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병승·천의봉의 사업장,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사업장 현대자동차에서 노사는 합의했다. 대법원에서 사내하청근로는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 최병승의 현대차에서 노사는 사내하청근로와 관련해 지난 18일 노사합의를 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현대차전주비정규직지회,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가 참여해서 사용자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와 합의했다. 295일 철탑농성의 천의봉·최병승이 속한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가 빠진 채 합의서가 작성됐다. 다음날인 19일 조합원총회에서 아산지회는 57.1%, 전주지회는 71.6%로 합의는 가결됐다. 일주일이 흘러갔다. 노사합의서를 평가하면서 안타까움과 비난, 논란 속에서 일주일이 흘러갔다. 거기서 나도 합의했다는 뉴스 기사를 읽고서 마무리 운운하는 감회 섞인 글을 페이스북에 쓰고, 그런 합의를 하게 된 비정규직의 처지에서 합의서를 읽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변명으로 나는 이 글을 쓴다.

2. 정의를 저버렸다고 했다. 완성차공장의 직접 생산공정의 사내하청근로는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정의를 저버렸다고 합의를 비난했다.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박사는 이렇게 직접 비난의 말을 했지만(매일노동뉴스 8월22일자 19면) 말하지 않은 많은 이들도 공감하는 말이다. 정의, 여기서는 법이 선언한 정의를 말한다. 이 세상이 이미 정의라고 선언한 기성의 정의, 법의 정의를 말한다. 법의 정의는 인권·기본권·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권리를 지켜 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정의다. 바로 그 특별할 것도 없는 정의를 저버렸다는 비난이다. 노동자권리를, 파견법이 선언한 비정규직 노동자권리를 포기한 것이라고 노사합의를 비난한 것이다. 노사합의에서 현대차 사내하청근로를 불법파견이라고 명시하지 않았다. 불법파견이라고 명시했다면 현대차에서 사내하청근로가 계속되는 것을 막고 장차 자동차생산공정의 노동자 모두는 현대차 근로자로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번 합의는 비정규직을 전면적으로 정규직화하는 합의가 아니다. 불법파견이면 파견법에 의해서 이미 현대차 근로자로 간주됐거나 고용할 의무가 인정된다. 그런데도 ‘특별고용’, 즉 신규채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니 현대차비정규직투쟁의 요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아니다. 불법파견이면 고용 간주되거나 고용 의무가 인정된 이후의 근속기간은 모두 현대차에서 인정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 합의에서는 3년 이상에 1년씩 그것도 4년을 최대한으로 보장해 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불법파견이면 고용 간주되거나 고용 의무가 인정된 이후 현대차 근로자로서 임금을 지급받는다. 그런데 이번 합의에서는 임금 지급은 없었다. 더구나 2010년 이전의 해고자는 이번 합의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2012년 7월 이전에 직접 생산 하도급업체 근로자로 제한해서 그 이후에 입사한 자나, 현대차 촉탁직, 그리고 직접생산 하도급이 아닌 업체 노동자를 제외했다. 현대차 직접 생산공정에서 사내하청근로는 불법파견이라고 한 법원의 판결까지 있었음에도 이상과 같이 불법파견이면 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권리를 노사합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법이 보장한 노동자권리를 보호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 노사합의는 정의일 수가 없다. 합의는 법에서 보장한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전제하고 서 있지 않다. 오히려 합의는 정의를 외면하고 서 있다. 정의를 저버렸다. 박태주 박사는 이런 합의를 한 사용자 현대차를 비난하고, 불법파견을 특별근로감독하지 않는 정부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 비난은 노사합의에 대한 것이니 현대차 외에는 합의 주체는 비난받지 않았다고 합의의 주체가 변명할 일도 아니다.

3. 현실을 고려한 타협이었다고도 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용자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아 정의에 반하는 합의이지만 “사용자가 인정했을 때 끼치는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 조합원들이 10년 이상의 싸움에 지쳐 있다는 상황”까지 고려한 새로운 타협점을 찾는 과정이라 했다(매일노동뉴스 8월22일자 19면). 이번 합의의 한 주체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진상건 사무국장은 현대차의 특별채용 강행, 비정규직지회의 조직력 와해, 비정규직 조합원의 생활고 등으로 투쟁 이탈, 모든 조합원의 100% 승소가 보장되지 않고 1심에서 승소하더라도 현대차의 상소로 장기화될 재판 등을 고려한 가장 현실적인 합의라고 했다(매일노동뉴스 8월22일자 18면). 전자는 사용자 현대차의 입장까지 고려해서 이번 합의를 평가하고, 후자는 비정규직 노조와 조합원의 처지를 고려해 한 것이라고 합의 주체인 현대차지부는 밝혔다. 정의는 법원이 선언해 줄 수도 있지만 현실 때문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정의는 합의할 수가 없다. 법이 선언한 권리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절충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절충은 정의의 외면이다. 대한민국 법이 선언한 노동자권리를 짓밟는 사용자의 부정의를 극복하지 못하고서 합의한 것은 분명하다. 이번 합의의 한 주체인 현대차지부도, 아산지회와 전주지회도 이걸 부정하지 않는다. 부정의의 현실이 합의를 합리화했다. 절박한 현실의 무게가 합의의 필요가 되고 말았다. 사용자의 무법의 행태를 극복하지 못한 합의가 현실이라는 말로 표현됐다. 교섭이든 투쟁이든 사용자에 맞서 관철해 내지 못한 합의 주체, 노조의 변명이 현실이라는 말로 표현됐다. 아픈 변명이다.

4. 분명히 그랬다. 정의는 외면됐다. 직접 생산공정에서 사내하청근로의 사용은 파견법을 위반한 파견근로의 사용이라서 불법이고 범죄다. 이번 노사합의는 불법행위·범죄행위라고 하지 않고서 직접 생산공정 하도급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특별 고용하겠다고 합의했으니 부정의와 타협한 셈이다. 합의에 참여한 비정규직지회는 내부적으로 커다란 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전개해 온 단체 활동가들까지 논쟁에 합세했다. 불법파견 인정을 전제하지 않는 특별고용 방식으로 정리했으니 사용자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이번 합의에서 빠진 김성욱 울산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정규직 전환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매일노동뉴스 8월22일자 18면). 사실 이번 합의서에서 현대차 사내하청근로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인정해 준 것은 아니다. 반대로 지금까지 현대차에서 사용해 온 사내하청근로를 불법파견라고 인정한 합의도 아니다. 설사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합의했다고 해도 현대차 사내하청근로가 불법파견이 아닌 것으로 인정될 일도 아니다. 현대차 사내하청근로가 불법파견이란 것은 엄연히 법적 판단의 문제이다. 불법파견의 사용으로부터 노동자권리를 지켜 내는 것이 법의 정의이니 그걸 지켜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걸 지켜 내겠다고 투쟁하는 일은 정당하다. 합의가 있었다 해서 정의가 양보할 일이 아니다. 합의 이후에 비정규직 노조와 조합원이 할 선택과 행동에서도 고려돼야 한다. 이번 합의는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하고서 한 합의가 아니므로 향후 해당 공정에서 노동자가 불법파견으로 사용됐다는 법원이 판결이 나온다면 해당 공정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현대차는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합의 이후에도 사용자 현대차에게 요구하고 투쟁해야 하는 정의의 일이다. 이걸 외면하고서는 현실을 내세운 변명에 불과할 수 있다.

5. 사실 현대차에서 사내하청 근로를 두고서 비정규직 노조와 조합원이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투쟁할 일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법, 파견법이 선언한 노동자권리로서 법이 집행될 일이었다. 그러나 사용자는 파견법을 위반해서 노동자권리를 짓밟았고 국가권력은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다. 이미 2007년 6월 서울중앙법원이 현대차아산공장 사내하청근로가 파견법 위반의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고, 2010년 7월 대법원도 현대차울산공장 사내하청근로에 관해서도 동일하게 판결했다. 그랬으면, 제멋대로 파견도급기준을 만들어 처벌하지 않고서 현대차에 면죄부를 줬던 검찰 등 수사기관은 그때부터라도 현대차 대표를 수사해서 기소해 처벌했어야 했다. 파견법 위반을 은폐하기 위한 조직적인 범죄이고, 법원 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사내하청근로를 사용하는 악의적인 범죄이며, 수천명 이상을 사용해 온 대규모 범죄이고, 10년 이상 행해져 온 범죄라는 점에서 현대차에서 이를 실제로 사용하도록 결정하고 지시한 사용자는 회장이든 사장이든 구속수사로 엄정하게 형사처벌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현대차 파견법 위반의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았다. 범죄는 계속됐다. 그리고 약 2천명 비정규 노동자가 현대차를 상대로 불법파견이라며 근로자지위소송을 2010년 말 서울중앙법원에 제기했다. 그 뒤 사용자 현대차는 사내하청노동자 중 일부를 선별해서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하는 것으로 나왔다. 불법파견이라면 이미 현대차 근로자인데 신규채용이라니 법적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언제 확정판결을 통해 현대차 근로자로 인정될 지 기약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선 신규채용이라도 받아야겠다면 향후 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하면 그에 따라 근속·임금 등을 적용받겠다고 정하고서 합의해야 했다. 수년을 협상이니 교섭이니 하며 보내면서도 노조는 이런 합의서를 사용자 현대차와 체결하지 못했다. 바꿔 말하면 사용자 현대차는 사내하청노동자 일부를 신규채용하면서 불법파견 근로자지위소송을 취하하도록 요구해서 파견법상 비정규직의 노동자권리를 빼앗았다. 불법파견 중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의 요구는 계속되고 투쟁은 점거파업투쟁으로 격렬하게 전개됐다. 투쟁을 주도하고 적극 참여한 비정규직 노조간부 조합원들이 대규모로 징계 해고돼서 해고자가 되고 형사처벌받고 수백억원의 손배·가압류를 당했다. 그리고 노사합의서가 작성됐다. 울산비정규직지회가 빠진 상태에서였다. 신규채용방식이고 비정규 노동자 모두가 정규직이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근로자지위소송을 취하하는 걸 전제하는 노사합의였다. 근로자지위소송 판결 선고를 며칠 앞두고 왜 이런 합의를 했을까. 며칠만 기다렸다 판결 결과를 보고서 합의하기는 어려웠던 것일까. 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등 갖가지 감정으로 합의서를 읽는다. 확정 판결까지 감수해야 할 시간과 고통, 해고자 문제, 일부 공정이 불법파견으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의 문제로 나는 이런 합의를 해야 했던 비정규직노조의 고민과 비정규 노동자의 고통을 읽는다. 합의서에서 법을 능멸해 온 사용자 현대차를, 법으로 선언한 정의를 집행하지 않은 고용노동부, 검찰 등 대한민국의 권력을 읽는다. 사용자 현대차가 끝내 자신의 범죄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니 파견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데 정상참작은 없어야 한다고 나는 합의서를 읽는다. 합의에는 변명이 있을 수 있어도 불법, 범죄에 대한 국가권력의 법 집행에는 변명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의가 변명이어선 안 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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