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구
공인노무사
(경향신문 기자)

어느 시인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했다. 시인의 느낌처럼 우리 삶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작은 인연들이 모여서 만든 필연의 굴레들에 붙들려 사는 것인지 모른다. 운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내 의지대로만 산다는 게 쉽지 않음을 절감한다.

2011년 경향신문 노조위원장을 하면서 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편집국에 복귀해 노동담당기자로 살아온 지 1년이 지났다. 노조위원장이 되기 전까지 기자로 20년 남짓 살면서 내가 노동을 전문으로 취재하는 기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고백하건대 노동기자로서 지금의 나는 내가 기획한 삶이라기보다 사소한 개인적 인연들이 억압적 노동현실과 만나 새로운 필연이 된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노동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친구들로부터 “왜 하필 그 나이에 노동을 취재하느라 고생하느냐”는 소리를 들을 때면 혀가 꼬이는 느낌이 든다. 노동자를 도구적 존재로 생각하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그 친구들을 무슨 말로 납득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위해 죽음을 건 고공농성을 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6년이 넘게 학습지 노동자와 함께 꽃다운 청춘을 길거리에서 보낸 유명자 전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장, 정리해고 후 20명이 넘는 동지들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 모두 처음부터 투사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들이 10대 때 꿈꾸던 자신의 미래가 지금처럼 잔혹한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길들여지거나 저항하거나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고 여기서 벗어날 길은 없다. 그래서 실존은 본질에 앞서는 것이다.

며칠 전 10년째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벌이며 경기도 과천의 코오롱 본사 앞에서 천막 노숙투쟁을 하던 한 중년의 해고노동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마지막까지 “조합원들을 솎아 내기 위한 부당한 정리해고”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했고 30대 후반의 청춘은 이제 쉰을 바라보는 중년이 됐다. 그사이 78명의 조합원은 12명으로 줄어들었다. 그에게 왜 천막을 떠나지 못하느냐고 묻자 “솔직히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보다는 누군가는 남아서 투쟁을 이어 가야 할 것 같아서”라는 답변이 너털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천막 옆에 주차된 낡은 봉고차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노란 리본, 밀양송전탑 반대시위 등 억압에 맞서 싸우는 영혼들의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모두와 함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잔혹한 세상 속에 해고자로 내던져진 것은 그들이 원한 것도 그들의 책임도 아니지만 그들은 냉혹한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았다.

시인은 자신을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도대체 그들을 투사로 키운 바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하이데거라면 이를 ‘양심의 목소리’라 할 테고 아리스토텔레스라면 두려움과 태연함 사이의 중용인 ‘용기’라고 할 것이다.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던 저항하는 존재는 그 자체로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희망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최근 <헌법에만 있는 노동 3권>시리즈를 위해 밤샘 작업을 하고 회사 근처 사우나로 들어가는데 60대 경비노동자가 ‘최저생활임금 쟁취’라고 쓰인 노조조끼를 입고 근무하고 있었다. 처음 노조운동을 경험하는 듯 겸연쩍은 눈웃음을 보내는 그분을 향해 나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파시즘의 먹구름이 유럽전역을 덮던 때 스스로를 ‘좌파 아웃사이더’로 불렀던 독일의 사회문화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밤길을 걸을 때 위로가 되는 것은 내 다리와 날개가 아니라 친구의 발자국 소리”라고 했다. 벤야민이 그랬듯이 나는 오늘도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영혼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를 역사에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증거여야 한다. 무릇 인간은 저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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