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아니, 왜 자신의 권리를 거래대상으로 삼아야 하나요?"

통상임금과 노동시간단축, 정년연장과 같은 노동현안을 한꺼번에 풀자는 '패키지 딜' 방식의 임금·단체협상 모델에 대한 김만재(49·사진) 금속노련 위원장의 입장은 단호했다. 김 위원장은 "굵직한 쟁점이 많아 올해 임단협이 늦어지고 있다"면서도 "노동운동은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맹은 22일 '금속노련 50년사 출판기념회'를 개최한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연맹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 올해 임단협은 통상임금과 정년연장, 노동시간단축이 한꺼번에 쟁점이 되면서 예년보다 더딘 것 같다. 연맹 상황은 어떤가.

"이달 현재 소속 사업장의 20% 정도만 임단협을 타결했다. 통상적으로 추석 전에 70~80% 마무리됐던 것과 비교하면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교섭 결과를 보면 긍정적인 쪽과 부정적인 쪽이 50대 50이다. 요구안이 다 관철된 사업장도 있지만 차후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조치를 단체협약에 담은 곳들이 많다."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임단협 체결률을 떨어뜨린다고 보나.

"자동차 부품사들이 진도를 못 나가고 있다. 원청에서 무언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올해 5월께 원청에서 하청업체 사업주들을 불러 '(완성차보다) 먼저 타결하지 말라'고 주지시켰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하청 사업주들은 잘못하면 원청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몸을 사린다. 원청이 합의를 하면 그때 정리하자는 곳이 적지 않다.

부품사들의 교섭이 제자리걸음을 하다 보니 제조연대 공동투쟁에 영향을 미쳤다. 투쟁방향을 세우고 결의를 모았지만 결론적으로 시기집중 투쟁이 잘 안 됐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 한국 노사관계의 대리전으로 불리는 현대차가 통상임금 갈등을 겪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파업을 예고했는데.

"원청 앞에서 하청은 사용자도 노조도 을이다. 갑의 횡포가 심하기 때문에 먼저 치고 나가기 어렵다. 실제로 대부분 부품사에서 현대·기아차 합의내용을 보고 임단협을 진행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쌍용차와 한국지엠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한 만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부품사 상당수가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일단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어야 한다. 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는 판결이 정착되는 게 중요하다. 올해 안 되면 내년, 내후년에라도 해결할 수 있도록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려되는 것은 원청이 비용 부담을 부품사에 전가하는 경우다. 원청 노사가 통상임금 문제를 풀면서 부품사에 고통을 전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정부는 통상임금과 정년연장·노동시간단축을 패키지 딜 방식으로 풀자는 입장인데.

"노조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통상임금과 정년연장·노동시간단축은 패키지로 거래할 대상이 아니다.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했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60세 정년을 의무화하는 법도 만들어졌다. 주 52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은 탈법이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가지고 딜을 하라?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정부는 패키지 딜 운운할 것이 아니라 법정 노동시간을 어기고 있는 사업장을 관리·감독해야 한다."



- 하나하나가 쟁점인데 바람직한 교섭 모델이 있다면.

"통상임금 확대를 전제로 올해 임금인상은 유연하게 풀어 갈 수 있다고 본다. 노조에 유리한 환경과 조건이 형성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패키지 딜을 시도하면 오히려 조직적 상처만 입게 된다. 조합원들은 자신의 사업장뿐만 아니라 전국 사업장에서 이뤄지는 교섭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적으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노동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전자업계에서 유해물질 노출로 인한 직업병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년에 2천여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대참사가 노동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사업주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 노조도 산업안전활동을 중요하게 보지는 않는 것 같다. 안전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업주들이 무재해 운동을 벌이겠다며 산재를 은폐하는 것을 노조가 방관하기도 한다. 상처 받고 아픈 노동자를 위해 존재하는 노조가 이런 것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 작은 것 하나부터 원칙적 입장에서 자기 역할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안전활동이야말로 노조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 지난 임원선거에서 제조산별 추진을 공약했다. 제조산별 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나.

"금속노련과 화학노련, 섬유유통노련이 제조연대를 결성했다. 한동안 섬유유통노련이 빠져 있었는데, 최근 집행부가 바뀌면서 제조연대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앞으로 세 조직이 정책·조직·교육을 유기적으로 진행해 나갈 것이다.

제조산별은 나의 오랜 꿈이다. 최근 출범한 한국노총 조직발전특별위원회에서도 유사산별 통합을 의제로 다루고 있다. 대산별로 가기 위해 한국노총에 업종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유사한 업종의 연맹들이 상시적인 연대활동을 벌여 나간다면 자연스럽게 대산별노조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한국노총 내부의 정치적 지형 탓에 제조대산별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소산별을 흡수하는 식의 편협한 시각을 가지기보다는 공통의 특징을 가진 유사산별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미 국제적으로 제조산별의 시대다. 2012년 금속·화학·섬유 노조들이 하나로 합쳐 인더스트리올로 재편되지 않았나."



-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했다. 지난해 출범과 동시에 중단됐던 자동차부품업종 노사정 대화도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데.

"자동차부품업종위원회에서 원·하청 불공정거래 문제를 풀고 싶다. 원청과 하청 간에 상생관계를 사회적 힘으로 만들어 내지 않으면 자동차 부품사의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대기업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대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대기업의 눈치를 보면서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를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자동차부품업종위에 공정거래위원회 참여를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정부 관련 부처가 참가하지 않는데 노사정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나. 책임 있는 주체가 참여해야 한다."



- 금속노련이 최근 50년사를 편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비전을 담았나.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나가면서 정부가 서비스산업 육성정책만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말로만 고용창출을 외치지 말고 실제로 고용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금속노련이 역할을 할 것이다.

50년사를 편찬한 이유는 역사를 알아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2일 출판기념회는 금속 노동운동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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