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12구단15473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건설 주식회사가 운영하는 모델하우스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했다. 원고는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24시간을 근무하고 24시간을 쉬는 격일제 근무를 했다. 원고의 휴게시간은 중식 1시간, 석식 1시간, 야간 휴식 3시간에 불과했다.

원고의 교대 근무자 박○○이 휴가를 사용하여, 원고가 40시간을 연속으로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교대 근무자 박○○은 휴가 직후에 근무 교대를 위해 아침에 출근했다가 경비실에 쓰러져 있던 원고를 발견했다. 원고는 병원으로 옮겨져 두개골 절개술을 시술 받았고, 그 이후에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원고의 과로와 스트레스가 인정되지 않고, 원고에게 입원 당시 심방세동이 발견됐으므로, 원고의 급성뇌경색증은 기존 심방세동의 자연경과적 악화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불승인했다.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처분에 불복해 이 사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원고업무와 급성뇌경색증 간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했다.

2. 판결의 요지

이번 판결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때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증명이 됐다고 봐야 한다. 또한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 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돼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그 증명이 된 경우에 포함되는 것이고,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평균인이 아니라 해당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 기준에 기초하고 있다(대법원 2009. 4. 9. 선고 2008두23764 판결 참조). 이 판단 기준은 매우 많은 판례에서 반복적으로 원용되는 법리다.

또 이번 판결은 이 같은 판단 기준에 기초해 “원고가 만 63세의 고령이기는 하나, 이를 제외하고는 이 사건 상병의 원인이 될 만한 뚜렷한 지병이나 업무 외적 원인을 찾을 수 없고, 노동강도 자체는 강하다고 볼 수 없으나 24시간 격일제 근무와 발병 직전에 있은 장시간의 연속근무가 신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해 결국 이 사건 상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거나, 적어도 원고의 기존 질병을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시켜 이 사건 상병을 발병시켰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고, 이와 달리 판단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3. 판결의 의의

판결문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이 원고에게 불승인 처분을 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원고에게 과로와 스트레스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과 ‘원고가 입원할 당시 심방세동이 발견됐는데, 원고의 급성뇌경색증이 심방세동의 자연경과적 악화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점’이다.

이 같은 불승인 사유는 원고와 마찬가지로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노동자의 산재 사건에서 흔히 발견되는 문구다.

원고처럼 경비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를 노동법에서 감시단속적 노동자라고 부른다. 감시단속적 노동자는 감시업무를 주로 하거나 지속적 노동이 아닌 단속적 노동을 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근로복지공단은 감시단속적 노동자의 업무가 제조업·건설업 등 타 업종에 비해 신체에 큰 부담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24시간 맞교대 경비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연령이 많다. 워낙 저임금인데다가 노동시간도 길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경비업무를 기피한다. 이에 경비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고혈압·당뇨·심장병 등 성인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은 기존 질환을 앓던 노동자의 뇌심혈관계질환에 대해서는 기존 질환의 자연악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두 가지 경향 때문에 24시간 맞교대 경비 노동자에게 발병한 뇌심혈관계질환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승인을 받기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앞서 두 가지 경향과 관련해 근로복지공단과 다른 입장에 서 있다.

우선 이번 판결은 원고 업무에 육체적 작업이 거의 포함돼 있지 않는 등 노동강도가 전반적으로 낮았음을 인정하면서도, “24시간을 연속해서 일해야 하고 1일 근무 후 1일 휴무를 반복해야 하는 격일제 근무가 인간의 생체리듬에 역행하고 신체에 많은 부담을 주는 근무형태”라고 지적하면서 원고의 급성뇌경색증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했다. 또 이번 판결은 업무상 과로 여부를 단순히 노동강도만을 갖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제 근무·장시간 노동이 통상적인 주간 노동에 비해 신체에 더 많은 무리를 가한다는 사실은 의학적으로 이미 밝혀진 바 있다. 굳이 의학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24시간을 사업장에 머물며 밤을 지새우는 일은 엄청난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한 힘든 일이다. 이번 판결은 이 같은 상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번 판결은 원고가 기존에 당뇨로 치료 받은 경력이 있고 병원에 입원할 당시 혈압이 높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회적인 혈압과 혈당 수치만으로 고혈압과 당뇨가 이 사건 상병의 원인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순천향병원 입원 당시 발견된 심방세동과 과거 원고에게 발병했던 심근경색이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감정의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10년 전에 발병했고 당시 정식 의료기관의 진료도 받지 않았던 심근경색을 근거로 해 이 사건 상병의 발병 이전부터 원고에게 심방세동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단지 기존 질환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발병 원인을 업무와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 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돼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그 증명이 된 경우에 포함되는 것이고,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해당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판시한 바 있다. 설사 노동자가 기존 질환을 앓고 있었더라도, 그 기존 질환이 업무로 인해 악화됐다면, 이를 산재로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본 판결은 이 같은 상식을 재확인하고 있다.

4. 결론을 대신해

과거 24시간 맞교대 노동자의 뇌심혈관계질환은 옛 고용노동부 고시의 문제점으로 인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지난해 노동부 고시가 새로 나오면서, 그 내용상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24시간 맞교대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은 용이해질 거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아 무너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여전히 앞서 살펴본 두 가지 경향에 기대어 판단하고 있고, 이는 노동부 고시의 내용조차 무력화시키고 있다. 아무리 나쁜 도구가 주어져도 이를 잘 사용하면 훌륭한 결과물이 나온다. 아무리 좋은 도구가 주어져도 이를 잘못 사용하면 소용이 없다. 근로복지공단이 스스로를 다시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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