뒤인 3월28일자 공지인데, 제목은 ‘산업안전보건교육원 인근 숙박시설 안내’다. 첨부파일을 열어 보면 울산시내와 울주군에 있는 낯 뜨거운 이름의 모텔 92곳의 이름·전화번호·주소, 교육원과의 거리가 적혀 있다. 공단에서 가깝게는 1.6킬로미터, 멀게는 3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도 있다.

의무교육보다는 안전관리·산업보건·건설안전 등 전문화교육을 주로 하는 교육원을 찾는 기업 관계자들과 노동자들은 연평균 1만여명. 하루 만에 끝나는 교육은 거의 없고 며칠간 숙식하면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교육원은 인천 부평구에 있을 때부터 생활관을 운영했고, 울산으로 옮기면서도 15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생활관을 만들었다. 그런데 수용인원을 초과하는 일이 생기면서 교육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인근 숙박시설을 알린 것이다.

교육원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마뜩잖았던 모양이다. ‘교육생들의 숙식에 문제가 없냐’는 질문에 교육원 관계자는 “생활관은 교육생들을 수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에 노조측 설명은 보다 구체적이다. 안전보건공단노조 관계자는 “부평에 있을 때는 생활관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교육생들이 수도권 인근 자택에서 출퇴근했는데, 울산으로 옮긴 뒤에는 교육생들이 택시를 타고 시내모텔과 교육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고 말했다. 울산 북정동에 있는 교육원과 울산시내를 오가는 대중교통편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서울행정법원의 굴욕

중노위가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서울행정법원은 한때 주가가 땅바닥까지 떨어졌다.

올해 5월20일자로 개정되기 전의 행정소송법(제9조 재판관할)은 "취소소송의 1심 관할 법원은 피고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행정법원으로 하되 중앙행정기관 또는 그 장이 피고인 경우의 관할법원은 대법원 소재지의 행정법원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이에 따라 중노위가 서울에 있을 때는 서울행법이 중노위 재심판정 취소소송을 전담했다. 하지만 행정소송에서 피고 신분이 되는 중노위가 세종시로 내려간 뒤에는 대전지방법원으로 노동행정 사건이 몰렸다. 중노위를 중앙행정기관으로 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었다.

행정소송 건수가 크게 늘어난 대전지법은 1개였던 행정합의부를 2개로 늘리고 판사도 증원했다. 반면에 서울행법은 노동행정 사건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한 달에 한두 건 들어오는 사건은 대전지법으로 이송해야 했다. 4개였던 노동전담 재판부는 2개로 줄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야 하는 소송당사자들의 불편을 고려해 관할 법원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행정소송법이 5월20일 개정됐다.

"취소소송의 제1심 관할법원은 피고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행정법원으로 한다"는 원칙에, ‘중앙행정기관·중앙행정기관의 부속기관과 합의제 행정기관 또는 그 장’이 피고가 되면 대법원 소재지를 관할하는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장승혁 서울행법 공보판사는 “법이 개정된 뒤 노동행정 사건 규모가 예년 수준으로 회복됐다”며 “내년 2월께 줄어든 노동전담 재판부를 다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재심신청 해? 말어?”

“예전에는 심판사건에서 노사 당사자들에게 화해하자고 하면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세종시도 먼데 화해하시죠’라고 말하면 진짜 화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서울지노위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중노위가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서울지노위 초심에 불복해 멀리 있는 중노위까지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화해를 하거나 구제신청을 취하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지노위의 한 조사관 역시 “재심을 받으려면 세종시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화해하거나 취하하는 분들이 간혹 있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이 의미 있는 통계수치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서울지노위를 보면 지난해부터 올해 1~7월 누적된 심판사건 처리건수 중 화해하거나 취하하는 비율은 77.6%로 지난해 같은 기간(78.3%)보다 줄었다.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나 인천지역도 눈에 띄는 통계수치 변화는 발견되지 않는다. 경기지노위의 화해·취하율은 0.2%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고, 인천지노위는 오히려 8.7%포인트 줄었다.

중노위가 세종시로 가면서 노사 당사자들이 재심판정을 받기 수월해진 충남지노위 사건은 어떨까. 화해·취하율은 되레 0.5%포인트 늘었다.

지노위 관계자들은 “사건의 성격, 사건 이해당사자들의 성향이 화해율과 취하율·재심신청률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중노위의 이전 때문에 처리 현황이 달라진다고 보기는 힘들고 그럴 만한 증거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중노위의 세종시 이전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은 못한다. 지노위를 거친 뒤 중노위까지 갔다가 화해하거나 취하하는 비율을 보면 서울(+3.5%포인트)·경기지노위(+2.5%포인트) 사건은 소폭 상승했고, 충남지노위는 10.9%포인트 하락했다. 강운경 중노위 심판1과장은 “개연성은 있지만 크게 의미 있는 통계는 아니다”면서도 “세종시로의 이전이 사건처리에 영향을 미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턱 높아진 중앙노동위·최저임금위

고용노동부가 중앙노동위원회는 물론 직할기관인 최저임금위원회 등과 함께 세종시로 옮긴 뒤 같은 건물을 사용하면서 보안이 대폭 강화됐다. 민원인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와 같은 건물에 입주한 중앙노동위·최저임금위·산재재심사위·고용보험심사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중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무원·기자·위원 등 미리 출입증을 발급받은 이들 외의 방문객은 노동부 건물 외부의 출입문에서 경비들에게 신분증을 보여 줘야 한다. 이어 건물 로비로 들어가면 신분증을 제출하고 방문증을 끊어야 한다. 그것도 공무원들이 로비에 내려와 동행해야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

중노위와 최저임금위가 서울에 있을 때 별도의 신분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로비에서 방문지만 밝히면 출입이 가능했던 것과 비교된다. 노동부와 한 살림을 하면서 문턱이 높아진 것이다.

중노위 근로자위원인 이호동 민주노총 노동위원회사업단장은 까다로워진 절차가 불쾌해 출입증 발급절차를 밟지 않았다. 매번 신분증을 로비 데스크에 내고 방문증을 받았다. 나름대로의 항의표시였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자신을 데리러 로비까지 내려오는 것이 부담스러워 최근 출입증 등록 서류를 썼다. 이 단장은 “중노위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 같아 내키지는 않았지만 출입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협상이 활발했던 올해 6월에는 최저임금위 위원장과 면담하려던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신분확인 절차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일도 있었다. 여기에 최저임금위가 미안해하면서, 내년 최저임금 인상 요인을 제공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중노위 한 근로자위원은 “과도기적 현상이긴 하겠지만, 중노위나 최저임금위의 보안절차가 불필요하게 까다로워진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필요해서 남은 기관, 불필요하게 내려간 기관


고용노동부와 산하기관들이 지방혁신도시로 옮겨 간 것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준사법기관인 중앙노동위원회가 노동부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노동위원회의 독립성이나 공정성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는 항상 있어 왔다. 그런데 준사법기관과 중앙행정부처가 같은 건물에 입주하니 따가운 시선이 꽂히는 것이다. 지방이전을 총괄한 국토교통부나 안전행정부의 중노위에 대한 인식이 뒤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노위와 노동부 공무원들도 ‘동거’를 불편해하고 있다. 한 실장급 공무원은 “중노위 직원들은 노동부와 함께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마찬가지로 노동부 직원들도 불편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보건공단의 산업안전보건교육원이 울산으로 이전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지사와 달리 공단본부에는 민원인이나 노사관계자들이 직접 방문할 일이 적다. 반면에 교육원은 연평균 1만여명에 달하는 교육생들이 찾는다. 안전보건공단노조 관계자는 “주요 고객인 교육생들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교육원만큼은 대전이나 세종시 등 중간 지점으로 옮겼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민원인 등 기관을 직접 이용하는 이들을 위해 지방이전을 하지 않은 곳도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교육훈련차 공단본부를 자주 찾는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고려해 경기도 성남시에 그대로 남았다. 근로복지공단 산하 산재심사위원회 역시 위원회 기능과 산재노동자들을 고려해 서울에 남아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울산으로 내려간 공단직원 규모가 정부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한 데다, 수도권에 집중된 심사위원들과 심사위를 거쳐야 하는 다수 근로자를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편 노동부 직속기관인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는 노동부와 함께 세종시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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