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조합원)

나는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매일노동뉴스 펴냄)라는 책이 발행되기 전에 저자인 박태주 박사와 수십 차례 인터뷰를 했던 여러 명의 현장 활동가 중 한 명이다. 이 책 구석구석에는 내가 지난 27년간 느끼고 경험했던 현대차 노사관계의 문제인식도 녹아들어 있는 게 사실이다.

현대차 노사관계 성격규명 '미흡'

이 책은 박태주 박사 자신이 2005년부터 10년 동안 현대차 노사관계를 진단하고 대안을 연구하며, 노사가 공동으로 위촉한 전문위원으로 직접 참여해 개입하고 경험했던 결과를 정리한 총결산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또한 그 어느 연구서보다 현대차 노사관계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대립의 현상에 대해 낱낱이 들춰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함부로 구할 수 없는 전문자료를 포함해 검증하고 있기에 설득력도 높다. 현대차 노사관계 치부까지 과감하게 드러냈기에 노사 모두에게 비난받을 각오도 했으리라.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27년의 역사 속에 3년을 제외하고 거의 해마다 ‘파업의 전설’을 쓰고 있기에 그만큼 관심도 높고, 규모와 투쟁력·파급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노조임은 틀림없다. 오랜 투쟁 과정에서 한국 사회와 경제, 특히 노사관계에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은 현대차 노조가 가진 존재의 긍정적 효과는 분석하고 있지 않아 부정적인 측면만 활용되거나 이용당할 우려가 있다.

이 책에는 네 가지가 없다. 재벌의 황제경영, 재벌독식 경제체제(경제민주화), 분배정의, 현장의 고통(이 책은 노사가 대등하다거나 간혹 노조가 우월한 지위에서 선택한 것처럼 표현)은 분석에서 빠졌다. 이 책의 어디에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 회장일가에 대한 표현은 없다. 황제 회장일가를 성역이나 금기로 보고 논외로 두면 현대차 노사관계는 올바른 분석이 불가능하다. 회장일가는 현대차 경영이나 노사관계의 정점에 있다. 재벌의 부당내부거래, 그룹 차원의 획일적 노무관리, 중소부품업체 갈취(5STAR 제도), 비정규직 착취(불법파견), 노조활동에 대한 불법 지배·개입, 단체협약과 노사합의 위반 등 불법경영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재벌독식 한국 사회에서, 황제경영에 대한 평가나 개선이 전무한 상태에서 노조가 ‘연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현대차 노사관계는 ‘총노동과 총자본의 대리전’

문제의 원인과 본질을 밝히지 못하고 현상에 매몰되면 대안과 해답을 찾지 못한다. 현재의 파행적인 현대차 노사관계가 담합관계라면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체제 유지를 위한 정권과 자본의 담합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탄압 과정의 일시적·변태적 현상에 불과하다.

현대차 노사의 갈등과 대립 현상을 ‘노와 사’라는 독립적 관계분석에 머무르는 협소한 관점으로 보면 대안으로 나아갈 수 없다. 본 책에서도 일부 접근을 하지만 현대차 노사관계는 ‘총노동 대 총자본의 대리전’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친자본 반노동’ 사회체제에서 발생하는, 또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적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

한국의 재벌독식 천민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체제에서는 노동배제와 탄압은 물론이고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조차 무시하며 자본이 로비하고 정권이 앞장서서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는 법을 만든다. 인간답게 살 권리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파괴하는 비정규직법을 입법하는 나라다. 노조에 가입하면 해고당하거나 회사가 폐업하는 나라, 정부가 불법경영에 자금을 지원하고 경찰력을 동원해 비호하는 나라에서 현대차 자본이 무노조 전략과 불법경영, 노조에 대한 지배·개입과 부당노동행위를 멈추지 않는 한 파업은 해마다 계속될 것이다.

'27년의 적폐' 무노조 불법경영과 실리주의

현대차 자본은 무노조 경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 협조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조활동에 대한 불법적인 선거개입을 하고 있다. 소위 민주파 집행부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노조탄압과 차별적 대응으로 무력화를 기도해 왔다. 회사가 선호하고 암묵적으로 비호해 왔던 것이 실리주의로 위장된 노사협조주의다. 그 실리주의가 더 많은 실리를 위해 파업을 하고 있으니 역습을 제대로 당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현대차 노사관계 개선의 최우선 과제로 ‘회사의 노조인정’을 꼽고 있다. 해마다 파업을 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노조가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이해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현대차 노조운동 27년사의 적폐를 정확히 짚어 내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첫 번째 적폐는 현대차의 무노조 경영과 노조 회피전략이다. 현대차는 무노조 경영전략에 기반한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하면서, 노조가 설립된 사업장에서는 협조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거나 지속적인 탄압과 지배·개입을 통해 노조를 무력화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공장뿐만 아니라 해외공장에서도 무노조 전략과 기조를 유지하며(미국 앨라배마공장 노조 설립 무산), 노조가 있는 경우 탄압과 무력화(인도공장)와 체제 내화(중국공장 공회)하는 경영을 하고 있다. 현대차 자본의 노조 배제 또는 회피전략은 정권의 비호 아래 가능하다. 현대차 노사관계의 파행은 회사의 불법경영, 노사 간에 신의성실로 체결한 단체협약과 노사합의 위반이 해마다 파업을 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두 번째 적폐는 노조 내부의 문제다. 실리주의로 위장한 노사협조주의와의 잘못된 경쟁이 현재의 실패를 초래했다. 실리주의는 노사협조주의를 지향하며 사회적 연대의 발목을 잡아 기업 내부로 순치시키는 기능을 해 왔다. 현대차 노조활동 27년 동안 집행부 선거는 올바른 노동운동보다 노사협조주의(실리주의)와의 경쟁이었다. 선거공약은 돈 경쟁이 됐고 누가 더 많은 돈을 따낼 수 있는지가 선택의 기준이 됐다. 자칭 민주파들도 조합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실리주의를 뛰어넘는 공약을 내질렀다. 이를 집행하며 공약을 이행하려다 보니 더 강력한 실리주의를 지향하는 모순에 빠지면서 차별성이 사라졌다. 당선되고 나서 약속(돈)을 지키기 위해 조합원들을 잔업·특근, 장시간 노동에 내몰아 과로사로 죽어 가는 노동귀족으로 만들었고, 회사를 위해 차를 한 대라도 더 만들어 주기 위해 물량확보 천막농성을 하는 해괴망측한 노조활동을 해 온 게 사실이다.

실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실리주의 노선은 노조가 사회적 연대를 기피하고 공장 담벼락 안에서 자신들만의 이기주의를 추구하게 한다. 조합원을 돈의 노예로 타락시키고, 노조는 회사의 생산성에 협조하며 돈을 벌어 주는 기구로 전락한다. 이게 진정한 위기다.

현대차 노조가 나아갈 길

현대차 노동운동은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에도, 자본에 부역하는 노동운동으로 퇴행했다는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단기적·소아적 실리주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현대차 노동운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돈 몇 푼 더 받자고 생산에 협조하고 현장권력을 넘겨줘 종국에 가서는 쟁취했던 실리와 고용안정마저 빼앗기는 게 실리주의의 종말이다.

현대차 노조운동이 27년 적폐를 청산하고 극복하려면 민주노조 복원을 통해 회사의 불법경영을 바로잡고, 단체협약과 노사합의 파기를 방지해 집단적 노사관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 ‘연대성의 복원’을 위해서라도 민주노조를 복원하고 과도한 실리주의 경쟁을 극복하는 것 외에 교육을 강화하고 대공장 노동자 투쟁의 성과와 효력을 전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정치사회적조합주의 노선으로 변화해야 한다. 업종·지역 중심의 연방제형 산별노조 강화와 노동 중심 진보정당 재건설을 목표로 세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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