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은수미(51·사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최근 행보가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3번으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활동에 집중해 왔다. 그랬던 은 의원이 올해 초부터 새정치민주연합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정당운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세월호 참사와 6·4 지방선거, 7·30 재보궐선거를 거치며 단단해졌다고 한다.

은 의원은 시민들과 괴리된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이 세월호 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보여 준 새누리당과의 타협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고 봤다. 지난달 20일부터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진행한 11일간의 단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시작했다고 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세월호 특별법 정국과 새정치민주연합 위기에 대한 은 의원의 생각을 들어봤다. 지난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야권, 이대로는 필패한다"

-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 결과를 어떻게 보나.


"앞으로 총선·대선에서 야권의 패배가 구조화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선거였다. 사회적 약자인 저임금·비정규 노동자의 삶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정치권에 들어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총선과 대선에서 희망을 찾고, 정치가 불법이나 특혜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위협적인 세력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필패구조가 돼 버리면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당에 개인적인 선거분석 결과를 이야기했는데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

- 패배가 구조화되는 이유는.

"정당의 존재가 사라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2004년부터 올해까지 정당 득표율이 35%에서 45%로 올랐다. 어떤 후보를 내세워도 45%는 받는다는 얘기다. 여기에 5%의 추가 득표력을 가진 후보만 내세우면 무조건 당선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같은 기간 35%에서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투표장에 가서는 40%의 지지가 나온다. 당선되려면 후보가 스스로의 개인기로 10%를 더 얻어야 한다. 새누리당은 정당선거를 하고, 우리는 후보선거를 한다. 더 큰 문제는 우리 후보들이 정당과 결합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정당 지지율하락 추세가 후보의 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총선이나 대선은 정당선거를 하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다. 후보가 괜찮아도 정당을 원치 않거나 거리를 두는 구조가 정착되면 필패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중도 전략으로는 지지자 모두 잃는다"

- 새정치민주연합뿐만 아니라 야권 전체의 무기력도 문제 아닌가.


"2004년 이후 우리 당뿐만 아니라 야권 전체의 지지율이 빠졌다. 운동장이 점점 더 기울고 있다. 그동안 우리 당은 야권 전체 지지율의 80~90%를 받는 방식으로 협력해 왔다. 그런데 야권이 확장이 안 되면 우리 당이 얻을 수 있는 득표도 한계에 부딪친다. 야권이 다 모였는데도 간신히 48%를 얻은 지난 대선 결과가 반복될 수 있다. 중도를 얻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쉽게 나온다. 새누리당은 확고한 지지자가 있으니 중도로 살짝 가서 5%만 더 얻으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지지자의 표가 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중도로 가면 모두를 다 잃게 될 수 있다."

- 최근 정당운동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 같다.

"노동문제를 다루는 것은 나의 기본이자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다. 지금 나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런 나를 넘어서는 일이다. 당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종국에는 이겨야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지난 몇 개월간 고통스러울 정도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내가 강경파로 비치면 당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당 지도부의 입장을 생각한 것이다. 이제는 두려움 없이 그냥 내 생각대로 해 보자고 마음먹고 있다.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손에 쥐고 있는 것도 별로 없다. 나머지 기간 동안 노동을 기초로 하면서 정치를 바꾸기 위해 올인해 보자고 결심했다."

“미안한 마음 표현 방법 11일간의 단식밖에 없었다”

- 제대로 된 당 대표를 선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7·30 재보선 결과는 당의 디자인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재건축을 하거나, 다른 부지를 사서 새 건물을 지어야 할 정도의 위기라는 것을 보여 줬다. 비상대책위원회로는 당 시스템을 정상화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 건물이 무너지고 있고, 긴급대피가 필요한 상태다. 대피 후 어디서 어떻게 재건축할 것인지 우리끼리만의 논의로는 부족하다. 시민과 지지자의 바다에 들어가서 답을 찾아야 한다. 당의 무엇이 문제인지 근본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11일간 단식을 했다.

"유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사실 정치인들의 단식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입법이나 그와 관련한 정치적 행위를 통해 일이 되도록 만드는 게 옳다고 본다. 앞으로도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유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한데 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가 없었다. 정치권은 당시 선거에 집중해 있었다. 처음에는 지도부가 앉아 있어야지 초선 여성의원이 뭘 한다고 단식을 하느냐는 핀잔도 들었다. 세월호 상황을 면피하기 위해 단식을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도 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미안함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단식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감싸는 포장지 역할은 그만"

- 은수미 같은 이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본모습을 감추는 포장지 역할을 한다는 비판도 있다.


"민주인사가 독재정권에 참여해 정권의 목숨을 연장시키는 것 아니냐는 질문과 비슷한 것 같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실상은 친노동·친환경·친인권적이지 않은데 그런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포장지 역할을 한다는 질문을 많이 받긴 한다. 일정 부분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당은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다. 친인권·친노동을 외치는 목소리도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게 싹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포장지를 뜯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이 나오면 얼마나 기쁘겠나.(웃음)"

- 세월호 특별법의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이 협상 초기부터 수사권 문제만 얘기한 탓에 일을 그르쳤다는 비난이 거세다.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 중요하다. 절대 양보하지 못할 가치라고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유가족과 충분한 소통을 하지 못했고, 협상에서도 밀리기만 했다. 마지막 합의는 유가족을 배제하고 우리끼리 결정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이 수장됐다. 왜 수장됐는지 진상을 밝혀 달라는 요구가 나왔다. 유가족과 이를 지원하는 시민들의 요구로 세월호 특별법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국회는 이에 부응해 입법 과정을 밟아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입법 과정과 시민들의 요구가 따로 놀기 시작했다. 수사권·기소권 문제를 입법논리와 정치논리로 다룰 게 아니라 소통과 공감의 관점에서 다뤘다면 지금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특별법 협상이 정쟁으로 비칠까 전전긍긍하다 급기야 새누리당과 타협해 버렸다. 특별법 논의를 국민과 함께 진행됐다면 그런 우려를 하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환노위는 노동·환경 규제완화 막아야"

- 19대 국회 후반기 환노위를 어떻게 전망하나.


"정부·여당과 합의하지는 못해도 막아 낼 수는 있다. 그런데 정부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가지고 국회를 우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우려스럽다. 노동을 쥐어짜고, 규제를 완화해 환경을 훼손하려는 정부의 공세가 예상된다.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는 수단은 많지 않다. 예전에는 예산권을 손에 쥐고 마지막까지 저항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정부 원안대로 통과되게 돼 있다. 다시 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서비스·케이블 노동자 사례를 보면 현장이 굳건히 버텨 줬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조율해 나가는 것도 가능했다. 현장과 시민을 믿고, 이들이 방어해 줄 것이라 믿고 함께해야 한다."

-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이 7·30 재보선에 출마했는데. 노동전문가로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왜 나오는지 알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컸다. 쌍용차 사태 해결은 여야 모두가 약속한 사안이다. 나도 약속했다. 그런데 해법이 보이지 않으니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출마한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또 세월호 참사 유족 한 분이 문제 해결을 위해 출마를 했다면 얼마나 미안하고 무력감이 들었을까 생각해 봤다. 이해 당사자가 직접 정치주체가 되는 방식과 나를 비롯한 노동문제 전문가가 비례대표로 야당에 참여하는 방식 모두 냉철하게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제정남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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