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그날. 아침부터 옅은 잿빛 구름이 우중충하게 하늘을 덮고 있었다. 초겨울의 스산한 바람은 가난한 사람들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서울 북쪽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도봉산, 그 밑 잡초 무성한 산자락에 오래된 공동묘지를 둘러싸고 무허가 판잣집들이 웅크리고 앉아 마을을 이루고 있다. 고도 경제성장에 떠밀리고, 도시환경 정비에 쫓겨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서 무허가촌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시 도봉구 쌍문2동 208번지.

이소선은 아침나절부터 자신의 구역인 쌍문동 일대에 심방을 다니고 있었다. 그는 두터운 신앙심을 인정받아 창현교회의 집사 일을 맡아 봤기 때문에 매주 금요일마다 심방을 다녔다. 심방을 다닌 지 한나절이 훨씬 지났을까.

“순덕 엄마, 빨리 라디오를 들어봐요”

"순덕이 엄마 어딨어?"

동네 사람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이소선을 찾는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이소선은 동네 사람들이 다급해하며 서두르는 바람에 놀라서 되물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순덕이 엄마 빨리 집에 가서 라디오를 한번 들어봐요!"

동네 아주머니가 손목을 붙들고 재촉하더니 가지고 온 라디오를 급하게 이소선 앞에 내밀었다. 이소선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서울 도봉구 쌍문2동 208번지 사는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씨가 평화시장의 열악한 근로조건에 혹사당하는 근로자들을 위해서 근로기준법 책을 불사르면서 평화시장 구름다리 아래에서 오늘 낮 1시20분경에 분신, 중태에 빠져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순간, 이소선의 뇌리에 큰아들 전태일이 집을 나가던 어제께 아침에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갔다.

1970년 11월12일 아침이었다. 전태일은 여느 때와 달리 이상한 행동을 했다. 평소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소탈하게 다니던 태일이가 그날 아침 따라 유난히 차림새에 신경을 쓰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 전에 머리도 단정하게 깎았다.

새벽부터 일어나더니 정성스레 세수하고 방을 깨끗하게 정돈했다. 그리고 다시 거울 앞에서 머리를 몇 번이나 빗고, 까만 작업복에 콧대까지 세워서 깔끔하게 다려 입었다. 게다가 평소 아껴 뒀던 검정 바바리까지 걸쳐 입는 것이었다. 전태일이 좀처럼 신지 않던 구두까지 꺼내 신는 것을 보고 이소선은 참았던 궁금증을 털어놓고 말았다.

"오늘은 왜 이렇게, 어디 좋은 데를 가려고 구두도 닦고 바바리도 다렸느냐?"

"네, 어머니 여기 앉아 보세요."

태일이 차분하게 음성을 가다듬으며 자리를 권했다.

"왜 그러냐?"

"밥 같이 먹으려고 그래요."

"어디를 가려고 그러냐?"

이소선은 밥을 함께 먹으며 '웬 수선이냐'는 듯 캐물었다.

"이따 밥 먹으면서 얘기할게요."

태일은 구두를 다시 닦더니 부엌에 가서도 공연히 챙겨 놓은 부엌살림을 새삼스럽게 들여다보고, 방에 들어와서도 방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소선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밥상을 차려 줬다. 태일은 밥을 먹으면서도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엄마를 한 번 쳐다보더니 또 수저를 놀리면서 치켜드는 것이었다. 이소선은 아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도 궁금증을 애써 참았다. 밥을 먹고 나면 얘기하겠지 하며 묵묵히 밥을 떠 넣었다.

"어머니, 내 말 한번 들어 보세요."

물로 입가심한 뒤 태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말해 봐라."

이소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했다.

"어머니, 시장 일이 아무래도 크게 한판 벌여야 하게 생겼어요."

태일이 뭔가 결심을 한 듯 무겁게 말했다.

"왜? 니가 안 하면 안 되나? 제발 서른살 될 때까지라도 좀 참아라. 이 어미가 불쌍하지도 않나?"

"허 참, 어쨌든 안 할 수는 없게 됐으니 요번 13일 오후 1시에 국민은행 앞으로 나와서 꼭 구경하세요. 어쩌면 아들 얼굴 오랫동안 못 보게 될지도 모르니…."

태일은 말끝을 흐린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잡혀가기라도 한단 말이냐? 아니면 니가 죽기라도 한단 말이냐?"

"그런 게 아니라, 한판 왕창 벌이고 나서 불리해지면 어디 일본 같은 데로 밀항이라도 해야 될지 모르잖아요. 그리고 나면 평화시장 근로조건 개선운동은 어머니가 내 대신 좀 해 주세요."

“어머니, 크게 한판 벌여야 할 것 같아요”

이소선은 아들의 뜬금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듣자 듣자 하니 별소리를 다 듣겠다. 금요일에는 내가 심방도 가야 하고 장사도 해야 하는데 거기 가서 볼 여력이 어딨느냐?"

"그래도 꼭 오셔서 보시면 좋을 텐데…."

태일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또 말끝을 흐린다.

"암만 몇 번씩 그래도 나는 갈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그때 가 봐야 알지 지금은 모르겠다."

"그러면 알았어요."

전태일이 힘없이 대답했다. 전태일은 밥상도 물리지 않은 채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냇동생 순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덕이는 그래도 행복해. 학교도 가잖아. 평화시장에는 순덕이만한 아이들이 와서 시다를 하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데…. 우리는 이 생활이 참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오빠 말이 맞지?"

순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만 까딱거렸다. 전태일이 밥상을 뒤로하고 무엇을 찾는지 두리번거리며 방안을 뒤졌다. 이소선은 밥상을 치우면서 아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근로기준법 책을 찾는 것이었다. 전태일은 한참이나 혼자 방을 뒤지더니 찾지 못하자 이소선을 붙들고 물었다.

"어머니, 그 책 어디다 감췄어요. 어서 꺼내 주세요."

전태일은 떼를 쓰듯 책을 찾아야 한다고 어머니를 졸라댔다. 언제부터인가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책을 연구하고, 또 그 책을 늘 끼고 다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요즘 들어 부쩍 아들의 거동이 어딘지 모르게 수상한 구석이 있어서 마음 한 자락이 늘 불안했다.

바로 얼마 전이었다. 혼자서 방 청소를 하고 있는데 그 근로기준법이라고 적힌 책이 눈에 확 띄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불길한 예감'이 드는 책이었다. 그날따라 꼭 저놈의 책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불쑥 들었다. 이소선은 앞뒤 가릴 것 없이 책을 집어서 부엌에 걸려 있는 빈 솥 안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이소선은 딱 잡아떼기로 작정했다. 아들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이소선은 전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젓다가, 또 그 책 때문에 아무래도 사고가 날 것 같아서 내다 버렸다고 우겼다.

"태일아! 이 어미 부탁이다. 제발 그놈의 책 이제 그만 가지고 다닐 수 없냐?"

어머니는 아들을 붙들고 애원하면서 말려 봤다.

"다른 것은 다 어머니 말씀대로 할 수 있어도 이 일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어서 책을 주세요!"

태일은 단호하게 내뱉더니 평소 모습과는 달리 버럭 화까지 냈다. 이소선은 한참 동안 아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체념하고 책을 꺼내 줬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들은 책을 받아들고 고개를 숙였다. 책을 두어 번 쓰다듬다가 무엇인가 말하려고 잠시 입술을 떼는 듯하더니 침울한 표정이 됐다. 입을 굳게 다물고 한참 동안이나 묵묵히 앉아 있었다. 전태일은 집을 나서면서 둘째 동생 순옥이한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옥아, 너랑 나랑은 우리가 사는 이 집도 함께 고생하면서 지었고 재미있는 얘기도 많이 했었지?"

"응, 오빠."

전태일은 동생의 손목을 꼭 잡았다.

"순옥아, 우리는 정말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돼야 한다. 아무리 살기가 어렵더라도 어머니한테 돈 때문에 졸라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빠는 동생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리고 잠시 동생의 손목을 잡더니 온 집안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집을 나가는 것이었다.

전태일은 그날 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친구를 통해서라도 못 들어온다고 기별을 했을 텐데 그날 밤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놈의 책'이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온몸이 떨려왔다. 어떻게 진정을 해 보려고 하는데 동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아득하다. 동네 사람 틈바구니에서 이소선은 얼이 빠져 있었다.
 

“그놈의 책이 일을 저질렀다”

그때, 동네 사람을 헤집고 전태일의 친구인 김영문이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이소선이 그 와중에서도 달려오는 영문이를 바라보니 그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에 이소선은 모든 것을 각오했다.

오늘 아침 기도를 하면서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괴이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늘에서 홑이불이 내려오더니 태일이를 네 귀퉁이로 싸 담아 가지고 허공으로 확 날아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소선은 '태일이는 절대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고 마음속에서 이미 단정을 내렸다. 마침, 김영문이 택시를 타고 왔다. 그는 타고 온 택시를 보내지 않고, 숨넘어가는 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빨리 택시 타고 갑시다."

이소선은 정신이 나가서 서두르는 영문이의 팔목을 붙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대로 내처 달려가면 이성을 잃어버릴 것 같다.' 택시를 보내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안정을 되찾은 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차근차근 생각하기로 했다.

"영문아, 택시 그냥 보내거라."

"무슨 말씀이세요. 택시를 타야지 이런 때 버스를 타고 가면 어떻게 해요!"

김영문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허둥댔다. 이소선은 김영문이 차분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이소선은 김영문과 마을 언덕을 걸어 내려와서 버스를 탔다. 정신을 차리려고 일부러 버스를 탔지만, 어떻게 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어느새 창밖에는 눈에 익은 서울 거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야 이소선은 영문이한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을 수 있었다. 이소선의 손을 꼭 붙들고 빤히 쳐다보고 있던 김영문이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얘기를 들으면서 이소선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