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정리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이 시작된 지 올해로 10년째다. 해고노동자들은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도 경기도 과천 본사 인근에서 천막농성과 코오롱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코오롱 정리해고 복직투쟁 10년을 맞아 관련 기고를 두 차례 연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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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열
사무금융노조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장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가 거대 재벌 코오롱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코오롱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거대 재벌이고, 코오롱정투위는 2004년 코오롱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 78명 중 12명이 속한 조직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하기도 민망한, 계란으로 바위치기 싸움이다.

코오롱은 2004년 78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했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이유로 들며 ‘합법적’으로 해고한 것이다. 근기법은 정리해고를 위해서는 해고회피를 위한 노력을 선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해고를 피하기 위해 임금을 20% 삭감하는 데 동의했고, 코오롱은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노조와 합의했다.

그러나 코오롱은 합의를 깨고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한 데 이어 정리해고의 칼날까지 휘두르고야 말았다. 정리해고만은 피하기 위해 적지 않은 임금까지 삭감하는 뼈아픈 노사합의를 했는데도 코오롱은 노사합의마저 깨고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노동자들의 양보와 희생이 정리해고라는 편법에 ‘해고회피를 위한 노력’을 선행했다는 법률적 정당성만 부여해 주고 만 것이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주관적인 명목으로 정리해고 카드를 들어 노동자들을 위협한 뒤 임금은 임금대로 먼저 깎아 버리고, 희망퇴직이나 휴직명령을 통해 노동자들을 헐값에 해고하고, 이를 해고회피를 위한 노력의 근거로 삼아 정리해고까지 강행하는 시나리오가 제조업체에서 유행했다. 지금 증권업계에서 남용되고 있는 편법이다.

정리해고가 허용되는 사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한정된다. 즉 해고의 사유는 개별 노동자의 과실이나 과오가 아니다. 오히려 시장 예측의 실패, 투자의 실패와 같은 대주주나 경영자의 과실이 정리해고의 원인인 것이다. 정리해고제도는 해고의 사유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처럼 주관적인 것도 문제지만, 그나마도 경영자의 과오 때문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 노동자가 희생되는 근원적인 억울함이 있는 제도다.

더욱이 날로 보수화되는 대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점점 포괄적이고 자본 편향적으로 해석한다. 적자사업부라는 이름으로 흑자기업에서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인정하고, 미래에 닥칠 수도 있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까지도 인정한다.

현실에서 기업들은 이를 교묘하게 악용한다.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의 면면을 보면 어떤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정했는지 알 수 있다. 대개 노조간부이거나, 노동기본권을 두고 투쟁하던 노동자들이다. 정리해고제도가 사실상 고분고분하지 않거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을 저격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정리해고는 그 책임이 노동자가 아니라 경영자에게 있다. 그래서 근기법은 기업이 정상화돼 노동자를 채용할 때에는 일정 기간이지만 정리해고자를 우선 채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경영이 호전된 뒤 정리해고 노동자를 복직시키는 것은 법이 강제하지 않더라도 어려울 때 희생됐던 제 식구에 대한 기업의 최소한의 도리이자 기업가의 윤리다.

하지만 코오롱은 지난 10년 동안 복직을 요구해 온 노동자들을 복직시키기는커녕 교섭조차 외면하고 있다. 코오롱정투위가 코오롱을 두고 “재계 서열 23위 기업이 노동자 78명을 정리해고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불매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배경이다.

우리 사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과도하게 관대하다. 이 땅의 대기업들은 국민에게 큰 빚을 지고 성장해 왔다. 60~7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소비자로서 국민의 권리, 노동자로서 국민의 권리는 수출증대와 경제성장이라는 기치 아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열악한 수준으로 희생돼 왔다. 세제·금융·환율·부동산, 심지어 노동과 환경정책까지 대기업의 이윤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최근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재벌들은 혜택을 많이 받은 기업일수록, 잘나가는 기업일수록 국내 소비자들에게 차별적으로 더 비싼 값에 상품과 서비스를 팔고, 국내 노동자들에게는 노동권 억압과 최저임금 수준 또는 유연한 고용을 요구한다.

국민적 희생과 국가적 지원을 딛고 성장한 재벌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국민에 대한 도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제 국민이 선진화된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처럼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부도덕한 기업은 법률적으로, 사회적으로 징벌해야 한다.

우리가 코오롱정투위의 불매운동에 귀를 기울이고 동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오롱 망하라고 불매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코오롱이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속가능한 길을 택하라고, 또 다른 대기업들이 코오롱의 길을 가지 말아 달라고 불매운동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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