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달 14~18일 4박5일간 한국을 찾는다.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자본주의를 향해 쓴소리를 마다않는 이른바 ‘거리의 교황’의 방한은 한국 사회에 많은 고민거리를 던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밀양 송전탑 건설현장·비정규직 투쟁·노동자를 향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짓밟는 국가와 자본의 권력을 확인할 뿐이다. 아무리 호소해도 국가와 자본, 정치권은 외면할 뿐이다. 아니, 비틀고 때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마침 전 세계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교황이 온다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교황에게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교황의 방한이 한국 사회에 변화를 불러 올 수 있을까. 교황이 보듬어 온 사회적 약자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담았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세월호 진상규명 계기 되길

김형기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

7·30 재보선에서 압승한 새누리당이 180도 입장을 바꿨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논의보다 유가족 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 제정에 대해 우선 논의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보상과 지원은 지금 단계에서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 대학 특례입학·의사자 지정은 유가족이 요구한 적도 없다. 유가족이 7일 현재 25일째 목숨을 걸고 단식농성을 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권에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유가족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친 상태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이 보상을 언급하는 것은 고통 받는 유가족과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4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이전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

전 세계에 울림을 주는 존재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 주길 바란다. 교황의 메시지가 유가족 아픔을 조금이라도 치유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교황 방문으로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 진전됐으면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난 6년을 달려왔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풀릴 듯했지만 결국 마무리가 안 돼서 6년째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몸을 혹사시키며 집단단식도 했고, 송전탑에도 올라갔다. 대한문에서 농성할 때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매일 같이 미사를 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소식을 들었을 때 교황을 만나야겠다고 판단했다. 만나지 못 하면 바티칸에 가서 노숙농성까지 할 생각이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편지를 통해 요청을 했고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미사에 초대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하고, 아프고, 쫓겨난 이들을 위해 기도를 해 왔다. 이번 미사에서 쌍용차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아도 노동현안이 해결돼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희망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길 바란다. 교황이 이번 방한 동안 우리 사회의 갈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언론 보도를 통해 들었다. 쌍용차 문제에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와 갈등이 함축돼 있다. 노동 의제의 중심이 된 지도 수년이 지났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데 쌍용차 문제가 초석이 되는 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통해 해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교황 방한 계기로 국민과 노동자 위한 국정 펼쳐야

이정민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합원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가 파업을 시작한 이래 광화문광장에서 농성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계속 연대해 왔다. 우리나 세월호 피해자나 큰 틀에서는 같다는 생각에서다. 기업이 노동자를 돌보지 않는 것도 결국은 정부가 그런 기업을 내버려 두고 국민을 돌보지 않은 탓이다. 심지어 정부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이유로 지부가 진행하는 광화문 농성장을 철거하려 한다는 얘기도 돌았다. 정부나 정치인들은 국민과 노동자들을 창피하게 여기는 것 같다. 우리는 원청회사 앞에서 시위를 하면서 보기 불편하니 1인 시위를 하지 말라거나 빨간 조끼를 입고 있으면 연행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 보기 좋으라고 우리가 할 말을 못하고 숨어 있어야 하는가. 그게 국가가 국민에게 할 말인가. 교황 방한을 계기로 노조를 탄압하고 무엇이든 민영화하며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국민의 삶을 돌보는 나라와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낮은 곳의 이야기를 듣는 데 그치지 말고 그것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 우리가 파업하고 노숙투쟁을 한 지도 한 달이 넘어간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외쳐도 사회적 이슈가 안 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니고 단지 고용안정과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뿐이다.

원전 위험 경고하고 피해자들의 아픔 보듬어 주길

이계삼
밀양765kV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달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집전하는 미사에 밀양 주민들이 초청됐다. 주민들이 10년 동안 송전탑 반대 투쟁을 했는데도 국가와 한국전력은 주민들의 절절한 요구를 전혀 듣지 않았다. 민주주의 원칙이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동의와 타협 속에 진행돼야 함에도 일방적으로 국가와 한전의 노선을 아무 타협도 양보도 없이 밀어붙이는 데 대한 답답함을 교황에게 호소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구에는 원전 마피아들이 노후 원전을 연장하고 신규 원전을 계속 건설하려고 한다. 교황께서도 이런 현황을 알고 원전과 인간의 삶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경고와 원전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밝혀 주기를 바란다.

지금 밀양 주민들은 새로 만든 사랑방에 계속 모이고 있다. 농성을 계속 이어 간다는 것이다. 지난 6월 경찰폭력으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자 힐링 프로그램과 정신과 상담치료도 함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교황과의 만남이 이러한 주민들에게 위로가 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도덕적 권위를 가진 분이 현 사태가 옳지 못하다는 말씀을 해 주는 것만으로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된다. 밀양뿐 아니라 청도 송전탑 반대 주민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에게 국가 폭력이 강력하게 자행되고 있다. 교황의 방한이 우리 사회 변화의 기준점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한번 짚어 보는 계기가 되고 참담한 현 상황에 대한 경종과 각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 공동선을 위한 국가의 기본 역할 되새겨 주길

장경민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
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가톨릭교회의 사회 교리 중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것이 있다. 가톨릭교회가 어떤 활동을 할 때 늘 약자들을 먼저 찾아 돕고, 그들이 어떤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면 갈등 당사자들이 약자를 먼저 배려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가르침이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의 공동선을 증진시켜야 할 임무를 띤 국가가 사회적 갈등을 방치하거나 그 문제에서 약한 구성원이 설 자리를 더 잃게 만들고 있다면 국가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약한 이들을 위한 배려는 종교적인 선택일 뿐 아니라 인간의 기본 도리임을 정부와 국가조직들이 제대로 인지하고, 사회 공동선을 위한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과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교황께서 언급해 주시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가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세월호 특별법이 교황님의 방한과 관련 없이 조속히 처리돼 유가족들이 광화문을 떠나 가정에서 생활하며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 조사와 원인 규명에 나서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언젠가부터 합의·타협으로 갈등 해결을 모색하기보다는 손배·가압류 등 다양한 법적 소송으로 어느 한 편을 몰락시키는 파괴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 가고 있다. 여기서 몰락하는 쪽은 결국 사회적 약자들이다. 개인과 사회, 모든 국가조직들이 공동선의 정신을 바탕으로 약한 이들에 대한 배려를 먼저 할 줄 아는 관용과 사랑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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