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아 변호사
(민주노총 법률원)

노동자는 회사의 허락 없이는 사업장에서 유인물을 배포할 수 없을까. 다수 회사에서는 취업규칙·단체협약에 유인물 배포에 관해 회사의 허락을 받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회사의 허락 없이 사업장에서 유인물을 배포한 경우 취업규칙 등 위반을 이유로 징계하기도 한다. 더욱이 유인물 내용이 사용자와 밀월관계에 있는 노조의 활동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징계는 쉽게 이뤄진다.

A회사 노조는 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회사 유일한 노조다. 상여금 등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논란과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조합원들의 요구가 팽배함에도 노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상급단체의 통상임금 범위 확대 및 통상임금 소송 지침이 있었지만 노조 집행부는 해당 지침이 있다는 것을 조합원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오랜 순응에 익숙한 조합원들은 개별적인 소송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냈다. 그런데 조합원 몇 명이 용기를 냈다. 통상임금 판례와 A노조 상급단체의 통상임금 지침을 소개하고 통상임금 소송인단을 모집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출퇴근하는 조합원들에게 나눠 줬다.

그러자 회사는 유인물 배포를 중지하라는 경고장을 몇 번 보낸 다음 유인물 배포자들을 징계했다. 징계 과정에서 노조는 조합원들을 위한 어떠한 보호조치도 시도하지 않았다. 징계는 “회사의 허락 없이 취업시간 중에 인쇄물·유인물·전단·판촉물·홍보물 등을 작성·배포·전달하거나, 회사의 허락 없이 정해진 장소 외에 이를 게시하거나, 이와 유사한 행위를 한 자, 또는 사내에서 취업 중인 타인을 상대로 위와 같은 행위를 한 자”에 대해 징계할 수 있다는 취업규칙을 근거로 한 것이다. 즉 회사의 허락 없이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것이다. 회사는 나아가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유인물 배포자들을 형사고소까지 했다. 용기를 냈던 평범한 노동자 10여명은 난생 처음 징계를 받는다고 회사 인사위원회에, 피의자로 조사를 받는다고 경찰서에 불려 다녔다. 이 같은 상황에 위축될 만도 했지만 그 노동자들은 또 유인물을 돌렸다. 추가 소송인단이 모집됐고 살금살금 소송 참가자들이 늘어났다. 조합원 100여명이 집단적으로 원고가 돼 요지부동의 회사를 상대로 한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유인물 배포에 대한 회사의 징계와 형사고소는 조합원의 표현의 자유 내지 노조활동의 정당성이 사용자의 허가에 좌우돼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노조의 자주성에 반하는 논리다. 법원은 사업장 내 유인물 배포의 정당성 여부는 사용자의 허가 여부가 아니라, 유인물의 내용과 배포의 방법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체적으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복지 증진, 기타 경제적·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한 것이라면 정당한 노조활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노조의 구체적인 지시나 위임 없이 행해진 일반 조합원의 자발적인 유인물 배포행위라도 그 노조 활동성을 인정하고 있다.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또는 노조의 대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행한 유인물 배포는 비록 사용자의 허가가 없다고 해도 정당한 노조활동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A회사에서 징계를 받은 조합원들이 제기한 부당징계소송에서 1심 법원은 유인물 배포의 목적이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을 향상시키려는 것으로 노조활동에 해당하고, 회사의 명예훼손의 여지가 없으므로 정당한 노조활동 범위 내의 행위로서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형사고소 사건에서도 소송인단 모집을 위한 것이고 명예훼손·업무방해로 볼 수 없다며 정당한 권리행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불기소처분을 했다.

상식 없는 사용자의 행위에 대한 당연한 판결과 결정이다. 임금은 근로조건의 핵심이고, 임금 상승 요구는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다. 노조가 말하지 않으면 조합원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표면적인 징계사유는 감히 회사의 허가 없이 배포했다는 행위가 괘씸하다는 것이지만, 통상임금 소송참가자가 늘어나면서 유일한 노조를 통해서 손쉽게 노사관계를 해결해 왔던 관행에 균열이 생기는 결과가 두려웠을 것이다. 아직 징계소송은 진행 중이지만 유인물 배포라는 작은 행동이 다수 조합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는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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