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유가족들은 연일 거리로 나서고 죽음을 넘나드는 단식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개조를 약속했던 청와대와 여당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애써 외면한다. 야당 역시 세월호 특별법 앞에 무능력하다. 304명의 희생자·실종자가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이대로 묻을 것인가. <매일노동뉴스>는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바라는 각계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편집자>

 

▲ 구태우 기자


대한민국이 반으로 갈렸다. 한쪽에서는 슬픔이 깊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가족에 대한 비방이 난무하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41일을 넘은, 2014년 9월 3일 바로 오늘의 풍경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16일 당시 사회 전체가 비통에 빠진 것과 비교하면 놀랄 만한 변화다.

유가족은 이보다 더 비극적일 수 없는 서사를 쓰고 있다. 참사의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했던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 원내대표 간 졸속합의로 두 차례나 좌초됐다. 세월호 특별법과 진상규명이 표류하면서 유가족의 슬픔이 깊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이날로 13일째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가족대책위 일부 유가족은 54일째 국회에서 농성 중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참사의 진실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래군(53·사진)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지난 7월부터 거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국민대책회의가 시민·사회단체 간 연대, 범국민서명운동, 범국민대회 조직 등을 맡고 있는 터라 박 위원장 역시 눈코 뜰 새 없다. 그가 맡은 역할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론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일이다. 사람들은 그를 ‘래군형’, ‘고생의 달인’으로 부른다. <매일노동뉴스>가 3일 오전 광화문광장 농성장에서 박 위원장을 만나 세월호 참사와 특별법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재난사고에 시민단체가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

- 인권운동을 20년 넘게 했다.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보나

“재난사고를 두고 시민단체가 대책위원회를 만든 적이 없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지역대책위원회가 있었지만, 전국적인 대책위가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난사고는 국가의 영역이기 때문에 대책위까지 꾸릴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 참사는 달랐다. 골든타임도 놓쳤고, 탑승자 구조 노력도 안 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고, 의혹도 많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책위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딸아이를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딸이 대학생이다. (아빠의 심정으로) 감정이입이 됐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만 하는 동안 (세월호 참사 뒤) 보름이 지났다. (시민사회가) 나서면 세월호 참사가 정치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비칠까 봐 조심스러웠다. 시민단체 간 6차례 논의가 있었다. 원탁회의가 만들어졌고, 국민대책회의로 전환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 국민대책회의 구성은 진보성향의 시민단체가 주를 이룬다.

“세월호 참사는 보수성향의 단체도 진정성을 갖고, 함께 아파하며 풀어야 할 문제다. 함께할 수만 있다면 보수단체와도 같이 할 수 있다. 이번 참사에는 진보도 보수도 여당도 야당도 없다. 하지만 여당과 보수단체는 유가족을 매도하고, 막말을 일삼고 있지 않나. 이들이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만들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을 매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

- 보수언론은 진보단체가 주도해 세월호 특별법을 어렵게 만든다고 얘기한다.

“국민대책회의 기조는 유가족과 보조를 맞춰 가는 것이다. 한 발 앞서기도 하고 뒤따라가기도 한다. 유가족이 참여하고 있는 가족대책위는 250여명이 모여 총회를 연다. 총회의 인준을 못 받으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구조다. 국민대책회의는 총회에도 못 들어가고 개입할 수도 없다. 배후조종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유가족 고집이 특별법 제정 어렵게 만드는 것 아냐

- 세월호 특별법이 추석 전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높다.


“전망이 어두운 것이 사실이다.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 참사의 정치적 위기국면을 넘겼다고 생각하고 있다. 초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제 역할만 했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박영선 원내대표가 유가족의 대표자인 것처럼 여당 원내대표와 합의해 특별법을 어렵게 만들었다.”

- 자식을 잃은 상처에 농성까지 길어져 유가족의 건강도 걱정된다.

“죽은 자식을 위해 이렇게까지 싸웠다는 것이 오히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혼자 고립돼 있을 때 우울감에 빠져 자살하기도 했다. 유가족이 혼자 고립돼 있다면 오히려 위험하다. 서로 의지하면서 싸우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

- 유가족이 물러서지 않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어려워졌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대책회의는 참사의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 제정될 특별법의 마지노선을 생각했다. 참사 당사자인 유가족이 원하는 방향의 특별법이 제정돼야 하는 것은 맞다. 특별법에 따라 제정될 진상규명위원회의 ‘칼끝’을 예리하게 만들자는 유가족과 무디게 만들려는 세력과의 싸움이다.”

그러면서도 박 위원장은 유가족이 유연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제는 여당과 정부의 대화를 통한 유연한 태도가 요구된다고 주문했다.

“유가족도 현재 (국회 내) 힘의 역학관계를 알고 있다. 현실적인 조건을 생각하고, 원칙만 강조하지 않는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특별법에 포함시키기 어렵다면 진상규명을 위한 안을 가져오라고 제안했다. 사실상 유가족이 양보하는 모양새가 됐다. 새누리당은 (여야와 가족대책위의) 삼자협의체도 거부했다. 유가족과의 면담에서 안 된다고 설득시키려고만 했다.”

“진상규명 위한 장기전 준비하고 있어 … 국민 관심 필요해”

-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 행방과 국가정보원 개입설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에서 7시간 동안 사라졌다. (사고 수습의) 총책임자인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밝히고, 대통령의 책임은 무엇인지 되짚어야 한다.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국정원이었다는 의혹이 있다.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구조체계를 흔들었을 수도 있다. 국정원이 구조시스템과 국가시스템을 마비시켰다면 두고 볼 수 있는 일인가. 국정원과 관련된 의혹을 푸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참사의 진상규명이 어려운 것이다.”

- 장기화가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가.

“올해 끝날 싸움이 아니다. 향후 몇 년은 걸릴 것이다. 국회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통해 드러난 것도 빙산의 일각이다. 특별법을 통한 진상규명도 오래 걸릴 것이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도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할 문제다. 오래갈 수밖에 없다. 국민대책회의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투쟁을 장기전으로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유가족도 장기전으로 갈 준비를 해야 한다.”

- 세월호 정국에 대한 국민 피로도가 높다는 여론이 있다.

“먹고살기 빠듯한 국민을 욕할 수 없다. 장기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민여론이 뒷받침돼야 한다. 국민대책회의와 가족대책위원회의 과제는 장기전을 치르기 위해 조직력을 정비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끝장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조직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여론의 무관심으로 유야무야될 수 있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여론을 만들어 가야 한다.”

- 국민에게 한마디 한다면.

“전례 없는 참사다. 유가족은 실종자 가족에게 아무 말을 못한다. 실종자 가족은 자식의 시신을 인양해 유가족이 되는 것이 소원이다. 또 생존자 가족은 유가족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한다. 우리 사회가 유가족의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 보수단체가 유가족의 상처를 헤집고 소금을 뿌리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잔인하고 야만적인 사회인지 보여준 게 세월호 참사다.”

글=구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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