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1970년 11월13일 서울 평화시장 앞길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2014년 4월16일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중 배가 침몰돼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쳐 버려 결국 수장된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의 공통점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라는 것이다.

물론 두 죽음의 형태와 시기는 다를지라도 두 죽음 모두 자본의 탐욕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두 죽음 다 국가가 엄정하게 관리·감독·보호·구조해야 할 의무를 방기함으로써 일어난 비극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

한 사건은 국가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인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것을 방치·묵인하고 이를 호소하는 노동자를 기만하고 억누름으로써 생긴 사건이다. 또 하나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의무가 있음에도 자본과의 유착으로 인해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어린 목숨들을 수장시킨 사건이다.

인간·생명이 중심이 아니라 돈이 중심이 됨으로써 졸지에 유가족이 돼 버린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세월호 학생 유가족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자식이 죽기 전에는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자식이 죽고 난 이후 그 평범한 시민이 자식이 이루고자 한 뜻을 이루기 위해 싸우고, 자식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거리로 나서 단식하고 청와대 앞에서 노숙을 하며 싸우는 투사가 됐다.

이들한테는 오직 자식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간절한 사랑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투쟁의 근거이자 원동력이다. 그것 말고 또 무엇이 있으랴.

세월호 유가족들은 자식들이, 피붙이들이 충분히 구조될 수도 있었는데도 왜 눈앞에서 죽어 가야 했는지, 오로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고 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

44년 전 박정희 정권 시절 이소선 어머니께서 아들 전태일의 뜻이 이뤄지기 전에는 아들의 시신 인수를 거부하고 그 어떤 보상도 물리치고 싸웠던 것처럼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진실규명 약속을 지키라고 외치고 있다.

세월호 진실 덮으려는 세력들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덮고 잊히기를 바라는 세력들은 온갖 거짓과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하고 여론을 왜곡시키고 있다. 25일 현재 42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유민 아버지’ 김영오씨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사찰과 거짓된 사생활을 들춰 국민과 이간질하는 비열한 짓을 하고 있다. 마치 전태일 사건 직후 전태일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전태일의 분신 항거를 비관자살로 몰아가면서 온갖 거짓소문을 퍼뜨린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진다.

박근혜 정권은 민생경제를 들먹인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실은커녕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절차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세월호를 묻으려 한다. 이것은 박근혜 정권이 민생문제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민생경제라면서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도 또 다른 세월호 참사와 환경파괴를 불러일으킬 각종 규제완화와 의료 민영화 등 공적재산을 사유화하는 조치들이다.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으며 구조가 가능했음에도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한 특별법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데도 “이제 그만하라”, “세월호 가족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여론을 호도한다.

세상에 부모들이 눈앞에서 자식들이 죽어 가는 것을 봤는데, 자식들이 왜 죽었으며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이제 그만하라”,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말이 어떻게 성립된다는 말인가.

어머니의 투쟁이 전태일 정신을 지키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오로지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것처럼 거짓선전을 하면서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국민과 이간질하는 짓을 하는 비열한 세력이 있다.

44년 전 전태일 분신 이후 이소선 어머니는 아들의 뜻이 이뤄지기 전에는 그 어떤 보상도 필요 없다면서 돈을 거부하고 아들의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리고 아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조를 통해 싸워야 한다며 노조를 결성했다.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과 유민 아버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이 있어야 한다며 요구하고 싸우고 있다.

44년 전 이소선 어머니께서 알량한 보상이나 받고 노조가 아닌 적당히 노사협의회나 구성해서 근로조건 개선하는 시늉만 하고 끝냈다면 과연 전태일의 진실, 전태일 정신이 살아났겠는가.

마찬가지로 세월호 유가족들과 유민 아버지가 기소권과 수사권이 없는 세월호 특별법을 수용하고 적당히 진실규명을 하는 시늉만 보고 끝내 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 이전이나 이후나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유민 아버지와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 희망을 위해 온몸을 던져 싸우고 있다.

누가 세월호를 덮으려 하는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세월호를 지켜보고 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40여년을 아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한결같이 싸웠다. 전태일 정신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운동의 이정표가 됐고, 민주화운동의 위대한 유산이 됐다. 전태일 정신과 이소선의 뜻은 죽지 않고 지금도 살아서 역사발전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은 이제 출발선에 서 있다.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들어 진실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죽은 아이들의 뜻을 살리는 길이다. 여야 야합으로 모호하고 어정쩡한 특별법이 만들어진다면 그 결과는 죽도 밥도 아닌 것으로 돼 버릴 공산이 크다. 정치권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고 가만히 있다가 처참하게 죽어 간 어린 생명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 생명중심, 사람중심의 안전한 나라가 될 것이다.

다음달 3일은 이소선 어머니의 3주기다. 이소선 어머니는 살아생전 안타까운 죽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쫓아가서 그 죽음을 애통해하고 남은 가족을 위로했다. 그리고 바른 길로 인도했다. 지금도 이소선 어머니께서는 세월호 유가족을 지켜보시면서 바른 길로 인도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정치인들이여, 전태일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라. 이소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말라. 이소선 어머니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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