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취재 제한, 부족한 대화 '아쉬움'도


■"뭐, 인터뷰가 안된다고?"

사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기자들이 비록 '조합원' 신분으로 이번 금강산에서 열리는 5.1절 통일행사에 참가했으나 그래도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 취재가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가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30일 밤 이번 통일대회 행사 내용과 일정을 결정해 온 양대노총과 북한 직총간 실무위원회에선 직총의 고위 간부는 물론,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개별적인 인터뷰를 일절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실제 1일 북한의 금강산 관광지사(옛 김정숙 휴양소) 앞 운동장에서 오전 9시께부터 시작된 행사의 전 기간 동안 기자들은 취재에 많은 고충을 겪어야 했다. 한 기자는 북한쪽 대표 단장인 리진수 직총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상대로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그가 교사 출신이라는 사실과 "통일된 나라에서 다시 만나자"는 얘기밖에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기자들은 대회에 참가한 북한 노동자들에게 말을 걸거나 취재를 시도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이렇게 만나니 정말 좋습니다" 또는 "반갑습니다"라는 인사거나 얼굴에 머금은 미소가 전부였다.

기자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겨우 이날 행사의 반주자로 참가했던 20대로 보이는 직총 예술소조원 리아무개씨 등 2명과 외마디 인터뷰에 그쳤을 뿐이었다. 그들은 "빨리 통일이 돼 이렇게 기분 좋은 만남이 자주 이뤄져야 한다"거나 "6.15공동 선언을 이행해 통일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며 한결 같이 통일을 강조했다.

■취재 제한의 배경

결국 취재는 대회의 공식적인 프로그램 내용과 행사장 주변모습을 스케치하는 정도가 아니면 거의 전적으로 직총 실무자나 기자동맹 관계자들과의 '공식적인' 대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도 기자가 시시콜콜한 질문으로 너무 귀찮게 해서 그런지 나중엔 "김선생은 본 행사엔 관심도 없는가"라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직총과 북녘 노동자들의 이런 취재에 대한 거부 반응은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 진전에 딴죽을 걸고 온 남녘의 보수언론에 대한 불만은 물론, 최근 고위급 회담이 중단돼 남북 관계가 냉각기에 들어가기까지 남쪽 언론의 '역할'에 대한 불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식 창구였던 기자동맹의 한 관계자는 남북관계에 대한 남쪽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서 "남쪽 언론이 현재 좋지 않은 남북관계의 원인(그는 결론적으로 최근 진행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문제삼았다)을 진단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논평하기도 했다. 그의 표현으로 "같은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열기로 6.15선언에 합의해 놓고 어떻게 외세와 군사훈련을 할 수 있냐"는 불만이 남쪽 언론에게까지 번진 것이다.

또한 당초부터 취재를 목적으로 한 방북을 허가한 게 아닌 마당에 남북관계에 있어선 공식적인 결정과 그 절차를 중요시하는 북녘 사회의 특성상 통일대회와 관련되지 않은 것에 대한 기자들의 취재는 '돌출행동'으로 비쳐질 수도 있었다.

더불어 계획보다 8시간이나 늦게 도착해 30일 예정된 사전행사 격인 환영식이 취소되고 2일엔 현대쪽이 주관하는 금강산 관광이 일정으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오직 5월1일 하루동안, 거기에다 개별적인 인터뷰가 허용되지 않은 조건에서 '한 건'을 기대한다는 것은 기자로서의 지나친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못 잊을 통일대회의 감동

그렇다고 이같은 취재 제한조치가 이번 통일대회의 의의나 양대노총 참가자들이 느꼈을 감동을 반감시켰던 것은 아니다. 분단 이후 최초라는 점은 물론이고 그동안 단 한차례도 공동의 노동절 행사를 갖지 않았던 남쪽의 양대노총이 직총과의 교류를 계기 삼아 이렇게 공동노동절을 치르게 됐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컸다.

또한 남북한 교류 차원에서도 단일 행사로는 최대 인원으로 기록될 1,000여명(양대노총 참가자 총원은 530명으로 집계됐다)이 참가한 대규모 행사였다는 점에서도 평가할 만하다. 더욱이 이번 행사는 고위급 회담이 중단되는 등 남북 정부간에 냉기류가 형성된 상황에서 마련됐다. 그래서 직총의 '공식 창구'들은 물론, 양대노총의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이번 행사가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를 표시했는지도 모른다.

더불어 대부분 북녘 동포를 오직 TV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남쪽 참가자들이 직접 북녘의 노동자들과 어깨를 걸고 함께 통일을 목청 높이 외친 만큼 그들의 감동도 남달랐을 것이다. 기념식 이외엔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시종 흥에 넘치는 분위기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친근감을 더하는 모습과 대회가 끝나고 환송을 위해 도열(堵列)한 북녘 노동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아쉬움을 달래거나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콧등을 시큰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기까지엔 직총의 세심한 대회 준비가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초청 공연으로 화제를 불렀지만 북녘에선 사실 대도시에서나 직접 볼 수 있다는 교예 공연과 상당한 실력을 갖춘 노동자예술단의 노래공연 등은 참가자들의 눈과 귀를 훔쳤다. 유년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공 안고 이어달리기'나 '윤(훌라후프)안에 공 몰고 달리기' 등 오락 경기로 친근감을 조성하고, 남녘 참가들에게 평양에서 만들어 새벽녘에 실어 나른 것으로 알려진 도시락으로 점심을 제공하기도 했다. 또 각종 경기 종목에서 양대노총과 직총 참가자들을 '자주'와 '단합'이란 이름의 혼합조로 편성, 경쟁보다는 서로 부대끼면서 친선의 분위기를 돋우도록 한 점도 그렇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지만 특히 진행자가 폐회를 선언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대회장 출구쪽으로 도열해 악수를 나누며 눈물로 환송하는 모습은 이윽고 남녘 노동자들의 눈물샘도 자극했다.

■그래도 아쉬운 '옥에 티'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기자들의 취재는 둘째로 쳐도 직총이 마련한 대회 프로그램이 주로 공연이나 체육행사로 채워져 실제 남북의 참가자들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만한 조건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남쪽 참가자들이 점심식사를 "같이 먹자"고 연호한 이유도 이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남녘 노동자들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사진 촬영에 대한 욕심이다. 난생 처음 북녘 동포를 만난 기억을 남기려고 한 것이란 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일부 참가자들의 경쟁적인 사진 촬영은 대열을 흐트러뜨려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 스스로 "같이 먹자"고 연호까지 했던 점심을 먹으러 대회장을 물밀 듯 빠져나간 뒤 북녘 노동자들만 남아 다음 행사인 축구를 위해 운동장에 흩어져 있던 간이의자들을 축대 위로 옮겨 정리하는 모습은 남녘 참가자들 스스로가 대회 주최자가 아닌 '손님'으로 착각한 태도가 아니었나를 되묻게 했다. 관광이 아닌, 민간통일운동의 새 장을 열기 위해 마련된 대회의 주인은 바로 남북의 참가자 모두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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