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체불임금 청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2009년 이후 체불임금은 연평균 1조원으로 훌쩍 뛰어 올랐고,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올해 체불임금도 7월 말까지 7천827억원이 발생해 조만간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29.6%)·건설업(22.5%)에서 체불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규모별로 보면 5인 이상~30인 미만(44.3%), 5인 이하(23.9%)의 영세업체가 임금을 주지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통계다. 임금체불 사건으로 접수돼 노동부가 집계한 결과다. 비정규직·고령노동자들은 해고될 것을 우려해 체불신고를 하지 않아 공식 집계에서 제외된다. 이른바 '은폐된 체불'이다. 더 심각한 것은 체불을 당해도 노동부에 신고할 수 없는 경우다. 형식적으론 자영업자로 분류되지만 경제적 종속성이 강한 특수고용직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단계 하도급 체계로 이뤄진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특수고용직인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체불의 최대 희생자다. 건설기계는 굴삭기·지게차·펌프카·덤프트럭·크롤러크레인 등 27개 종으로 분류된다.

민주노총 소속 건설노조가 지난해 건설기계 조합원(1천5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굴삭기 조종사 4명 중 3명이 체불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간 이들이 받지 못한 체불금액만 대당 평균 1천480만원이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건설기계 등록대수(9만1천600대)를 기준으로 체불금액을 계산하면 무려 1조3천556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노동부가 지난 5년간 집계한 연평균 체불임금 1조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최근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공공사의 체불 실태와 관련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건설노조의 이런 추정치는 신빙성이 매우 높다.

지난달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윤덕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제출받은 국감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발생한 체불금액은 무려 418억9천32억원에 달한다. 유형별로 보면 자재·장비 체불금액이 229억4천189만원(54.8%)으로 가장 많았고, 임금 체불금액이 154억2천397만원(36.8%)이다. 전체 체불건수(1천109건) 가운데 임금체불이 747건(64.7%), 자재·장비 체불도 309건(27.9%)에 달했다. LH가 발주한 공공공사에서조차 체불금액의 절반 이상이 자재·장비에서 발생한 것이다. 공공공사의 실정이 이러한데 민간공사는 말할 것도 없다. 체불 탓에 벼랑으로 내 몰린 건설기계 노동자가 그만큼 많은 셈이다. 그렇다면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희생양이 되는 이유가 뭘까.

특수고용직인 건설기계 기사들은 형식적으로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단, 건설기계 기사들은 지난 2008년부터 하청업체와 공정거래법의 표준임대차계약을 맺는다. 표준임대차계약서에는 하루 근무시간(8시간), 임금지급 기한(60일 이내) 등이 명시돼 있다. 그런데 하청업체들은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더라도 이를 준수하지 않는다는 게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지적이다. 공정거래법상 표준임대차계약서 작성은 의무일 뿐 하청업체가 이를 지키지 않아도 벌칙조항조차 없기 때문이다. 하청업체가 체불하고 버텨도 건설기계 노동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체불 민원을 해소하고자 건설기계 대여금 지급보증제를 시행했다. 이 제도는 원·하도급자가 건설기계 노동자에게 대금지급을 위한 보증서 발급을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영업정지와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반면 건설업자는 건설기계 노동자에게 대여금의 10%에 해당하는 대여계약 이행보증서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시행 1년이 지났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다.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로 대여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하는 건설업자가 드문 탓이다.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영업정지나 과태료가 부과된 건설업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 대여계약 이행보증서는 체불의 책임을 건설기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나와 노동계도 적극 호응하지 않는 실정이다.

이처럼 공식 체불뿐만 아니라 비공식 체불마저 늘고 있으며, 건설업 특수고용직은 최대 피해자로 나타나고 있다. 그간 정부는 건설업 특수고용직의 체불을 해소하려 제도 개선을 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할 뿐이다. 체불임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체불 사업주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법 집행이 필요하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건설기계 노동자의 가정이 파괴되고, 목숨마저 끊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 공공공사 현장에서 체불이 나타나지 않도록 정부가 모범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건설현장에서 종이호랑이가 된 표준임대차계약서와 대여금 지급보증제도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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