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근로복지공단의 <판정지침>(뇌혈관질병 심장질병 조사 및 판정지침, 2013. 7. 31, 근로복지공단 요양부)에 따라 제대로 심의하고 있는가. 이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서 근로복지공단 요양부에 요청해 1주 평균 근로시간 55시간 이상인 뇌심혈관계질병 사안 중 서울판정위에서 불승인된 30개의 심의조서와 심의안을 받아 분석해 봤다.

판정위 불승인 30건 심의안 분석했더니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A씨의 근로시간은 주간근무와 야간근무를 병행해 발병 전 4주간 1주 평균 111시간, 발병 전 12주간 1주 평균 107시간이었다. 재해 발생 약 4주 전부터 1~2명이던 입원환자가 6~10명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벗어나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간이 실질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업무상 과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서울-2013-1718). 이처럼 다수의 사례에서 1주 평균 6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해서 곧바로 만성적 과로로 인정되지 않는다(서울-2013-1741, 서울-2013-1706, 서울-2013-1782 등). 대체 얼마나 더 일해야 과로한 것이라고 인정해 줄까.

<판정지침> 별표2에 따르면 “자신 및 타인의 생명 및 재산이 위협을 받을 위험성이 있는 업무, 정해진 시간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곤란한 업무 등”의 경우 정신적 긴장을 동반해 업무부하 요인이 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을 포함한 종합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서울-2013-1928, 서울-2013-1858 등). 건설업에 종사해 위험한 건설장비나 고온물질을 다루는 근로자, 버스·택시 운전기사 등 상시적으로 자신이나 타인의 생명에 대한 위협을 받는 업무를 행하는 경우에도 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고려하지 않고 불승인한 사례가 있었다. 이처럼 판정위는 과로성 재해를 판정할 때 스트레스 요인 등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판정지침>에서는 뇌심혈관질병에 대한 의학적 자문은 근로자의 질병상태·의학적인 발병원인 등에 대해서만 자문하고, 업무관련성 여부는 판정위에서 판단하므로 업무관련성 여부에 관한 소견은 기재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다수 사례에서 자문의사는 업무관련성에 대해 직접 판단하고 있다(서울-2013-1641, 서울-2013-1790 등).

뇌심혈관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당뇨·고혈압 등의 기존질환이 있는 경우, 이러한 질환이 양호하게 관리돼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지장이 없었던 경우에도 기존질환의 존재를 이유로 불승인한 사례가 다수 존재했다. 예컨대 경비직의 경우 주로 60~70세 고령 근로자가 담당해 기존질환이 있는 경우가 다수이나, 기존질환이 양호하게 관리돼 정상적인 근로를 제공해 왔던 경우에도 기존질환을 이유로 불승인하는 사례가 있었다(서울-2013-1723). 이에 더해 기존질환이 있는 경우에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로 인해 자연경과이상으로 악화됐는지에 관한 판단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서울-2013-1718).

과로 인정 인색하고 업무 스트레스 외면하기도

<판정지침>에 따르면 경비직 등 감시적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본연의 업무와 함께 청소·주차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병행하는 경우에는 병행업무의 내용 및 그 업무의 부담 정도, 수면의 시간 및 장소의 확보 여부, 휴게시설 유무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또한 단속적 업무와 운전업무 등과 같이 근로형태의 특성상 발생하는 대기시간은 근로자가 작업을 위해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경우 근로시간에 산입해야 한다. 그럼에도 판정위는 경비직이나 운전직에 대해 구체적인 업무의 질이나 강도 등을 조사하지 않고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경비직 업무 이외의 각종 민원처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수면을 취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휴게시설, 야간 근로·교대제 근로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스트레스 등의 업무과중요인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서울-2013-1498, 서울-2013-1599 등).

이 밖에 판정지침에서는 “교대제 야간노동의 경우 야간근무 시간이 길고 빈도가 높을수록 발병 영향이 높아진다는 점을 감안해 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공단의 판정지침에 근거한 기본적인 산재 심의구조를 갖추는 것은 공단 신뢰성의 전제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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