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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를 떠나보낸 노동자 이야기
송영섭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열사가 돌아가신 지 넉 달째 되는 지금 그는 법정에서 장례식 방해, 특수공무집행 방해라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형동생처럼 가까운 사이였기에 열사가 행방불명됐을 때 누구보다 애태우며 찾아다녔다. 열사가 끝내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 망연자실한 상황에서도 제일 먼저 열사 곁으로 달려갔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열사의 유서를 한 자 한 자 읽으며 가슴을 내리쳤을 것이다.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 지회가 승리하는 그날 화장해서 이곳에 뿌려 주세요."

노동조합의 불모지에 서비스기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함께 겪어 왔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열사가 짊어진 고통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에게 열사의 마지막 유언은 꼭 지켜야 할 사명이 됐을 것이다.

장례식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열사의 유언에 따라 노동조합은 열사의 친부와 친모로부터 장례절차를 위임 받았다. 시신을 안치하고 조문을 받았다.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하고 고인의 뜻을 헛되이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평온하던 장례식장이 경찰의 난입으로 일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수백명의 경찰들이 조합원들을 밀치며 장례식장으로 들이닥쳤고 끝내 시신을 탈취해 갔다. 그에게 씌워진 죄목은 폭력으로 시신이송을 방해하고 경찰관의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형법 제158조에 “장례식, 제사, 예배 또는 설교를 방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돼 있다.

누가 평온하던 장례식을 방해했나. 열사가 자필로 쓴 유서가 있고, 친부와 친모의 위임까지 있었다. 유서를 목격하고 부모로부터 위임을 직접 받은 사람도 그였다. 법정에서 당시 상황이 촬영된 동영상을 틀었다. 화면 속에서 그가 보였다. 경찰들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며 당황하던 그는 경찰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쫓아가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왜 경찰병력이 투입됐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이 밀리고 넘어지고 경찰에 의해 연행돼 갔다. 누구는 계단 위에서, 누구는 화단에 올라가 울부짖었다. 열사를 죽인 것도 모자라 시신까지 탈취하려는 것이 사람이 할 짓이냐고 호소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최루액과 경찰의 폭력, 체포연행이었다. 처음에는 놀라고 흥분하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표정이 없어져 갔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그저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경찰과 조합원들이 뒤엉켜 있던 주변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던 그는 결국 옆에 세워져 있던 차량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옷을 벗어 저항하다 붙잡혀 연행됐다. 그게 다였다.

검찰은 그가 엄숙해야 할 장례식장에서 옷을 벗고 경찰을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불법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는 없다며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보고 흔히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한다. 순식간에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꿔 버리는 것이다. 엄숙해야 할 장례식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자들이 누구인가. 열사의 시신을 불법적으로 탈취한 자들이 누구인가. 엄숙한 장례식장에 대한 털끝만큼의 존중이 있었다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경찰력을 난입시킬 수 있었을까. 경찰은 친부가 119 신고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법정에서 친부에게 물었다. “고인이 유서를 통해 노동조합에서 장례를 치르도록 유언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친모와는 아무런 협의도 없이 고인의 시신을 옮기고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나요?”라고 하자, “아버지니까 당연하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버지니까 당연하다…. 시신의 온기가 가시기도 전에 노동조합이 얼마를 받아 줄 수 있는가를 묻는 것도 당연한 아버지의 권리인가. 그래서 친모에게 물었다. 친모는 “살아생전 잘해 주지 못해서 죽은 후에나마 아들의 뜻대로 해 주길 바랐다. 아들의 바람을 위해 노력해 준 그가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구속돼 수사와 재판을 받았고 한참 후에야 보석으로 석방될 수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걱정했을 어머님과 아내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하며 선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는 자신이 재판받게 된 것보다는 열사의 마지막 유지를 지키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한다. 재판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노동조합의 당연한 권리를 외치며 죽어 간 젊은이가 있고, 오로지 그 뜻을 받들려 했던 사람이 있다. 과연 법이 단죄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송영섭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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