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 14층 세미나실. 금융노조 전국은행연합회지부(위원장 정용실) 조합원들이 한 장소에 모였다.

지부는 이날 상급단체인 금융노조가 3일로 예고한 총파업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전체 조합원 75명 모두가 찬성했다.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 지부 역사 42년간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을 때마다 조합원들의 의견을 물었지만 구성원 100%가 표를 던져 100%가 찬성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엇이 조합원들을 파업 열기로 들끓게 했을까.

정용실(46·사진) 위원장은 현 상황을 “30년 무사고 운전자의 핸들을 빼앗아 초보운전자에게 맡기려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올해 초부터 국회와 정부가 종합신용정보집중기구 설립 움직임을 보이면서 은행연합회 내부에서는 조직분할에 대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2일 오전 서울 명동 지부 사무실에서 정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파업결의를 다지기 위해 지난달 25일 삭발했다.

- 기구 설립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게 언제인가.

“올해 2월 국회 정무위원회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시작됐다. 1월 주요 카드사에서 1억4천만건에 달하는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터진 직후다. 결국 신용정보를 정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까지 제출됐다.”

- 개정안에 어떤 내용이 담겼나.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인 은행연합회를 포함해 그동안 민간에 맡겼던 금융사의 신용정보를 공공기관을 설립해 관리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는 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여신금융협회·금융투자협회의 신용정보도 포함된다. 개정안 내용 자체가 모순적이다. 개정안 제25조(신용정보집중기관) 제3항1호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돼 있는데, 이를 ‘상법에 따른 주식회사’나 ‘비영리법인’으로 개정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다음 호를 보면 '신용정보를 집중관리·활용하는 데 공공성과 중립성을 갖출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다행히 5월 금융노조 출신인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강력하게 반발해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하지만 여야 핵심의원들과 금융위원회까지 나서 추진하고 있는 사안이다.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 공공기관이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금융사의 신용정보 유출은 조직형태가 공공기관인지 여부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내부 직원의 관리 부실에 따른 문제를 조직개편까지 몰고 가는 것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다. 95년 은행연합회가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단 한 건의 정보유출 사고가 없었다. 정부 감사에서도 문제가 없었고 2012년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정부는 현 체계가 지속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전체 구성원들이 일치단결해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신용정보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런 조직을 해체했다가 공공기관으로 재편하는 것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는 것이다. 다양한 부문의 금융 신용정보가 한곳에 집중돼 해킹될 경우 위험도 커진다.”

- 기구 설립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나.

“이번 사안과 관련해 한 법무법인에 법률검토를 의뢰했다. 기구 설립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받았다. 공운법 제4조2항1호를 보면 ‘영업질서 유지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은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세금 낭비에 대한 우려도 크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향후 개인정보를 유출당한 피해자는 300만원 이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공공기관이 되는 순간 정부의 책임이 커진다. 예컨대 기구 설립 이후 올해 초와 같은 카드사 사고가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피해자들이 건당 100만원의 손해배상만 청구해도, 수십조원의 세금이 날아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 앞으로 계획은.

“3일 금융노조 파업에 조합원 전원이 참여한다. 기구 설립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합원들이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현실화하면 조직이 반토막 날 것이다. 이들의 노동환경을 누가 보장해 주나. 기구 설립근거가 타당성이 없는 만큼 저지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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