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전원 다, 전부 다 이겼어요." 서울중앙법원 판결 선고를 들으러 갔던 변호사가 흥분해서 전화로 소리를 질렀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였다. 오후 1시50분에 시작된 선고를 듣자마자 전화를 한 거였다. 판결선고 때는 통상적으로 변호사는 법정에 가질 않는데 특별한 날이라서 사무실에서 이 변호사가 참석했다. 불법파견 중단 및 정규직 전환의 파업투쟁을 이유로 현대차가 비정규직 노조간부·조합원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사건 재판을 위해 나는 천안법원으로 가던 중이었다.'전원 다, 전부 다'라는 이 변호사의 말에도 나는 모든 사내하청 공정이냐, 이른바 물류까지도 포함이냐, 울산공장도 다냐고 물었다. 2010년 11월 소장을 제출하면서도, 2012년 초 울산공장에 현장검증을 가서도 가장 걱정이 됐던 것이 사측이 직접 라인공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서브라는 물류공정이었다. 이 공정들에 관해서 그 뒤 노동위원회가 부당징계 구제신청사건에서 합법도급이라며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정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물었던 것인데 '다'라는 이 변호사의 대답을 듣고서 안도했다.2014년 9월18일이었다.

2. "원고들이 피고 현대자동차 주식회사의 근로자임을 확인한다", "피고 현대자동차 주식회사는 원고들에게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 이 두 개의 판결주문이 사내하청, 또는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라고 불려 왔던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인해 주고 있다. 파견법 개정으로 고용간주가 고용의무로 변경됨에 따라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의 내용은 달리 확인하고 있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렇게 판결로 노동자의 권리를 확인해 주고 있다. 이 판결을 통해 10년 현대차 비정규직투쟁은 중간정산을 하게 됐다. 지난달 있었던 현대차지부와 전주·아산의 비정규직지회가 한 노사합의로 정규직이 돼도 굴복이라고 비정규직투쟁의 대의를 버렸다는 비난이 있었고 비정규직노조 내부가 갈라졌다.

노사합의가 비정규 노동자가 승리자로서 현대차 정규직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었는데 이번 판결은 모두가 승리자로 현대차 근로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물론 피고 현대차가 고등법원에 항소해서 판결이 확정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논란의 여지없이 현대차 사내하청 공정의 전원 전부 불법파견이라고 법원이 인정하는 판결을 한 것이니 이제 고용노동부·검찰 등은 파견법위반죄로 현대차 사용자를 수사해 처벌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법대로만 한다면 현대차에서 불법파견의 사내하청근로는 철저히 근절될 수 있다. 그것으로도 현대차에서 불법파견투쟁은 중간정산을 넘어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3. 이날 비정규직지회의 간부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노동자로부터도 전화가 왔다. 천안법원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흥분으로 들뜬 목소리였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비정규직의 근로자지위소송 준비를 위해 오랫동안 사무실을 방문했었다. 지난달 노사합의 문제로 비정규직노조 내부가 심란하다는 소릴 듣고서도 외부에서 나는 그저 지켜볼 따름이었다. 이럴때 뭐라 시시비비하지 못하는 내 처지가 가장 심란하다. 현대차 비정규직투쟁 10년이다. 아산공장에서 비정규직노조를 만들면서 투쟁을 시작했다. 노조 간부의 다리를 칼로 상해하는 등 엄청난 탄압이 사용자들에 의해 자행되었다. 초기부터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해서 비정규직투쟁이 전개됐다. 불법파견으로 고소고발했다. 불법파견이라고 부당징계해고라고 구제신청했다. 비정규직노조 파업투쟁은 불법파견이니 현대차 근로자라서 불법이 아닌 정당한 파업이라고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사건 재판에서 노조 간부들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당시 이런 사건들을 상담하고 대리했지만 인정해 주지 않았다. 노동부·검찰은 제멋대로 파견과 도급의 기준을 만들어서 현대차 사내하청근로는 파견이 아니라고 결국은 현대차에 면죄부를 줬다. 법원도 불법파업이라고 업무방해죄 등으로 비정규직투쟁을 처벌했다. 그렇게 현대차 비정규직투쟁은 짓밟혔다.그리고서 2007년 6월1일 서울중앙법원에서 현대차 사내하청근로는 원고들 7명의 모든 공정이 불법파견이라며 파견법에 따라 2년 넘게 근로한 아산공장의 노동자 김아무개 등은 현대차 근로자라고 인정했다. 이러저런 청구취지를 고민하다 당시 종전의 부당해고구제신청이 아니라 현대차 근로자라고 확인받는 근로자지위소송으로 제기해서 진행한 사건이었다. 최초로 대한민국 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근로를 불법파견이라 인정하고 비정규직을 현대차 근로자라고 인정한 판결이었다.그리고 2010년 7월 대법원은 고등법원까지 도급이라고 한 판결을 파기하고서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에 대해 아산공장에 관한 서울중앙법원 판결법리와 같은 취지로 불법파견이라며 부당해고라고 판결했고, 그 직후인 2010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은 아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김아무개 등 4명이 불법파견으로 현대차 근로자라고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 판결이 있자 공장별로 다시 비정규직노조가 조직되고 이때 불법파견 근로자지위소송이 주요한 투쟁의 전술이 됐다. 2천명 가까이 원고로서 사용자 현대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것이 2010년 11월경이었으니 벌써 4년이다. 그 무렵 불법파견 중단 및 정규직전환을 위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전개됐고 해고 징계, 손해배상·가압류로 온갖 탄압을 받아 왔다. 돌이켜보면 많은 얼굴이 떠오른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노조간부·활동가, 그리고 상담과 소송을 담당했던 변호사와 노무사 등 투쟁마다 사건마다 새겨져 있다. 모두가 현대차에서 불법파견 중단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지위 인정을 위해, 파견근로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 나라 법이 선언한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확인받고자 한 것이었다. 새롭게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대한민국의 법원 등 법집행기관에서 확인받고자 한 것이었다.

4. 권리를 투쟁으로 확인받아야 했다. 이 나라에서 비정규 노동자는 파견법이 보장한 노동자권리를 비정규직투쟁으로 확인받아야 했다. 판결 선고가 있던 날, 비정규직투쟁 만세를 불렀다. 비정규직투쟁 승리의 환호가 뉴스를 장식했다.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는 투쟁으로 확인받아야 했다. 파견법이 보장한 노동자권리를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라고 아는 것조차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투쟁하고서야 가능했다. 노동부·검찰에 진정하고 고소고발하는 것도 비정규직노조가 거창하게 결의하고서 사용자들의 압박에 맞서는 투쟁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불법파견이라며 부당해고·부당징계 구제신청을 하고, 조합원들을 근로자지위소송에 참여하도록 조직하는 것도 비정규직투쟁이었다. 분명히 이 세상이 비정규 노동자에게 권리로 보장한 것인데도 현대차에서 비정규 노동자는 권리를 투쟁으로 확인받아야 했다. 누구는 말한다. 통상임금문제도 비정규직문제도 법원 판사들이 적극적으로 노동자권리를 선언해서 근래 이 나라가 시끄럽다고 말한다. 며칠 전 사용자대리를 하는 변호사가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에 대해 했던 말이다. 판결의 못마땅함을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에서 불법파견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고 단지 이 나라에서 파견법을 법대로 집행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판결이 비정규직투쟁의 승리라고 뉴스를 장식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법집행을 해야 했음에도 노동부·검찰·법원 등 법집행기관이 소극적으로 집행해 왔기 때문에, 아니 법대로 법집행을 하지 않아왔기 때문에 현대차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번 판결에 감격한 것이다. 누구는 말한다. 소송으로 법원의 판결을 선고받는 것이 이 나라에서 노동자투쟁이라고 말한다. 노동자투쟁이 법적 투쟁에 머물고 있는데 대한 한탄의 말이다. 이것은 권리를 투쟁으로 확인받아야 하는 이 나라 노동운동의 현실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뭐라 비판할 말은 아니다. 당연한 노동운동의 지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이미 보장된 노동자권리를 권리로 확인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은 법이 선언한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니 현대차에서는 10년을 불법파견 중단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투쟁해 왔다. 법에서 보장한 노동자권리를 사용자가 인정하지 않고 불법과 범죄의 행위를 자행하고, 법을 집행해야 할 국가권력이 이를 방치하고 있으니 현대차에서 이 나라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는 법이 보장한 최저기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서 법대로 해 달라고 투쟁해 왔다. 그리고 10년의 투쟁으로 마침내 이번 판결을 통해 법이 보장한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확인받을 수 있었다.

5.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의 문제는 권리를 투쟁으로 확인받는 데서도 나타난다. 사용자와 맞서 새로운 노동자권리를 쟁취해야 할 노동운동이 기존 노동자권리를 확인해 줘야 할 국가권력의 일을 하는 것이다. 권력의 후진성 내지 자본편향이 초래한 노동운동의 비극이다. 이번에 현대차 불법파견 근로자지위소송사건에서 이 나라 법원은 전원 전부 승소의 판결을 선고했다. 현대차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확인해 준 것이니 노동운동은 그 권리를 전제로 새로운 노동자권리를 쟁취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판결에 노동자가 했던 것처럼 거기서 투쟁의 승리를 노래해야 한다. 현대차에서 사내하청노동자는 법원의 판결로 현대차 근로자다. 이제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근로는 노동운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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