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 전태일의 영정을 붙잡고 오열하는 이소선을 그림. 먼산


“어떤 바바리를 입은 젊은 사람이 자기는 대학생인데 꼭 만나야 하니까 아무도 모르게 길 건너편에 있는 삼일다방으로 와 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이소선은 이모부의 이 말을 듣고 대학생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다. 태일이가 살아 있을 때 근로기준법 책을 펼쳐 놓고 자신에게 하던 말이 떠올랐다.

“대학생들은 미리 공부를 해서 이런 근로기준법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나는 학교를 못 가서 이제야 이런 것을 알게 됐는데,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으면 이 어렵고 한문투성이인 근로기준법을 보다 쉽게 공부할 수 있을 텐데….”

이소선은 태일이의 그때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대학생이라면 정말로 이런 사정을 알고 우리 편이 돼 주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는 결심을 굳혔다.

‘대학생이라면 한번 가 보자.’

이소선은 병원을 이리저리 돌아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몰래 빠져나왔다. 학생들은 정보원의 눈을 피하기 위해 병원까지는 올 수가 없다고 했다. 사실 병원은 감시하는 사람도 없이 한산한 편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달리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이소선은 학생들의 조심스러운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은밀하게 자신을 만나려는 사람들이야말로 태일이의 뜻을 이뤄 줄 사람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 학생들이 기다린다는 삼일다방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삼일다방에 들어서자 대학생 3명이 있었다. 허름하게 생긴 남색 바바리를 걸친 학생이 아는 척을 하며 일어섰다.

“어디서 온 누구요? 분명히 말하시오.”

이소선은 자리에 앉자마자 남학생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심문하듯 물었다. 자신을 만나자는 사람들이 대부분 돈을 가지고 덤벼드는 터여서 자신도 모르게 긴장돼 있었다. 이소선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정색을 하고 묻자 그 학생은 당황해하면서도 자세를 바로잡았다.

“저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다니는 장기표라는 학생입니다. 얼마 전 우리가 ‘자유의 종’이라는 신문에 평화시장의 근로조건에 관해 기사를 실었는데, 그 이후 이 문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지 못해 전태일군이 결국 죽게 됐군요. 죄책감도 있고 또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의논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왜 이제야 왔소? 당신을 일찍 만났더라면 내 아들은 안 죽었을 것을…. 왜 이제야 찾아왔소?”

학생들의 말을 듣자 이소선은 탁자를 쳐 가며 복받치는 눈물을 쏟았다. 근로기준법 책을 놓고 끙끙대며 안타까워하던 태일이의 안쓰러운 얼굴이 또다시 떠올랐다.

“죄송합니다.”

그 학생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눈물을 흘렸다.

이소선은 이제야 속내를 털어놓고 얘기할 사람을 만났으니 가슴 속에 있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태일이가 근로기준법을 연구한답시고 골머리를 썩이던 일에서부터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몸부림치던 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돈 가지고 태일이의 죽음을 해결하려는 사람들한테 욕을 퍼부어 가며 그동안 꽉 틀어막힌 자신의 속을 하소연하듯 폭포수처럼 몇 시간에 걸쳐 줄줄이 쏟아 놓았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소선은 자신의 말을 빠짐없이 들어주는 그들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드디어 구세주를 만난 듯싶었다. 태일이의 뜻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평화시장 여공들을 위해 태일이가 죽었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돈만 가지고 자신을 들볶는 판이었으니 절벽에 내몰린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은 다른 사람과 달랐다. 진심으로 태일이의 뜻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남학생은 전태일의 죽음에 학생들도 상당한 충격을 받아서 집회를 열고 시위를 크게 벌일 거라면서 자신에게 힘을 줬다. 이소선은 그 남학생의 말을 들으면서 학생들은 우리편이라고 단정지었다.

“당신네들이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한번 말 좀 해 보시오.”

“노제를 평화시장 앞에서 지내겠습니다”

이소선은 숨을 몰아쉬고 대뜸 물었다. 기관에서나 업주들이 하도 자신을 들볶아대서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 학생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체를 저희들한테 인도해 주시면 저희들이 전국의 학생을 모아 장례를 치르고 노제를 평화시장 앞에서 지내겠습니다. 전태일의 뜻을 살리기 위해 시체를 앞세우고 서울시내에 차를 못 돌아다니게 한 다음 평화시장은 그날 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네들이 책임지고 그렇게 할 자신이 있습니까?”

이소선은 다짐을 받듯이 학생을 똑바로 쳐다보고 소리 높여 물었다.

“우리들은 준비를 해 왔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이소선은 선뜻 아들의 사체를 인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여기 도장을 찍으세요.”

장기표라는 학생은 미리 준비를 해 왔는지 종이를 꺼낸 다음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이소선은 생전 처음 보는 대학생한테 아들의 사체를 넘겨주겠다는 증서를 써 줬다.

“다 됐습니다. 어머니 마음을 굳게 잡수시고 모든 것은 우리한테 맡겨 주세요. 그럼 그만 들어가 보세요. 준비를 마치는 대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아시겠죠?”

장기표 학생은 종이를 들고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아 두는 것이었다.

다음날 전태일의 장례를 학생장으로 치른다는 보도가 나가고 전국의 학생들이 성모병원으로 집결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긴장감이 더해 가는 가운데 학생들이 떼를 지어 성모병원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조문객들이 늘어났다. 복도를 가득 메운 조화가 급기야는 성모병원 밖에까지 늘어서기 시작했다. 정부 고관에서부터 노동청장, 평화시장 업주들,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생판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조화를 갖다 놓는 것이었다. 병원 복도는 말할 것도 없고 성모병원 마당까지 ‘고(故) 전태일’이라고 쓰인 조화가 늘어만 갔다.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그날 밤 학생들은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30여명이 영안실에 와서 함께 밤을 새웠다. 영안실에 모인 사람들은 밤을 새워 얘기를 나눴다. 이웃 할아버지와의 대화, 아주머니와의 대화,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의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새벽녘이 되어 이웃에 사는 김양이 팥죽을 끓여 왔다. 이소선이 팥죽을 먹어 보니 팥죽이 맛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도 학생들은 남기는 사람 없이 다 잘 먹었다.

이소선은 이런 모습을 보고 학생들을 더욱 신뢰하게 됐다. 학생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김양의 헌신적인 노력을 보고 학생들도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소선은 김양의 구김살 없는 행동에 고마움과 함께 이런 이웃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기관과의 합의가 결렬됐다는 소식이 널리 전해졌다. 영안실에 조문 온 노동청장이 이소선을 만나자고 했다. 이소선은 그 말을 듣고 영안실로 향했다. 영안실에 들어가니 웬 뚱뚱한 낯선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를 만나자는 노동청장은 어디 있습니까?”

“제가 노동청장입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뚱뚱한 몸집의 사내가 대답했다. 이소선은 그 사내 앞으로 가서 어떻게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장례를 못 치르고 있다기에 제가 장례식에 도와드릴 것이 있나 해서 협조해 주러 왔습니다.”

“내 아들 태일이를 죽게 한 책임자요, 또 태일이가 분신하고 나니까 질병 때문에 죽었다느니, 집안 사정으로 죽었다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기자들한테 지껄이며 태일이의 뜻을 왜곡시키던 놈이 아니던가!”

노동청장의 목을 물어뜯은 이소선

이소선은 노동청장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의 살찐 볼이 한층 더 밉살스럽게 보였다.

“이놈의 새끼, 네가 죽여 놓고 네가 장례식을 하러 왔다는 거냐! 이 돼먹지 못한 놈들, 국정감사 때 속여 놓고. 너, 내 아들 살려내. 노동청장이면 노동청장이지, 네깐 놈의 새끼가 어디다 대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뭐, 협조하러? 죽여 놓고 협조냐!"

이소선은 다짜고짜 노동청장의 멱살을 쥐어흔들어서 넘어뜨려 버렸다. 갑자기 당한 봉변이어서인지 그 뚱뚱한 몸뚱이가 단번에 바닥에 쓰러졌다. 이소선은 쓰러진 노동청장의 목을 이빨로 물어뜯어 버렸다. 이소선의 입에 찝찝한 피가 묻어 나왔다. 영안실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이소선을 붙들고 말리느라고 야단이었다. 그 사이에 노동청장은 혼비백산해서 쏜살같이 도망갔다. 그렇게 노동청장을 혼찌검을 낸 후 소란이 잠잠해지자 이모부가 이소선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처형, 저쪽에서 좀 보자는 사람이 있어요.”

갑자기 불어난 조문객들로 영안실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그중에서도 평화시장 어린 시다들이 찾아와서 태일이한테 “오빠! 오빠!”를 외치면서 목 놓아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소선은 그 어린 것들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이모부의 말이 생각나서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당신 누구요?”

“저는 학생입니다. 여기서는 말하기 곤란하니까 잠깐 밖으로 나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소선은 얼마 전 찾아온 서울대학교 학생이 생각나서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사내를 따라나섰다. 성모병원 밖에는 미끈하게 생긴 까만 승용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차를 탈 수 없소.”

이소선은 학생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차를 다 가지고 왔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했다.

“금방 갔다 올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잠시 얘기할 것이 있어서 모여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학생이라고 신분을 밝힌 그 사내가 차 문을 열면서 이소선이 타기를 재촉했다. 이소선은 잠시 망설였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장기표라는 학생이 혹시 준비가 됐다는 것을 알리려고 그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차에 올라탔다. 가까운 거리에 간다는 차가 이상하게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한참이나 갔다. 이소선은 부쩍 의심이 들어 자꾸 어디로 가기만 하느냐고 인상을 썼다.

“학생들이 장례문제 때문에 어머니하고 구체적으로 의논드릴 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잠시만 참으십시오.”

이소선은 그 말에 솔깃해져서 까다롭게 굴지 않고 차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로 했다. 그런데 한참이나 달리던 차가 희한하게도 지하실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봐요, 학생! 왜 지하실로 차가 들어가는 거요?”

이소선은 낌새가 수상쩍어서 몸부림까지 치며 발버둥 쳤다.

“안심하십시오. 조용한 데서 말해야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 턱 놓으세요.”

그 말을 듣자 그래도 학생이겠지, 학생들이 나를 기다리는 것이겠지 하는 한 가닥 기대를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 전태일 열사는 일기장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간절한 소망을 써 높았다. 민종덕


방 안에는 양복 입은 신사가 기다리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여튼 한번 만나 보기나 하자.’

무슨 호텔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지하실을 벗어나 빨간 우단(카펫)이 깔려 있는 복도가 나왔다. 꽤나 고전적으로 만든 문살무늬의 방문을 열자, 웬 낮선 사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앉아 있었다.

‘아이구, 나 몰라라!’

이소선은 순식간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섬뜩함을 느꼈다.

“염려 마세요. 저방 안에 서울대생들과 고대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그래 좋다. 학생들이 설마 나를 어떻게 하랴.’

방안에 들어가니 학생들이 아닌 양복 입은 신사가 세 명이나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이소선이 방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그를 데리고 온 사람을 비롯해서 열 명 가량 되는 사내들이 우르르 따라 들어왔다. 마지막에 들어오는 사람을 보니 웬 보따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보따리를 이소선 앞에 놓는다. 얼핏 보니 백만원씩 묶은 돈다발이었다.

‘이놈들이 이 돈을 가지고 또 나를….’

돈을 가지고 또 들볶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자 골머리가 자근자근 아파 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도대체 학생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거요?”

이소선이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참으며 묻자 그를 데리고 온 사내가 자신이 학생이라고 했다.

“어디 학교 학생이요?”

“서울대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니 서울대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 왜 나를 이런 곳으로 데리고 왔소? 병원에서 할 말을 못해서 이리로 데리고 왔소? 이게 뭐하는 짓이요?”

이소선은 돈을 보니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흥분만 하지 마시고 차분하게 말씀을 나누기로 하지요. 여기 이것 보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서 왔습니다.”

눈가에 웃음까지 띠며 그 사내는 이소선 앞에 통장과 돈을 보따리를 밀어 놓았다. 눈앞에 놓인 통장을 보니 예금주 이름이 ‘李小善’으로 돼 있다. 이름도 잘못 됐다. 李小善이 아니라 ‘李小仙’이라야 맞다.

“통장에다 예금을 해 놓았습니다. 이 현금은 추가로 드리는 조의금입니다. 다른 사람이 다 합의를 보려고 해도 이 여사 때문에 일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우리들이 합의를 담당한 죄인들입니다. 우리 사정을 봐서라도 이 돈으로 합의를 끝냅시다.”

그 말을 한 사내가 주머니에서 무슨 종이를 꺼냈다. 합의서였다. 이소선은 그 종이를 들여다봤다.

전태일의 친척들 도장이 서명·날인돼 있었다. 대충 인원을 보니 열대여섯 명쯤이었다. 이름만 적혀 있고 도장이 안 찍힌 사람들은 태일이의 친동생인 태삼이와 태일이의 사촌동생 갑수, 그리고 어머니인 이소선뿐이었다.

그때였다. 맞은편에 걸려 있는 거울을 얼핏 보니, 이소선의 뒤편에서 손가락을 끌어 잡아당겨서 서명하는 시늉을 하는 모양이 보이는 것이다. 뒤에 있는 사람이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강제로라도 합의서에 지장을 찍게 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소선의 등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동자를 살짝 굴려서 보니 그들은 이소선이 거울을 통해 그 모습을 보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는 듯했다. 다행히 그들은 서 있고 이소선은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수를 써서 저것들을 이겨 낼 수 있을까.’

이소선은 가만히 앉아서 그 생각에만 몰두했다.

“저, 그렇다면 말이오. 저 통장에 것은 얼마고 현금은 얼마요? 남편도 죽고 태일이도 없으니까 나도 돈 갖고 살아야지요. 내 형편이 그러니 돈을 많이 준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합의를 볼 생각이요.”

이소선은 시간을 벌어 볼 참으로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들은 입이 벙긋해졌다. 한 사람이 이소선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돈 보따리에 있는 것은 얼마고, 통장에 있는 것은 얼마고, 또 평화시장 업주들한테 거둔다면 얼마가 되고 노총을 통해 근로자 한 사람에 얼마씩 모금하면 얼마가 된다면서 돈의 액수를 주섬주섬 떠벌린다.

그들은 그 돈을 다 합하면 종로에 있는 노동청 사무소 근처에 있는 빌딩 큰 것 하나 살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빌딩을 사서 세를 주고, 한 칸만 가지고 식당을 해서 곰탕이며 도가니탕을 팔면서 사람을 고용하면 손끝 하나 움직이지도 않고 자식 대까지 편하게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식당에 노동청 직원들이 매일 단골로 다니면 장사도 잘될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앞으로 올 돈이 더 많이 있습니다. 오늘 말고 17일까지 꼭 통장에 입금시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만 하고 안 줄지 누가 알아요? 당신이 책임지면 이 자리에서 17일까지 꼭 준다는 각서를 쓰시오.”

이소선은 시간을 더 끌고 틈을 보기 위해 할 수 있는 요구를 다 제시하기로 했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미루고 하더니 잠시 후에 점잖게 생긴 사람이 나섰다.

“제가 쓰지요.”

“당신은 누구요?”

“근로감독과장입니다.”

순식간에 합의서를 사정없이 찢어 버리다

근로감독과장과 감독 세 사람이 함께 각서를 써서 17일 11시까지 그 돈을 완불하겠다고 했다. 그들이 제시한 액수는 어림잡아도 4천만원은 될 성싶었다.

“이 돈이 현금인데 이 많은 돈을 내가 짊어지고 다닐 수도 없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이소선은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돈다발을 만지작거렸다.

“이 돈은 당장 조흥은행 본점에다 입금시킬 테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 여사는 통장만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이 돈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으니 내가 세어 봐야겠소.”

이소선은 빠져 나갈 궁리를 하면서 돈 보따리를 풀었다. 속이 떨리고 흥분이 돼서 도저히 돈을 셀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소선이 정신이 없어서 돈을 못 세는 줄 알고 지금 당장 함께 가서 조흥은행에 입금시키고 오자고 했다.

“현금은 부담스럽고 위험하니까 통장만 가지고 계시면 안심해도 됩니다. 그리고 이제 돈 문제도 원만하게 해결됐으니 합의서에 도장을 찍으시지요.”

그들은 속이 타는지 이소선을 재촉하는 것이다.

“그러면 합의서를 가져오시오. 도장을 찍겠으니. 나도 남편도 없고 큰아들도 없으니까 돈이라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지 않겠소? 내가 돈 없이 어찌 살겠소? 지금까지는 돈을 많이 타내려고 버틴 것이었소.”

이소선은 돈 보따리를 쓰다듬으며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등짝에서는 여전히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 여사는 머리가 영리해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면 액수가 올라갈 수 있었겠습니까, 속 시원히 잘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타들어 가던 속이 한꺼번에 시원하게 뚫린 사람들처럼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합의서를 꺼내 놓고 도장을 이소선 손에 쥐어 줬다.

“어디다 찍어야 되나요?”

이소선은 까막눈처럼 머뭇거렸다.

“여기다 찍으세요.”

그들은 이소선 이름을 가리켰다.

“참말로 17일까지 나머지 돈 다 입금시킬 거지요?”

이소선은 다시 한 번 도장을 들고 다짐을 받았다. 그 순간 그들은 합의서에서 손을 뗐다. 이소선이 도장을 찍기만 넋을 놓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때다!

이소선은 순식간에 그 합의서를 집어 들고 사정없이 찢어 버렸다. 그것도 안심할 수가 없어서 옆에 있는 물 컵에다 찢어진 종이를 담아 버렸다. 얇은 종이는 물에 녹아서 흐물흐물해졌다. 결국 친척들한테 받은 도장도 헛수고가 된 순간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당한 일이라 어이가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사람 살려!”

이소선은 곧장 있는 힘을 다해 문살을 걷어찼다. 문살이 부서지면서 방문이 떨어져 나갔다.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신발을 집어 들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이소선은 사람과 차들이 바삐 오가는 신작로에 나와서까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사람 살려!”를 외쳤다. 그는 자신의 뒤를 누군가 쫓아오고 있는 섬뜩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목덜미를 낚아채며 머리를 잡아당길 것만 같았다. 이런 그를 보고 사람들이 웬 구경거리가 난 줄 알고 그를 에워싸고 웅성웅성했다. 이소선은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찻길로 뛰어들었다. 한시라도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야! 이 미친년아! 뒈지려면 너만 뒈지지 왜 남까지 뒈지게 만들려고 지랄이야!”

달리는 차 사이를 막무가내로 뛰어다니는 그를 보고 운전사 아저씨들이 죽이니 살리니 난리가 났다. 차들은 급정거를 하고 경적을 마구 눌러대고 있었다.

이소선은 어딘지도 모르고 미친 듯이 헤매고 다니다 간신히 성모병원을 찾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워서 결국은 돈을 주겠다는 회유를 물리쳤다. 이소선은 결국 전태일하고 삼동회 친구들이 제시했던 요구조건을 무조건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노동청과 평화시장 업주들에게서 받아냈다.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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