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양우람기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유가족들은 연일 거리로 나서고 죽음을 넘나드는 단식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개조를 약속했던 청와대와 여당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애써 외면한다. 야당 역시 세월호 특별법 앞에 무능력하다. 304명의 희생자·실종자가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이대로 묻을 것인가. <매일노동뉴스>는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바라는 각계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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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투쟁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는 국민 전체의 정치적 각성이에요. 새로 깨어난 국민의 힘으로 정치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2014년 4월16일 오전. 늦은 봄 찾아든 비극적인 사건에 사회 전체가 비통에 빠졌다. 노동계는 부지불식간에 이윤추구 극대화라는 자본의 논리에 눈감은 탓은 아닌지 뒤를 돌아보며 자책했다.

김영호(50·사진) 민주노총 안산지부장이 그랬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단이 즐비한 산업도시는 한순간 슬픔의 도시로 변했다. 아이들을 보내고 먹고사는 것이 부끄러웠던 노동자들은 기계소리에 파묻혀 숨죽이며 일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들, 출퇴근길에서 마주치는 이웃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모두가 피해자였다.

정부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월호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국민에게 '국가개조'를 약속했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라는 유가족들의 요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새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 일부 국민은 세월호 정국에 대한 피로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영호 지부장은 “세월호가 이대로 잊히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조직된 노동자의 역할이자 사회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가 25일 오전 안산 단원구에 있는 금속노조 SJM지회 사무실에서 김 지부장을 만났다. 그는 SJM지회 지회장을 맡고 있다.

세월호 참사 뒤 촛불 들고 거리로

- 세월호 참사를 접하고 심정이 어땠나.

“사고 당일 오전 지회 휴게실에서 조합원들과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다. 전원 구조 보도가 났는데 오보였다. 사고 다음날까지 믿기지 않았다. 한순간에 그렇게 큰 배가 가라앉았고, 그렇게 쉽게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뉴스에서 단원고·고잔동 이런 말이 나오던데 모두 나와 연관된 지명이었다. 우리 집이 단원고 후문에 있다. 작은딸이 올해 단원고를 졸업했다. 딸아이가 세월호와 정확히 같은 코스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세월호 참사가 2년 전에 일어났더라면 하는 생각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사고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저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사고 이후 지부 차원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

“사고 이후 단원고 등에서 아이들의 구조를 기다리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지부는 상급단체 지침에 따라 조합원 피해실태를 파악한 후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고잔동으로 나갔다.

많은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지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5월1일 노동절에 상경집회를 하지 않았다. 대신 정부가 마련한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안산시청까지 삼보일배를 했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사회 구성원의 하나로서, 한 사람의 엄마·아빠로서 보낸 미안한 노동절이었다.

삼보일배를 하면서 나를 포함해 노조가 제 역할을 했으면 세월호 같은 비극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반성도 했다. 자본의 이윤추구 극대화와 생명경시 풍조를 제어하는 것은 노조의 역할이니 말이다.”

국가개조는 말뿐 …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개조를 약속했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바뀐 게 없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마찬가지다. 야당의 대응방식에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는 능력 이전에 세월호 같은 비극을 자기 일처럼 공감하고 아파해 주는 정치인이다.

가장 여리고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모든 일에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이 진심을 보이지 않고, 당리당략에 의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소상히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유가족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 전체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진실을 자꾸 감추려고 하고 유가족의 목소리조차 외면하고 있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유민 아버지 김영오씨가 단식농성 중이다.

“김영오씨는 같은 금속노조 조합원이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잘못된 소문이 퍼지고 있어 언급하기가 조심스럽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가슴에 불이 들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여야 협상에만 매달리지 말고, 국민과 함께 진상조사 운동을 광범위하게 벌여야 한다.

외부에서는 세월호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정부가 극단적인 방식에 반응할까 하는 의견도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좀 다르다. 이분들이 스스로 살기 위해서라도 투쟁해야 한다.

유가족들이 숨죽이고, 혼자 가라앉게 하면 안 된다. 울분과 분노를 속으로 가라앉히다 좌절하게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가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 아는 건설노동자 한 분이 계셨다. 혼자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 키운 딸이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났다. 참사 이후 죽음까지 결심했던 분인데 며칠 전 진상이라도 알아야겠다며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농성장으로 갔다. 사고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에도 논란이 계속될 것이다. 진상규명은 정부가 선택할 일이 아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여야의 특검 도입 논의는 사건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출구전략에 다름 아니다. 이대로 사건이 묻히면 10년, 20년 후 스스로 세상을 떠날 유가족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날 수 있다.”

쌍용차 사태보다 더한 후유증 막아야

- 일각에서는 세월호 정국 장기화에 대한 피로감을 보이는데.

“정치권과 일부 국민이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세월호 참사가 이대로 묻히면 5년에서 10년 사이에 또 다른 세월호 참사가 등장할 것이다. 몇 달 시간이 지났다고 묻어야 할 사건이 아니다.

SJM지회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올해 임금·단체협상을 하지 못했다. 민주노총도 4월 이후 모든 투쟁력을 세월호에 집중했다. 일상사업에 지장이 있다고 포기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일상과 병행하는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라질 것이다.”

- 어떤 조건이 마련돼야 사회가 세월호 이후를 말할 수 있다고 보나.

“엄밀하게 얘기하면 국민의 정치적 각성이다. 선박 운영을 허가한다거나 국가 안전시스템을 구축한다거나 하는 문제 모두 정치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런 정치인들을 뽑는 사람들은 결국 국민이다.

국민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불신을 주는 정치를 거부해야 한다. 자본의 이익보다는 생명의 가치를 중시하는 정치인들이 사회의 체질개선과 개혁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돌아가신 제정구 전 민주당 의원처럼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 향후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곧 지부의 당면사업이라는 생각으로 여러 역할을 찾아낼 것이다. 현재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시민사회의 집회동력이 약화된 게 사실이다. 지부 조합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 학생들과 함께 '노동자들이 준비하는 시민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사회변화 이전에 세월호 참사가 잊히는 것을 막는 것이 조직된 노동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지부가 사업장이 아닌 지역단위에 기반해 결성된 조직임에도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구체적인 역할이 부족했다. 비정규직 문제나 임금체불과 같은 노동현안에 집중한 나머지 지역문제에 소홀했다. 지역사회와 호흡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반성을 했다.

앞으로 지역을 위한 사업에 시의회 예산이 제대로 배치되는지 관심을 쏟을 생각이다. 지역사회와 소통의 전제가 되는 정서적인 교감을 쌓기 위해 노력하겠다. 세월호가 잊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글·사진=양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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