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용진
공인노무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최근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서울지부와 함께 서울시내 한 사립학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쟁점은 조합원인 급식조리 종사원들의 월급제 전환 문제와 방학 중 근무에 대한 임금체불 해결이다. 처음에는 비협조적으로 나오던 학교측이 노조에서 강경하게 요구하고 나름 학교비정규직 관련 노조들에 대해 조사를 했기 때문인지 협조적인 태도로 바뀌어서 교섭진행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어이없었던 장면은 두 가지.

하나는 교섭위원 한 사람이 교섭 시작부터 “우리 학교에서는 급식조리 종사원들께 너무 잘해 드렸는데, 이분들이 노조에 가입하시다니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라는 발언을 했던 것. 아니, 왜 노조에 가입한 것이 가슴 아픈 일인가. 하긴 또 한 명의 교섭위원은 교섭 전에 아직도 노조 탈퇴를 안 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통탄해하며 “우리가 길 잃은 어린 양들을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니 한심스러울 지경이다. 정말로 황당하고 분노스러웠던 장면이었다.

두 번째는 젊은 여성인 다른 교섭위원이 교섭에서 보인 태도. 나름대로는 자신이 관리자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호혜적인(?) 학교측의 입장을 열심히 대변하면서도 급식조리 종사원들의 처우개선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긴 뒤에서는 50대 급식조리 종사원들에게 노조를 탈퇴하면 학교에서 처우를 개선해 줄 것이라는 등의 회유를 했다고 하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다만 그 젊은 여성도 헌법상 노동 3권을 보장받는 노동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

한국 사회처럼 ‘노동조합’에 적대적이고, ‘노동자’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회가 있을까.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교육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유럽 국가들에서는 초·중·고 시절부터 수업시간에 모의 단체교섭을 해 보는 시간이 있다. 노동자 계급 의식을 갖출 수 있는 교양교육과 노동법 교육시간이 커리큘럼에 편재돼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런 국가에서는 경찰관도, 소방관도, 심지어 장관도 자신이 노동자라는 인식을 갖고 노조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이겠지.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초·중·고 심지어 대학교에서조차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는 교육이나 기초적인 노동법 관련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동조합’ 하면 무언가 과격하고 불손한 세력으로 여기는 인식이 퍼져 있다. ‘노동자’하면 무지하고 못났으면서도 불만만 가득한 존재로 여기는 인식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익향상과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교조가 소중한 조직이고 지켜야 할 노조이며 진보교육감이 의미 있는 존재이리라.

지난 5월 세계 최대 노동단체이자 155개국 1억7천500만명의 노동자가 가입해 있는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세계 139개국의 노동권 현황을 조사해 발표했다. 한국은 세계노동자권리지수(GRI)에서 사실상 최하위인 5등급으로 분류됐다.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 언제까지 노동후진국으로 분류되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살 것인가. 언제까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낭비할 것인가.

여러 연구에 따르면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고 노동운동이 튼튼할수록 복지제도 같은 사회안전망이 튼튼하다. 구성원들의 자살률이 낮고 삶의 만족도는 높으며,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제 한국 사회도 고도 경제 성장시대를 지나 경제 안정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는 보다 많이 분배하고 불평등을 줄이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과제를 실천해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도 가능할 것이다.

노동조합이 더 이상 암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발전에 꼭 필요한 조직임을 인식하고, 노동자가 더 이상 못난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당당한 노동자임을 인식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 이제 제발 교육부터 바꿔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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