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기자

지난 2012년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장진수(41·사진) 전 주무관이 공직에 들어온 계기는 단순했다. 어느 여름, 복사용지를 배달하러 간 사무실 직원들처럼 '에어컨 쐬며 편히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는 2005년 7급 공무원으로 입직했고 "경북 촌놈 출세했다"는 부러움 속에 국무총리실로 배정됐다. 그 후 몇 시간 만에 그는 청와대에 돈 봉투 배달을 해야 했다. 그는 따랐다. 상관의 지시였고 청와대가 관계된 만큼 별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민간인 사찰 자료 또한 그렇게 지시받고 배운 대로 파기했다. 그랬던 그가 공익제보에 나선 이유도 단순했다. “그것은 정말 양심에 위배됐기 때문입니다.”

장씨는 지난해 11월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징역 8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공직에서도 물러났다. 그랬던 그가 지난달 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 이충재) 부설 정책연구원에서 새로운 걸음을 내딛게 됐다. 이제 장 연구원은 "공익제보 당사자로서 그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 싶다"고 한다.

"힘들어 하는 공익제보자 위한 연구활동할 것"

- 연구원으로서 어떤 일을 하게 되나.


“공익제보 지원, 공직 부패방지 연구와 함께 크게는 공무원 부패 척결방안에 대한 총체적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공익제보자를 불이익이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괜찮은 평가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방안을 제시하고 싶다. 직장 보장이나 생계기금 마련, 구속이나 폭력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신변보호 장치 같은 것이다.”

장 연구원이 공직에서 물러난 뒤 그를 받아주겠다는 일자리는 없었다. 공직사회 내 인간관계도 단절되다시피 했다. 장씨는 대부분의 공익제보자들이 경제적·사회적 고통과 신변의 두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힘든 것은 무력감이었다. 그는 직장을 잃었지만 그에게 사찰을 지시한 ‘몸통’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수사는 종결됐다.

- 공익제보 이후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일단 경제적 타격과 인간관계의 단절이다. 대신 제게 관심을 가져 주는 다른 분들을 만났으니 어느 정도 상쇄된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공익제보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공통된 문제는 우리가 제보한 내용이 제대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징계는 순식간인데,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은 그대로 잘 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국가정보원 직원들 보면 불법 대선개입이 명백한데도 지시에 따른 거라고 처벌을 받지 않는다. 난 명령대로 했다고 처벌받았는데…. 이럴 때 억울하다. 집에 혼자 오래 있으면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출근하면서 많이 좋아졌고 회복하려 노력 중이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시면 더 힘이 될 것 같다.”

“갈수록 경직되는 공직사회, 소신을 잃지 않길”

장 연구원이 지난 6월 펴낸 책 <블루게이트>에서 그는 “나는 그동안 윗사람이 시킨 일이라면 최소한 하는 시늉만큼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알아 왔기에 일단 뭐라도 해야 된다고만 생각했다”고 적었다. 장 연구원은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공직사회가 교육하는 기본 마인드였고 불문율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 현직 공무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워낙 위에서 내리누르니 지금 공무원들이 움츠리고 있는 것을 마냥 비난할 일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소신껏 약자를 위한 행정을 펼쳐 주길 부탁한다. 더불어 제 2의 장진수가 나와서는 안 된다. 지금 이미 그런 길을 걷고 있다면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방향을 고민할 필요도 있다. 또한 다시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자신이 너무 기계처럼 살고 있지 않은지.”

- 다른 공무원들에게도 공익제보를 권할 것인가.

“솔직히 말하면 선뜻 권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제보는 우리 사회를 바꾸는 단서가 되는 굉장히 중요한 행위다. 그러니 꼭 좀 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공익제보자가 힘들어하지 않도록 우리가 연구도 하고 논의의 장도 마련할 테니 꼭 해 달라.”

글·사진=윤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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