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들어내.”

지난 17일 새벽 4시 하나금융지주 회장실이 있는 서울 중구 하나은행 을지로별관 15층에서 소란이 일었다. 한마디 짧은 명령이 떨어지자 회장실 앞 로비에 용역들이 깔렸다. 로비에서는 금융노조 하나은행지부(위원장 김창근) 간부들이 6일째 철야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50여명이나 되는 용역들의 완력에 간부들은 힘없이 밀렸다.

평온했던 하나은행 노사관계가 요새 심상치 않다. 하나은행지부는 18일로 일주일째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고, 파업현장에서 ‘용역깡패’로 불리며 말썽을 일으키는 용역경비까지 투입된 상황이다. 지부는 하나금융 회장실은 물론 은행장실 앞에서도 농성 중이다.



“조기통합 이유로 합의 불이행”



일주일째 을지로별관과 종로구 본점 은행장실을 오가며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김창근(46·사진) 위원장은 18일 <매일노동뉴스>를 만나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은행이 기존에 체결했던 노사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데다, 3개월 동안 벌인 노사협의회에서도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노사 간 불협화음 이면에 인사권과 예산권을 쥔 하나금융이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김정태 회장이 밝힌 '외환은행 조기통합' 논란은 모든 현안을 삼키는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사용자들이 지금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다”며 “통합이라는 큰 화두를 던진 탓에 그 그늘 속에서 약속이 건건이 깨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으로 불이행된 약속은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다. 노사는 올해 초 7월1일부터 정규직화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하나은행이 충청·보람·서울은행을 차례로 합병하면서 덩치를 키운 터라 내부에 임금·인사제도 차별 문제가 여전하지만 이 역시 노사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월 직무중심 인사제도로 재편됐는데 한 번에 심화돼 있던 불균형 문제를 고칠 수가 없다”며 “마지막으로 직무 구분과 확정, 직무수당 개선과 보완 문제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외환지부 2·17 합의 이행투쟁 당연”



김 위원장은 특히“김정태 회장이 조기통합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주도권을 쥐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이번 투쟁과 통합은 논외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산토끼 잡으러 갈 게 아니라 집토끼 단속이나 잘하라”는 말이 뒤따랐다. 그는 “내부구조를 혁신하고 노사 간 신뢰를 구축한 다음 합의를 지키고 나서 통합에 나서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영진에게 신뢰와 소통을 요구했다. 외환은행과의 조기합병을 보는 시각도 여기에서 출발했다.

“외환은행지부가 2·17 합의를 존중하라고 요구하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장외로 나가 투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만약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면 (하나금융은) 노조와 충분히 협의하고 합의해야 합니다. 저도 외환은행과의 관계에서 어떤 개입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은행지부 위원장으로서 직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할 겁니다. 두 지부가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김 위원장은 또 “경영진 입장에서는 통합논의가 필요하고 결국 통합이 조직이익과 직원이익에 부합한다면 노조와 충분한 협의와 합의를 거쳐 방향을 잡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의 독선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낸 셈이다. 그는 이어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논의를 이끄는 지금 구도로는 통합의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상급단체인 금융노조의 9월3일 파업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는 “산별중앙교섭에서 주요 이슈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비롯한 노정관계 때문에 뒤틀리다보니 파업의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다”며 “일부 전선이 무너졌다고 해도 정부를 향해 금융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핵심 이슈가 있는 지부나 그룹이 파업에 준하는 투쟁을 한다면 최대한 지원할 겁니다. 조직을 동원해서 산별 틀을 유지해야지요. 하나은행 경영진에게도 경고의 시그널을 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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