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연금 수급액을 단계적으로 20% 삭감하고 퇴직수당을 일정정도 인상하는 방안이 알려진 상황이다. 당초 당·정·청은 추석연휴가 끝난 뒤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논의·발표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보류 중이다. 공무원 사회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공무원 당사자들은 정부의 일방통행이 아닌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무원연금 적자 책임을 공무원에게 돌릴 게 아니라 정부 책임 등 근본 원인을 따지고 발전적인 개혁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둘러싼 본격적인 논의의 장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인가.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 파고를 앞두고 있는 공무원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공적연금 강화가 시대의 요구, 민관협의체서 논의해야

오성택
행정부공무원노조
위원장

공무원연금을 방만하게 운영해 손해를 끼친 장본인은 정부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잘못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국민연금에 비해 많이 받는다"는 단순논리를 들이대면서 공무원연금재정 적자의 책임을 전부 공무원에게 돌리려 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은 퇴직 후 최소한의 생활 유지를 위한 금액이다. 현행대로 유지돼야 그나마 노후생활 유지와 소비층 역할을 할 수 있을 수준이 된다. 용돈 수준으로 전락한 국민연금도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 퇴직자들이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되면 경제 선순환 구조에도 일조할 수 있다. 공적연금을 지금처럼 계속 낮추려 하면 결국은 퇴직자들에 대한 새로운 지원책을 만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현재 일자리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 그런데 30년 일한 이들이 노후생활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하는 이 같은 정책은 복지국가로 가는 길과도 거리가 멀다. 당초 국민연금은 공무원연금보다 금액이 많았다. 후퇴를 거듭하다 지금은 용돈 수준이 됐다.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추려는 정부 정책은 시대를 거꾸로 가려는 시도다. 국민연금을 예전 수준으로 복원해서 공적연금만으로도 노후보장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공적연금제도의 개혁은 정부·여당 단독으로 추진할 사항이 아니라 이해당사자들과 정부기관·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민관협의체에서 머리를 맞대고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노조는 공무원연금에 대한 정부의 흠집 내기와 공적연금 강화가 이 시대에 절실한 과제임을 국민에게 알려 나갈 것이다.

정부의 일방적 개혁안에 공직사회 휘청 

김명환
우정노조 위원장

공무원연금 기여금을 납부하는 공무원 당사자를 제외하고 당정청이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려는 것부터 이치에 맞지 않다. 법을 개정하는 문제인데 사회적 공감대와 이해 당사자의 이해를 얻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모두 무시하는 것이다. 20% 삭감하고 퇴직수당을 좀 올려준다는 얘기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이고 일단 적당히 달래겠다는 심산인데 그런 방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우정사업본부 소속 공무원이 3만2천명이다. 이 중 94.7%가 6급 이하 하위직이다. 정부와 언론은 당장 평균 공무원연금액을 219만원으로 잡고 국민연금과 비교한다. 그러나 이는 고위공직자들까지 포함한 평균 수치이지 공직의 절대다수인 하위직 공무원들은 이렇게 받지도 못한다. 당장 내가 내년에 30년차인데 그만큼 못 받는다.

지난달 말까지 정년퇴직자를 포함해 488명이 퇴직했다. 평년의 3배 수준이다. 오는 10월에는 우정사업본부가 재정이 없어서 명예퇴직도 희망자 모두가 아니라 선별해서 해 주는 지경이다. 공무원연금에 희망이 없으니 더 악화되기 전에 빨리 나가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십 년간 박봉에도 공직에 헌신하며 노후라도 보장해 주겠다는 역대 정부의 말만 믿고 살아 온 사람들이 희망을 잃는다.

공직부터 바로 서야 나라가 잘 돌아가는데 기틀부터 흔들리는 셈이다. 이런 식의 일방적인 개혁은 반드시 후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쓴 연금기금부터 원상복구해야

안영근
공노총 사무총장

아직 구체적인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당장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발표되면 당사자인 공무원이 협상에 참여해 토론회나 공청회를 열어 사회적 합의안을 만들자고 요구할 것이다. 공무원연금 운영이나 제도 부분에 대해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달 27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개최하기로 한 '공무원연금 개악저지 총력결의대회'도 '공적연금 복원을 위한 총력결의대회'로 슬로건을 바꿔 개최할 예정이다.

공적연금 복원이란 정부가 가져다 쓴 기금을 원상복구 해 놓으라는 의미다. IMF 외환위기 때 10만여명의 공무원이 명예퇴직 당했다. 당시 정부가 부담했어야 할 퇴직수당 4조7천억원이 연금기금에서 지출됐다. 정부가 가져다 쓴 연금기금부터 원상복구해 놓은 다음에 공무원연금 운영이나 제도의 문제점을 고쳐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공무원연금공단은 2001년 공무원연금법 개정이 되면서 공무원연금에 적자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국고로 보전해 줬기 때문에 법 개정 이전에 정부가 가져다 쓴 돈을 갚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에 대해 빠르면 이달 내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이다. 이 소송을 통해 연금법에 대한 법리해석부터 기금을 잘못 운영한 정부의 책임을 추궁할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공적연금 민영화!

라일하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실장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진행하는 박근혜 식 공적연금 민영화라고 판단한다. 국민과 공무원을 농락하는 사기행위다. 공무원연금은 사회보장뿐 아니라 후불제 임금의 성격도 갖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그런 특성을 무시하고 개혁을 추진한다. 그에 따른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 바로 금융대기업이다. 정부는 ‘최경환 노믹스’라며 사적연금 활성화 정책을 내놓았다. 2007년부터 시행된 민간퇴직연금 가입률이 낮다 보니 강제로 퇴직연금에 가입시키려는 법 개정까지 추진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춰 공무원 노후 소득을 삭감하고 퇴직금을 별도 제도로 운용하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인데, 그렇게 되면 100만 공무원의 퇴직금이 민간퇴직연금 시장으로 가게 될 것이다. 공무원 인건비 50조원을 기준으로 퇴직충당금을 계산하면 약 5조원 정도인데, 이게 매년 사적연금시장으로 가는 것이다. 이건 정부로서도 유익한 방안이 아니다. 민간이 운용하면 그에 따른 수수료도 내야 할 것이고, 퇴직충당금을 적립하는 부담도 엄청나다. 전문가에 따르면 기존 예산보다 3조5천억원 가량의 정부예산이 더 필요하다는 말도 있다. 결국 금융대기업과 보험사만 혜택을 가져갈 뿐 정부는 손실을 보고 공무원의 노후생활은 파탄 나는 것이다. 정부는 연금 민영화가 아니라 공무원 노동자와 국민의 노후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적정한 공적연금을 만드는 데 개혁방향을 맞춰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맞서 교단을 지켜야 한다

박진보
전국교직원노조
정책교섭국장

요즘 평교사뿐만 아니라, 교장들도 명예퇴직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명예퇴직을 하는 이유는 공무원연금을 삭감한다는 소문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사가 돈 때문에 신성한 교육을 저버린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게는 매월 수십만원씩 평생 삭감된다면 하위직 공무원일수록 더 부담스럽고 아까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직을 떠나는 분들에게 남아 있기를 부탁하고 싶다. 노후 불안을 감수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명감으로 남아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공무원연금을 대표하는 특수직역연금은 공적연금이다. 공적연금에는 특수직역연금과 국민연금까지 포함하고 있다. 공적연금을 민영화해 우리 노후를 은행과 증권사에게 넘기려고 하고 있다. 공적연금 민영화의 폐해는 칠레 사례에서 벌써 나왔다. 연금을 운영하는 금융사가 도산하기 직전까지 가면서 원금 손실이 발생하고 결국 국가가 세금으로 보충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교사도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가는 교육노동자다. 노동력을 더 이상 팔 수 없는 노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국가가 우리 노후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노후의 삶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 부족하다. 교육노동자로서 아이들에게 사회적 책임과 연대를 가르쳐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다.

교육노동자가 지금 공적연금 개악을 막는 것이 바로 사회적 연대며 정의다. 이것을 가르치는 교육노동자는 공적연금 개악 투쟁의 가장 앞자리에서, 가장 분명하게 서서 후세대에게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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