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지난 21일 서울고등법원은 삼성전자 백혈병 사건 항소심에서 1심 판결과 동일하게 원고 황상기(고 황유미)·이선원(고 이숙영)에 대해 업무상재해라고 선고했다. 나머지 3인에 대해서는 기각했다(서울고등법원 2011누23995). 항소가 제기된 지 3년1개월 만이다.

당초 1심 선고 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공단은 사실상 삼성전자의 요청을 통해 항소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져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이제 공단은 상고 제기를 통해 최종 대법원의 판단을 제기할 수 있으나 이는 법률적 측면과 공단 규정상 타당하지 못하다.

상고심은 법률심이다. 이 사건 대상판결과 1심 판결의 결과는 동일하나 그 내용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다. 1심 판결이 입증책임을 완화한 판결이었다면 대상판결은 주류적 입장에서 엄격히 판결한 것이다. 1심 판결은 “고 황유미에게 발생한 급성 백혈병의 발병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고 황유미가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근무하는 동안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는 추론을 바탕으로 판단했다. 반면 대상판결은 “업무수행 중 벤젠 등의 유해물질과 전리방사선에 노출된 것”으로 판단했다.

1심 판결이 ‘환경수첩에 기재된 물질, (더미 웨이퍼의 표면에 증착된 불순물을 제거하는) 디캡(decap) 작업시 유해물질노출 등’ 원고측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반면 대상판결은 이를 모두 배척했다. 대신 수회에 걸친 변론을 통해 “세척작업 중 벤젠 노출, 전리방사선 노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12년 보고서에 따른 감광공정으로 인한 벤젠 등”의 구체적 사실과 증거를 채택했다. 그 결과 각 공정으로 인한 유해물질을 특정할 수 있었으며 이에 기초해 판결한 것이다.

상고는 기본적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드는 때”만이 제기할 수 있다(민사소송법 제23조). 이에 대해 대법원은 “증거의 취사와 사실의 인정은 사실심의 전권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적법한 상고이유로 삼을 수 없다”(2001. 8. 24 선고 2001다33048)고 했다.

대상판결은 1심보다 엄격한 변론 과정을 통해 채택된 사실인정과 증거에 있어 중대한 오인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기존 백혈병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보다 엄격히 판단했다. 대법원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9개월 동안 간접노출로 인해 유해물질에 노출됨으로써 발생한 백혈병"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했다(2014. 5. 29 선고 2014두1895). 또한 대법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인정기준에 미달하더라도 백혈병의 업무상재해 인정이 가능하다고 판시했다(2014. 6. 12 선고 2012두24213).

이 사건 업무상재해로 인정된 고 황유미·고 이숙영의 경우 대법원의 기존 판례 법리에 따를 경우 적법하다.

결국 대상판결은 산재로 인정된 2명에 대한 판단에서 대법원의 상당인과관계론의 법리에 기반을 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오히려 기존 ‘완화된 경향’의 대법원의 입장(2008두3821, 2006두15233 등)과 최근 선고된 두 사건의 경우보다 ‘엄격한 사실과 논리’에 기초해 판단했다. 이런 이유로 나머지 3명에 대해 일부 유해물질에 노출된 사실 및 가능성을 인정하고도 업무상질병을 부정한 것이다.

공단은 ‘행정소송 상고제기 사전지휘 업무지시(기획부-4019, 2012. 4. 30)’ 지침을 통해 무분별한 상고제기를 억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소송사무처리규정 개정(2013. 8)을 통해 1심과 2심 패소사건에 대해 상고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공단 이사장의 사전지휘’를 받도록 했다.

대상판결은 법리 오인이 없는 데다, 구체적 유해물질과 그 노출에 대해 명확히 판단한 것이다. 공단이 항소 제기시 변명의 근거로 제시한 검찰지휘서에서 지적한 문제는 대상판결로 해결됐다. 항소 제기 당시 공단 이사장은 항소장을 제출해 놓고도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혀 비판을 받았다. 공단 이사장의 상식적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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